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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 Jun 24. 2024

유령의 마음으로

오늘은 유령이 되어 도시를 떠다니는 느낌이었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불안에 몸이 붕붕 떠있는 느낌이었거든. 운전대를 잡은 언니가 무어라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았어. 아마 들었다고 해도 나는 길게 대답하지 못했을 거야. 그냥 툭, 죽을 것 같다고 말해버릴 것만 같았거든. 그래서 말을 아끼게 돼.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어. 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강 공원에 가는 중이었지. 아빠와 언니의 대화를 라디오 삼아 초록빛 풍경을 구경했어. 완연한 여름이더라. 간혹 보이는 능소화를 보며 기뻐하기도 했지.


그럼에도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어. 무언가를 꼭 끌어안아야 이 통증이 줄어들 것 같았어. 당장 심장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 어딘가 떨어져 나갔을 게 분명했거든. 한 가지 유의해야 되는 게 있어. 불안이 시작되면 모든 생각이 비관적으로 흘러가게 돼. 그럼 나는 더 흐려지겠지. 완전한 유령이 되고 말 거야. 너무 조용하면 가족들이 걱정할까 틈틈이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어. 나는 골칫덩어리인 걸까. 공원에 도착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봤어. 햇빛을 받은 한강 위로 윤슬이 떠다니더라. 예뻤나? 그랬던 것 같아. "어! 윤슬이다. 언니 빨리 사진 찍어." 평소 같았으면 이런 말을 했겠지.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어.  


하루종일 불안에 시달리면 금방 피로해져. 덜컹이는 차에서 눈을 붙이며 생각했지. 이 잠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푹 자고 일어났을 땐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어. 그래서 나는 잠 들 때가 유독 좋아. 무한한 상상을 펼칠 수 있으니까. 삼십 분쯤 잤나. 눈을 떴을 땐 도로 위였어. 다행히도 불안은 내가 깨어났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야.


집에 도착해서 곧장 아이패드와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향했어. 해야 할 일을 적고 일을 시작했지. 또 다시 심장이 조여오기 시작했어. 커피 한 잔도 안 마셨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오늘 하루를 곱씹어 봐. 차 안, 한강 벤치, 카페. 모든 풍경 속에 내가 없더라.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어. 정말 유령이 된 모양이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카페에서 나왔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그냥 걸었어. 울어버리면 모든 게 사실이 될 것 같았거든.  


이제야 불안이 잠에 들었나 봐. 오전 10시에 일어나 다음 날 오전 12시가 될 때까지, 내가 선명했던 순간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노트북을 켜두고 한참 울었어. 잔잔한 마음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거든. 야속하게도 이 평온함은 금세 사라지겠지? 그래도 다행이야. 잠깐이라도 이런 감정을 느꼈으니 말이야. 아직 유령이 되지 않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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