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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titudo Jul 12. 2021

AFEI 라이프스타일 일일 체험기

대만 컨딩 / 직장인의 드문드문 세계 여행



아침부터 사장님이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깨워주셨다. 늦잠 잔줄 알고 헐레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안 늦었는데? 게다가 이 날은 오전이 아닌 오후 강습이 있던 날. 서비스의 일종인가. 감.. 사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서핑을 하기 시작했을까?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바다에는 파도가 존재했을 텐데 언제부터 인간들이 그 파도를 가지고 유희를 즐겨야겠다고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서핑하러 근처 바닷가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서핑을 오래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바이브가 있다. 자유롭고 여유로우면서 내면이 단단한 느낌. 서핑 자체도 좋지만 이런 바이브가 참 좋아 여행 갈 때마다 서핑할 수 있는 곳을 계속 찾게 된다. 어느 서핑숍을 가든 세상 걱정 전혀 없어 보이는 유유자적한 서퍼들의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한 번은 서핑 강습이 끝나고 사장님이 숙소로 데려다주는 길에 본인의 인생관에 대해 얘기해주신 적이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셨지만, 물질적인 것보다는 자아성찰을 통한 삶의 만족에 더 관심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I don't buy a car or house, I buy lifestyle

사람들이 Afei라고 부르는 사장님. 인상이 약간 험악해 먼저 말 걸기 쉽지 않고 마냥 친절하지만도 않지만 확실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서핑 강습이 끝나면 꼭 수강생들에게 대만 에너지 드링크를 건네주고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작은 간식을 사 주신다. 밤에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음식을 해주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컨딩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비자 관련 도움을 주시기도 한다.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가끔씩 이렇게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인다.



오후 강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차 옆으로 석양지 지고 있었다. 분위기를 좀 아는 서핑 강사는 자동차 오디오로 More than words를 재생했다. 창 너머로 석양이 져 하늘이 알록달록해지고 차에서는 좋은 노래가 나오면서 창문 사이로 바닷바람이 살살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기분 좋게 건드린다. 평온, 행복이라는 단어들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낀 날. 아직도 우연히 More than words를 듣게 되면 이 날 생각이 나 심장박동이 조금 더 빨라진다.


우리는 석양 지는 걸 더 잘 감상하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왔다. 서핑할 때 신발을 따로 안 챙겨 나는 그냥 맨발로 나와 석양을 감상하고 있었다. 휴대폰도 들고 오지 않아 석양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완전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오롯이 석양을 감상하는데 코치 중 한 명이 슬리퍼를 슬쩍 벗어주고 본인은 맨발로 서있는다. 따뜻한 사람.



같이 방을 쓰는 홍콩 출신 J가 코치들이랑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나도 함께 초대해줬다. 여행객들은 전혀 모를 것 같은 로컬 음식점으로 갔다. 메뉴판도 영어 없이 모두 대만 한자어로 되어 있어 알아서 잘 시켜주겠지 하며 잠자코 있었다. 어느덧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와 먹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들은 코치들이 먼저 설명해주기도 하고 어떤 건 내가 먼저 묻기도 했다. 조금 특이해 보이는 음식이 나왔길래 이건 뭐냐고 물어보니 돼지 귀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순대 먹을 때 다른 내장들과 돼지 귀가 조금씩 섞여 나오는데, 대만은 자체적인 메뉴로 주문도 할 수 있어 신기했다. 식사를 마친 후 달달한 두부가 들어간 후식도 먹고, 슈퍼에 들러 코치들이 추천해준 밀크티 티백도 구매했다.


사실 서핑 캠프로 예약한 사람은 식사까지 결제 금액에 포함되어 숙소에서 밥을 먹으면 된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주방이 공사 중이라서 첫 며칠간은 식사가 불가했다. 내 룸메는 홍콩 사람으로 휴가 때마다 컨딩으로 와서 서핑을 한 덕분에 코치들과 친하게 지내 서핑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곤 한다. J는 코치들이랑도 친하고 나랑 방을 같이 쓰면서 얘기도 몇 번 나눠 나를 식사 자리에 초대해준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숙소 식당이 공사 중이지 않고 내 룸메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혼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 또 다른 나의 소중한 여행 추억을 만들어줘 감사한 하루였다.



사진: @hye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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