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titudo Jul 06. 2021

크리스와 호주할저씨

인도네시아 발리 下 / 직장인의 드문드문 세계 여행


<A permanent vacationer>


I am a Sophistiratchet. I am proof you can do anything you want to do while being you unapologetically. I have always been me (might have been an altered version on some levels). A permanent vacationer. A healer. A nurturer.  A teacher. A solutionist. A leader. I am a nerd in my own light. A weirdo to some. A researcher. I am a world traveler and all things Kris. 


크리스의 첫 번째 책에서 스스로를 소개한 내용이다. 이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a permanent vacationer. 그때까지만 해도 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전 세계를 여행 다니고 싶었다. 이 세상엔 내가 안 가본 것이 너무나 많고, 지금처럼 1년에 한두 번씩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닌다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을 다 못 가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 포함 크리스를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일을 안 하고 계속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물어보며 부러워했다. 사실 이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느냐, 불안정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느냐 스스로 선택을 하면 된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면 나처럼 계속 회사를 다니면 되고, 크리스처럼 여행을 하며 살고 싶으면 회사를 그만 두면 된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 두면 안정적인 자금의 유입이 끊기는 리스크가 생긴다. 사람들은 이런 리스크를 선호하지 않고, 더욱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크리스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한다. 혹시 내가 책임이나 리스크를 지지 않고, 크리스처럼 살 수 있는 묘책이 있을까 하는 기대심에. 


어느 학교나 회사 출신처럼 집단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본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대로 살고 있는 크리스가 너무 멋있다. 



<Thanks for your service> 


크리스와 서핑을 하고 늘 만나던 노점에서 쉬고 있었다. 수영복 안에 쌓여있는 모래를 씻어내고 싶었지만 둘 다 숙소에 가려면 차를 타야 했다. 마침 노점 맞은편에는 야외 수영장이 딸려 있는 호텔이 있었다. 크리스는 저기서 모래를 씻어내야겠다며 당차게 수영장으로 향했지만 경비에게 저지당했다. 크리스는 포기하지 않고 수영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 호텔에 묵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러다 호주 할저씨(할아버지와 아저씨 그 중간) Mr.A와 발리 아저씨 Mr.P를 만나게 되었다. 


Mr.A는 크리스와 몇 마디 나누고서 크리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수영장 바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으니 본인이 술을 사주겠다고 했다. Mr.A는 나와 크리스에게 본인이 술을 사주는 2가지 이유를 말해주었다. 

1. 미군 출신인 크리스에게 고맙다며, 크리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기가 발리에서 이렇게 편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거라고 했다. Mr.A가 사버린 노점 바가 하나가 있는데, 앞으로 크리스는 그 노점 바에서 술을 마시면 무조건 무료다. 

2. Mr.A가 사는 곳에선 여자들이 술값을 안 낸다고 한다. 호주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겨버렸다. 


Mr.A 옆에는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Mr.P가 있었다. Mr.A가 발리 해변가에 있는 노점 바를 사서 Mr.P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Mr.P는 몸에 Mr.A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죽을 때까지 보스로 모시겠다고 했다. Mr.A가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갑자기 Mr.P는 크리스와 내 이름을 본인 몸에 문신으로 새기겠다고 했다. 취하신 것 같고 방금 봤는데 우리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다는 게 이상해서 크리스와 나는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Mr.P는 확고했다. 그래, 살면서 누가 내 이름을 자기 몸에 문신으로 새겨주겠나? 우리 엄마도 하지 않을 행동이다. 크리스와 나는 좋다고 하고, Mr.P의 어느 부위에 이름이 새겨지면 좋겠는지 정해줬다. 


이 날 저녁 호주 축구 경기가 있다며 Mr.A에게 초대를 받았다. 경기 볼 때 입고 오라며 크리스와 나에게 디자인이 똑같은 하와이안 셔츠를 하나씩 선물까지 해주셨다. 술잔이 비기도 전에 계속 새로운 술을 가져다주던 Mr.A 때문에 약간 취기가 돌아 각자 숙소에서 샤워 후 만나기로 했다. 



<발리 쏘울 푸드 가도가도> 


축구를 보러 가기 전에 허기가 져 크리스 숙소 앞에 있는 현지 식당에서 인도네시아 음식 가도가도를 먹었다. 바퀴벌레가 나올 것 같은 허름한 곳이었는데 이 집에서 먹은 가도가도가 발리에서 먹었던 것들 중 제일 저렴하고 맛있었다. 가도가도는 인니어로 mix-mix라는 뜻인데 이름처럼 각종 채소와 땅콩 소스를 섞은 샐러드다. 이 집은 매운 고추까지 곁들여져 취향저격. 크리스와 나는 매운맛에 눈물을 흘리며 맛에 취해 말도 없이 먹기만 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잠도 술도 깨어 있었다. 


Gado Gado

 Mr.A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더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그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10분 정도 더 기다리다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크리스와 나는 우리끼리 놀러 나가기로 했다. 


발리 시내에 위치한 바에 들어간 우리는 시샤도 하고 춤을 추며 놀았다. 바에는 봉이 있었는데 크리스가 갑자기 봉을 타고 올라가더니 봉춤을 추기 시작했다. 코어 힘이 장난 아니다. 내려와서는 비트에 맞춰 현란하게 트월킹을 췄다. 진짜 클럽에서 남녀 통틀어 제일 멋있어서 나 혼자 콘서트 온 팬처럼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몇몇 백인 여자들이 크리스를 따라 하려고 몸을 흔들어댔으나 어색하기만 할 뿐, 크리스의 손톱만큼도 잘 추지 못했다. 


다음날 Mr.A를 만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미안하다며 경기 전 술에 취해 해변가에서 시체처럼 잠들었다고 한다. 너무 취한 나머지 아침에 지나가던 행인이 깨우기 전까지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Mr.P가 우리 쪽으로 걸어와 인사를 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기한테 인사하는 건지 물었다. 크리스와 나는 웃으며 우리 이름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고 했는데 기억 안 나냐고 물었다. Mr.P는 태어나서 우리를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바로 문신을 하게 했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순간순간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때 짜릿한 기분을 느낀다. 만약 크리스를 만난 첫날 내가 사원이나 다른 섬으로 관광을 떠났으면 내 발리 여행은 어땠을까? 나는 평생 크리스라는 사람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갔을 것이고, 이처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날 그 순간 목적지 없이 산책을 가 하필이면 그 노점에 앉아 휴식을 취하게 된 내가 너무 신기하다. 


크리스는 책에서도 그렇고 실제 삶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말고 Be myself 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아시아권 특히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내가 누구인지 성찰하기보다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또 집단에 나를 맞추는 것에 더 익숙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오다 보니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른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MBTI 등의 결과에 흥미를 느끼며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살아있는 자기 계발서와 함께한 특별한 발리 여행. 크리스는 죽기 전에 꼭 지구 상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크리스가 발리에 있을 때 발행된 그녀의 2번째 책


매거진의 이전글 언니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