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상
락다운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한 달.
밖에도 못 나가고 심심해서 어쩌냐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과는 무색하게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요즘 올림픽 배구를 보고 김연경 선수에 푹 빠져버렸는데 김연경 선수가 터키에서 생활할 때 찍었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인터뷰 내용이 참 와닿았다.
수많은 관중들에게 박수를 받고 난 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에 들어오면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당연히 외롭다고 답을 하고는 이내 괜찮다고 다시 대답했다. 초반에 터키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지금도 늘 외롭지만 지금 괜찮은 이유는 외로울 때 뭘 해야 괜찮아지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같은 이유로 괜찮은 것 같다. 지독하게 외로웠던 독일 생활, 풍요 속의 빈곤 같았던 하노이 생활과 만 5년의 호치민 생활을 이어나가 보니 고독과 싸우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쥐어짜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정리해보게 된 최근 나를 즐겁게 해주는 소소한 일상들.
1. 홈 트레이닝
운동이란 할수록 힘들고 안 할수록 더 귀찮아지는 기이한 존재.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는 귀찮아도 옷만 갈아입고 크로스핏 체육관에 가기만 하면 운동의 반은 끝낸 것과 다른 없었다. 수업에 참여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굴려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주일에 최소 3, 4번은 운동을 했었는데 지금은 오롯이 나의 의지로만 운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상황. 집에서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운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옥상에서 줄넘기, 계단 오르내리기, 몰래 나가서 뛰고 오기 등. 하지만 이 3가지 모두 어쨌든 외부에서 하는 운동이고 특히 몰래 달리기는 심장에 무리가 오는 것 같다. 베이지색 옷(베트남 경찰 유니폼) 입은 사람만 봐도 심장이 철렁철렁 했다.
그래서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유튜브 홈트! 매일 번갈아가며 나의 루틴을 만들어 전신 운동을 해주고 있는데, 루틴을 다 마치면 400~500 칼로리가 소모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리고 재밌다! 복싱하고 발차기하고 땀 흘리니 스트레스 풀리는 효과까지. 운동의 또 다른 장점은 부끄럽지만 샤워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집 앞 슈퍼마켓에 가는 것 말고는 외출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운동 안 했으면 며칠에 한 번 샤워를 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주는 운동. 매일 빼먹지 말고 꾸준히 해보자.
** 400~500칼로리 태워주는 홈트 루틴 **
-Billy Cardio circuit + Allblanc 상체 10분 + Allblanc 코어 운동
-Billy Cardio circuit + Allblanc 하체 10분 + Allblanc 코어 운동
2. 올림픽 관람
운동경기는 친구들이랑 시끄럽게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최근 올림픽 경기는 지루한 락다운 일상에 활력을 주는 원동력이다. 운동 경기를 보거나 독립 운동가들의 스토리를 들으면 쉽게 울컥해지는 나. 보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에 이렇게 무리가 오는데 직접 경기를 나간 선수들은 어떨까? 특히나 이번 올림픽에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내가 키운 자식도 아닌데 대견한 마음에 괜스레 코끝이 시려진다.
운동 경기는 짧은 판단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볼 때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몇 년 동안 준비해온 노력들이 몇 분만에 끝나버려 어찌 보면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올림픽 선수들처럼 치열하게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자문도 해본다. 경기의 즐거움과 함께 나의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올림픽도 이번 달 8일이면 폐막을 한다. 파리 올림픽은 직접 가서 보고 싶은데, 그때쯤이면 락다운 따윈 없어지겠지?
3. 친구들과 Zoom 파티
지난달 친한 친구들의 생일이 있어 Zoom으로 생일파티를 했다.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지만 Better safe than sorry! 각자 원하는 안주와 주종을 택한 후 정해진 시간에 Zoom으로 모였다. 카메라로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각자 안주를 공유하며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있다 보니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재밌는 걸 봐도 피식하는 정도였는데 화면으로나마 친구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니 몇 번이나 박장대소를 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 타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있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 등 깉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고민들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코시국 락다운 상황에서도 나를 웃게 해주는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함을 느낀 날들이었다.
4. 요리
나를 요리하게 하는 코로나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엄마도 그렇고 외갓집의 모든 여자들이 전라도 출신으로 요리를 쉽고 빠르게 잘하신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무조건 요리를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요리에 큰 흥미도 없었고 어차피 크면 요리를 잘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어릴 적부터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 요리를 안 할수록 더욱더 그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던 중,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과 식당 문을 닫아버린 호치민 정부 덕분에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유튜브에서 내 입맛에 맞는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채널을 찾은 것이다. 거의 모든 요리가 15분 안에 끝나면서도 비주얼도 맛도 좋은 레시피들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요리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플레이팅이란 건 모르겠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섞일 텐데 굳이 왜 신경 써서 예쁘게 음식을 담아야 되나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 선생님을 따라서 플레이팅을 따라 하고 사진을 찍어보니 제법 나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하고 예쁘게 담아 먹으니 기분도 좋아지고 덩달아 따라오는 성취감은 덤. 새로운 취미를 찾은 것 같아 기쁘고 약간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 내일 점심은 뭘 해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잠에 드는 요즘이다.
5. 감사일기
재택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시작한 감사일기. 사실 그전부터 써오고 있긴 했는데 바쁜 일상에 치여 밤이 되면 졸려서 밀리기 일쑤였다. 락다운이 강화되고 외부의 접촉과 멀어지면서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일기를 작성하고 있다. 명상도 같이 시작했는데 운동만 해도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져 명상은 가끔 빼먹기도 한다. 감사일기를 작성할 때 유의하는 점은 남의 불행과 비교하며 감사함을 찾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나의 현재 처지를 비교할 때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기가 가장 쉬운데 이럴 경우 불행을 겪은 사람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사실 몇 년 전 한 사건 이후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와 카페에 있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와 할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도 해외에 있던 터라 할머니를 보러 가지도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참다가 남자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남자 친구는 나를 위로해주면서도 본인의 할머니는 건강하셔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나도 다른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자동적으로 갖게 되곤 한다. 할머니는 다시 회복하셨지만 내가 반대 입장이 되어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적잖은 충격이 되었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몸 건강히 숨 잘 쉬고, 땀 흘리며 운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요즘. 소소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락다운이 끝나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6. 문화생활
락다운이 시작되고 제일 좋은 점은 책 읽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마음껏 외출할 수 있던 시절에는 그만큼 술자리도 약속도 많아 하루에 책을 안 읽고 넘어간 적도 많았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집에 오면 피곤해 그냥 자게 돼서 이것도 나름 스트레스였는데 읽고 싶던 책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요즘 참 행복하다.
최근 낮에 바람이 많이 불어 에어컨을 끄고 거실 창문을 열고서 그 옆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따뜻하면서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뺨에 부딪히는 머리카락도 넘기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책을 읽으면 휴가지에 와있는 것 같은 상상도 든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출근하기까지 방에서 거실로 나오는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덕분에 밤에 영화를 보고 자도 부담스럽지 않고 평일엔 no netflix라는 나만의 규칙을 어겨도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
점심 먹을 때 찾아보는 다큐멘터리도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이렇게 유익한 내용을 이렇게 재밌게 만들다니, 감탄하며 점점 똑똑해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도 할 수 있다.
정부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통행증에 있는 시간대에 식약품 구매할 때만 외출이 가능한 요즘 집 안에서 알차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든든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다시 예전에 누렸던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날들이 곧 오겠지.
Cover Photo by Braydon Anders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