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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titudo Jul 09. 2021

남들 타이베이 갈 때 남쪽으로 내려가기

대만 가오슝 & 컨딩 上 / 직장인의 드문드문 세계 여행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은 청개구리다. 뭐든지 엄마가 하는 말의 반대로만 했기 때문이다. 이를 닦으라고 하면 절대 닦지 않고, 이쪽으로 오라고 하면 저쪽으로 가곤 했다. 나의 이런 성향은 여행을 할 때도 나온다. 여행을 가면 블로그에 자주 나오는 그 지역 대표 여행지보다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이 더 끌린다. 하지만 결국 여행 후기는 블로그를 통해 찾아보는 나는야 청개구리. 대만을 여행하기로 했을 때 타이베이가 아닌 가오슝과 컨딩으로 먼저 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대만의 중국어는 중국의 중국어보다 어쩐지 듣기가 좋다. 더 차분하고 조용하고 친절한 느낌. 가오슝을 혼자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 얘기하는 소리에 괜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내가 할 줄 모르는 언어를 쓰는 곳에 여행을 가게 되면 긴장이 되면서도 막막함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다. 특히나 가오슝에서는 철저히 혼자 다녔기 때문에 이런 짜릿함을 조금 더 길게 유지할 수 있었다.


보얼 예술특구


가오슝의 보얼 예술 특구 같은 곳은 사실 혼자 다니면 조금 심심하다. 각종 벽화와 전시물을 보며 가족, 친구와 서로 사진 찍어주는 맛에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만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사진쟁이 친구들에게 푸꿕에서 1박 2일 동안 DSLR 특훈을 받았기 때문에 혼자서도 멋진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전시물들을 이리저리 찍어보는데 어쩐지 느낌이 살지 않아, 친구들이 선물해준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의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본다. 상관없다,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극성맞은 여행 블로거 행세를 마친 후, 뿌듯한 마음으로 컨딩을 향했다.



컨딩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가오슝과 다르게 컨딩은 한적한 시골 마을 같았다. 버스가 숙소 앞까지 가지 않아 캐리어를 끌고 숙소까지 한참을 걸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니 다른 사람의 짐이 이미 있었다. 짐을 대충 놓고 배가 고파 요깃거리 좀 살 겸 편의점을 찾아 나갔다.


편의점에서 돌아오니 사장님이 어디 다녀오냐고 물었다. 배고파서 편의점 다녀왔다고 하니 요리를 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초반부터 호의를 거절하기도 그렇고, 음식 산 건 나중에 먹으면 되니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사장님 요리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고, 내 룸메인 홍콩 남자 J와도 인사하게 되었다. 컨딩의 남자들은 동네에 미용실이 없는지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나만큼 길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서핑 강사, 동네 주민, 사장님 친구, 나 같은 손님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가끔씩 배려해주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설명을 하다가도, 이내 다시 본인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소외된 이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오슝에서 혼자서만 돌아다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랬을까? 왠지 집중해서 듣다 보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중해서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답지 없는 중국어 듣기 평가를 하며 사장님이 해준 요리와 맥주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되었다. 다음날에 서핑 강습 있는데, 어차피 코치들도 나와 함께 있어서 될 대로 돼라 하며 버텼다. 분명 도착한 지 몇 시간 안 되었는데 시골 삼촌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하루의 마무리였다.


사진: @hye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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