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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피 Aug 31. 2023

세 얼간이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인도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에 대해 쓴 관찰 일지. 

http://brunch.co.kr/@hyeppy/14


인도 밤버스의 하이라이트는 휴게소 짜이지.

 

델리에서 다람살라_멕글로드 간지까지 버스로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오후 6시-7시쯤 버스를 타면 다음날 살짝 어둑어둑한 새벽에 도착해 식당에 들어가면 딱 좋았다. 가는 길 중간쯤 꼭 휴게소에 들르는데 새벽시간에 그곳만의 감성이 있다.      


그들도 역시나 휴게소를 좋아했다.

짜이와 담배가 찰떡궁합이라며, 담배를 안주삼아 짜이를 소주 마시듯 드링킹을 해댔다.

     

그런데.. 소녀에게 일이 났다. 화장실이 급한데 줄이 너무 길다. 식은땀을 흘리며 한동안 기다렸지만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싶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야 만다.      


인도에는 natural toilet 이 존재한다. 다들 자연스럽게 이용하지만 소녀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상황이 급한지라, 적당히 우거진 덤불로 들어가 중요한 볼 일을 봤고 그들 중 한 명이 망을 봐줬다.      


그 한 명이 지금 소녀의 남편이라 천만다행이다. 

멕글로드(멕레오드) 간지의 아침


고무신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려야 한다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어느 날, 발에 땀이 차서 하얗게 불어버린 발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다만 신발을 벗었을 뿐인데 내 코에 가져다 댄 것 같은 아주 강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온몸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던 그였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왜 저러고 다닐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멀쩡하지 않다.     



사색


1. 그다지 말이 없었다. 그가 궁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설사병이 나서 말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2. 문자를 하면 늘 전화가 왔다. 손가락이 두꺼워서 자판이 잘 안 눌린다나 뭐라나.. 

실제로 보니 우리 아빠보다 느렸다.      

3. 여행을 즐긴다길래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말로 주문을 하고 있었다.      

4. 부대찌개를 해준다고 했다. 

개밥인 줄 알았다.  

5. 엉덩이인 줄 알고 힘껏 쳤는데 배였다

6. 가끔 말하기 싫을 때는 방귀로 대답한다.      

7. 애들이 싫다고 했다. 애들이랑 애들보다 더 재미있게 논다.     

8. 첫 만남에서 그들은 내 나이를 믿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직업을 믿지 않았다.

나는 너무 늙어 보여서였고, 그들은 너무 덜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9. 취미로 음악을 만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지들끼리 랩 하고 노래하고 주고받는 대 환장파티.

10. 내 인생에 그들은 없을 줄 알았다. 

안 보면 심심하다. 

 



어른이었다 

  

옛날 옛날에 돈을 되게 잘 버는 사나이가 살았다.

그는 인도에 여행을 갔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국적이 어느 나라인지 겉으로 봐서는 도통 모르겠는 소녀를 만났다.

예상과 달리 한국인, 21살이란다. 

그는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쯧쯧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21살이, 누난 줄 알았네. 맛있는 것 좀 사줘야겠다.’


인도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그는 소녀에게 좋은 조언과 추억을 선물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사나이는 소녀에게 봉투를 건넨다.


“소녀야, 어린 나이에 타국에 와서 열심히 사는 너를 보니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걸. 이 돈 내가 인도에서 쓰려고 환전했는데 남았네, 얼마 안 돼, 잘 먹고 건강 챙겨가며 남은 시간도 많이 배우고 오렴.”


사나이가 한국으로 떠난 후 소녀가 열어 본 봉투 안에는 백만 원이 들어있다. 소녀는 생각했다.


“돈은 벌어서 이렇게 쓰는 거구나. 나도 이런 어른이 되어야지.”      



사람을 통해 얻는 인사이트가 가장 값지고 귀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너르지 못한 나의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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