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h Khai st │ 베트남 현대사의 가장 유명한 여성 독립 운동가
지난주 둘째가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단순 감기인 줄 알고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별안간 눈물이 왈칵 나왔다. 아이가 아플 때일수록 엄마가 이성적으로 대처를 해야 한다는데 어째 내 눈물은 점점 더 성미가 급해진다.
하노이에서 큰 병원이라고 하면 타임시티에 위치한 빈맥(Vinmec) 종합병원을 말한다. 타임시티는 살고 있는 곳에서 멀기도 하고 가는 길의 교통 체증도 심해 빈맥에 방문할 일이 아니면 잘 가지 않는 동네이다. 그래도 제작년에 제2 순환 도로 일부가 추가 개통되어 전보다는 더 막히지 않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개통된 길 중의 하나가 빈맥 종합병원 바로 옆의 큰 길인 민 카이(Minh Khai) 길이다.
이 거리는 프랑스 식민 시절 베트남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 혁명가, 응우옌 티 민 카이(Nguyễn Thị Minh Khai)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민 카이는 17세의 나이부터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호찌민과 함께 활동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갖은 고문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다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공개처형 당했던 민 카이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독립 운동가이다. 그래서 민 카이라는 이름은 베트남 전역의 거리, 학교, 공원, 기념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노이에서도 민 카이 길은 동쪽으로 나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로 그녀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길이다.
동네 소아과에서 타임시티 빈맥까지 가는데 40분은 족히 걸렸다. 심한 두통으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둘째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나 또한 아픈 아이를 달래며 운전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입원 수속을 하는데 곧 하원할 첫째까지 신경이 쓰였다. 한 명을 품고 있으면 꼭 다른 한 명 생각이 같이 나는 것은 아마도 모든 둘째 엄마들의 숙명이겠지. 한국이었으면 친정 엄마에게 부탁했을 텐데 이 나라에는 남편과 나 오롯이 둘 뿐이라 이 날도 남편은 반차를 쓰고 달려왔다.
입원실이 준비되었을 때는 벌써 오후 다섯 시였다. 남편을 첫째에게 보내고 입원실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은 뒤에 둘째 저녁까지 먹이고 나니 밖이 캄캄해졌다. 아침 아홉 시쯤 집에서 나왔는데 하루가 어떻게 흘러간 건지. 그래도 침대 옆으로 보이는 비상벨에 마음이 너무나 든든하다. 오늘 새벽에는 나 홀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지. 갑자기 무거운 피로가 확 올라왔다.
새벽에는 나까지 덩달아 고열이 났다. 오한이 너무 심해 해열제를 요청했는데 소아병동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먹는 오렌지맛 타이레놀 시럽 두 배용량을 대신 받았다. 효과만 같으면 되지 싶다가도, 그래도 하노이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인데 타이레놀 한 알 구하기가 힘든 건가 참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용 해열제로 새벽을 버티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1층에서 퇴원수속을 하는데 저 멀리 바퀴벌레 한 마리 유독 더 짜증이 났다. 어휴 애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다 마음에 안 드네, 한국 가고 싶다며.
퇴원 수속을 겨우 마치고 짐을 챙기러 병동으로 올라갔는데 간호사들이 둘째를 살갑게 돌봐주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겁 많은 둘째가 피를 뽑다가 소변 실수 했을 때도, 병동 입원을 기다리며 쉬라고 내어준 방 하나도, 죽 배달도 대신 받아다준 한 직원도.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아이에게 친절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잘로로 아이의 상태를 물어봐주는 병원 연락을 한 차례 더 받았다. 하 이 나라가 이렇게 또 밀당한다. 그래, 융통성 좀 없으면 어때 아이에 대한 배려는 한국보다 훨씬 나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