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일상
"정말이지 계엄령이 따로 없네.."
오늘 저녁 6시부터 외출이 금지된다는 소식에 길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만 31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통금이다. 정확한 통금 시간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기한은 무기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슈퍼나 가게도 이 시간대에는 가면 안 되고 가게들도 어차피 영업을 하지 못한다.
식품이나 약품, 위급사항이 아니면 외출 불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공지가 무색할 만큼 매일 수천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호치민.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정부는 7월 26일부터 저녁 6시~새벽 6시까지 호치민 시민들의 외출을 금지했다. 식료품 사재기가 끝날 것 같으면서도 점점 심해지는 정부의 규제에 끝나지가 않는다. 믿고 있던 배달 어플, 단톡방들마저 더욱 심해진 규제에 식자재 배달이 긴급 중단되어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냉장고가 꽉 차 있어도 계속해서 채워 넣고 싶어 괜히 식자재 주문 사이트를 뒤적여 본다.
사실 여기서 코로나에 걸리면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음식 살 때를 빼면 외출을 자제했다. 정부 규제가 있기 전까지 알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잘 살았는데 저녁 6시 이후로 나오지 말라니까 갑자기 답답해지면서 밖에 더 나가고 싶은 이 기분은 뭘까. 또 청개구리병이 도졌나 보다.
난 커피가 없으면 차를 마시거나 물을 마시고 넘기는 타입인데, 오늘따라 괜히 밖에서 사 먹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 파는 병에 담긴 스타벅스나 카페라테를 사 마시고 싶었는데 여기 편의점에는 팔지 않는다. 다 팔리고 안 남은 건가. 몇 년 만에 캔커피를 사서 마셨는데 왜 담배 맛이 나지? 쓸데없이 밖에 나와서 벌금 냈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나저나 길 밖에 이렇게 사람이 안 다니는데 도대체 4,000여 명의 확진자는 매일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리 동네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건 아닐 텐데. 정말 미스터리다.
억압되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이지만 또 이런 상황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재미난 일들도 있다.
하루 전 친구가 어머니와 함께 다른 동네로 오토바이를 구매하러 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오토바이 사는 건 외출 사유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친구는 어디 가냐는 경찰의 물음에 어머니가 아프셔서 약을 사러 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에 맞춰 친구 어머니는 뒤에서 기침을 하며 메소드 연기로 아픈 척을 하셨다. 친구에게 뒷돈을 뜯어내려던 경찰은 친구와 친구 어머니의 메소드 연기로 오히려 당황하며 친구를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경찰을 뒤로한 친구와 친구 어머니는 박장대소를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픈 어머니를 끌고서 약을 사러 간다는 말을 믿은 경찰이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친구가 무사히 풀려나서 다행이고 돈을 못 뜯어낸 경찰이 샘통이다. 또 다른 친구는 통금이 시작되는 오늘, 6시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사람들을 골려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이렇게 규칙을 깨는 사람들 때문에 확진자가 늘어 자유를 뺏겼다고 생각해서 정말 화가 나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길 밖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저 웃음이 날뿐. 나도 내일 옥상에 올라가서 스트레스 좀 풀 겸 길에 있는 사람들한테 소리 좀 질러 볼까나.
진심으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는 요즘 그래도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어 오늘도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Cover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