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일상
Lass dich umarmen!
독일어 문장으로 영어로 해석하자면 Let me hug you다. 독일에 있을 때 같이 지냈던 Gastmutter Judy가 낸 신곡 제목이다.
2013년부터 1년 동안 독일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학사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석사 공부를 하고 싶어 독일어를 공부하기 위해 갔다. 어학연수를 갈까 생각했지만 유학원에서 독일 현지 가정과 생활하며 아이들을 돌봐주고 용돈도 벌 수 있는 오페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다. 아이들이랑 있으면 말을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오페어를 선택했다.
몇 백만 원을 내면 비자랑 독일에서 같이 지낼 가족들을 찾아주는 회사도 있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스스로 하고 싶었다. 독일어 공부를 해서 비자 인터뷰 준비도 하고, 오페어 사이트에 들어가서 같이 지내고 싶은 가족들을 검색해서 여러 가족들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Dephul Familie.
엄마(Judy), 아빠(Patrick), 아들 3명(Levi, Noah, Jacob)으로 구성된 가족. 아이들은 각각 10살, 7살, 4살이었다. Judy는 캐리비언 바베이도스 출신으로 CCM 노래를 만들어 공연하는 싱어송라이터, 독일 사람인 Patrick은 Judy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 Judy가 가수인 덕에 다른 오페어들이 잘 겪지 않는 재밌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공연을 해야 하는 날이면 가족들 다 같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지내기도 하고, Judy의 밴드 사람들이 집에 놀러 와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했다. 새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비트를 더해 즉석으로 음악을 만들던 사람도 있었고, 집 마당에서 모닥불 피워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던 날도 있었다.
1년이란 시간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년 넘게 서울에서 자란 나는 시골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마침 Judy의 가족은 Alpen이라는, 독일보단 네덜란드와 더 가까운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다. 초기에는 Alpen에서의 생활이 꿈만 같았다. 공기도 맑고, 집에서 조금만 나가도 숲이 있고 평화로웠다. 사람들도 온순하고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쳐도 밝게 인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집 안에 머물기보다는 집 밖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시골에 살고 싶어 하기보다는 가끔씩 자연환경이 만개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도시 생활로 돌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사촌동생, 조카를 잘 돌봐온 나는 아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이들을 돌보려면 나 자신은 뒤로 젖혀두고 모든 걸 아이들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러기엔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해심이 부족한 아직은 어린 나이였다. 나의 대한 성찰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선택은 1년 중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곤 했다.
덕분에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았던 생활들. Judy가 보내준 뮤직 비디오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I3nXclssGnY&t=41s
이번에 새로 나온 노래는 여러 모로 특별하다. 내가 지내던 곳이 뮤직 비디오에 나오고, 처음으로 온 가족이 노래에 참여했다. Judy 작사, 작곡, 노래, Patrick은 작사 및 영상 편집, Levi는 리드 기타, Noah는 랩, Jacob은 노래를 했다. 또한 이 노래는 코로나 시기를 위한 노래이기도 하다. Judy는 음악과 비디오를 통해 어떻게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포옹하는 비디오를 생각해냈다. 포옹은 혼자서는 절대로 할 수 없고 작은 몸짓 안에 따뜻함, 편안함, 사랑, 축복 등의 다양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 전염병으로 사람 간의 접촉이 조심스러운 이 시기에 역설적으로 사람들에게 제일 필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Judy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안전한 상황에서) 포옹하는 비디오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비디오를 모아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비디오를 보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서로 포옹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공연도 힘들고 Judy도 어려울 텐데, 사람들에게 노래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Judy가 정말 대단하다.
뮤직 비디오 시작 장면에 나오는 이 길. Alpen에서 지내는 동안 수백 번도 더 오갔던 길이어서 반가움에 눈이 커졌다. 시골생활이 답답할 때 혼자 산책하기도 하고, 저녁에 러닝도 하고 가끔 시내로 나갈 때 기차역으로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길이다.
독일에서 향수병에 힘들었을 때 지금 이런 순간들도 나중에 다시 떠올리면 그리워질 것이고 시간을 더 잘 쓰지 못해서 후회하는 순간이 올 거라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곤 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독일 시골에서 1년 간의 생활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1분 1초 더 행복하고 소중하게 보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독일에서의 경험을 호치민 생활에 적용하여 나를 채찍질하곤 한다. 어떻게 생활해야 나중에 호치민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통해 1달에 2,3번씩 여행을 다니던 적도 있고, 크로스핏 등 새로운 도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제철 과일 챙겨 먹기 등의 소소한 도전도 하며 알차게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로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끊겨 호치민 생활을 즐기고 있지 못하는 요즘. 점점 한국 향수병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독일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하나씩 올라오는 것 같아 그 시절 스스로 처방했던 방법을 다시 써먹어본다.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때가 나중에 찾아올 테니 시간 허투루 쓰지 말고 건강한 몸과 마음 유지하자고. 사실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친구들은 만나고 싶고, 새로운 레스토랑도 가 보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나에게 많은 시간이 생겼으니 그동안 밀린 책도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지.
평일에 재택근무를 하던 중 이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 코로나가 좀 풀리고 사무실 출근하면서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되면 여유로운 지금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때가 오겠지. 매일 속옷 차림으로 쉐도우 복싱을 하는 앞집 아저씨도 가끔 생각날 것 같다.
Cover photo by hyer02 (Alpen, 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