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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뷰 못지않은 우리 집 홍강뷰

An Dương Vương st┃매일 스쳤던 길이 베트남 왕 이름이었다.

by 예스혜라

리버뷰를 갖고 있는 우리 집은 아파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10호 라인이다. 나 또한 3년 전에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탁 트인 리버뷰에 반해서 다른 하자들은 깊게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계약을 했었다. 놀이방 통유리 한 면이 전부 깨어져있는 채로 1년을 넘게 지냈음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을 보면 강 조망권이 나에게 주는 만족이 생각보다 크다. 이른 아침, 식탁에 커피 한 잔을 두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만은 한강뷰다.


제작년 스토리에 올렸던, 우리 집 거실뷰 / 이른 아침의 거실뷰


돌 무렵쯤부터 탈 것들은 다 좋아했던 현우와는 창 밖 구경을 참 많이 했다. 멀리 보이는 강은 홍강(Sông Hồng)으로 선박이 다닐 수 있을 만큼 깊고 넓어 내륙 수운에 이용되는데, 그래서 항상 화물 운송선이 떠있다. 현우와 함께 떠있는 배 숫자도 세어보고 배의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얘기한 기억이 난다. 홍강을 따라 옆으로 도로가 길게 하나 있는데 이 길 위로 지나다니는 자동차, 오토바이, 트럭 구경도 많이 했다. 밤이 되면 작은 불빛들이 또 이 길을 따라 총총히 움직이는데 바로 이 길이 안즈엉브엉(An Dương Vương) 길이다.



홍강을 따라 이어진 안즈엉브엉 길


안즈엉브엉은 기원전 257년경, 반랑(Văn Lang) 국의 마지막 훙왕을 무찌르고 어우락(Âu Lạc) 왕국을 세운 고대 베트남 왕의 이름이다. 어우락 왕국은 당시 베트남 북부에 있는 여러 부족국가 중에서 어우 비엣(Âu Việt) 부족과 락비엣(Lạc Việt) 부족을 통합한 국가로,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민족이 통합된 국가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번 반랑국을 세운 훙꾸옥브엉(Hùng Quốc Vương)을 장자로 낳은 락롱꿘(Lạc Long Quân) 이야기를 연재했었다. 반랑국의 락롱꿘과 어우락 왕국의 안즈엉부엉, 이들을 기리는 두 길은 하노이에서 절묘하게 이어져있다.

정작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매일같이 집에서 수십 번도 넘게 스쳐보는 안즈엉부엉 길, 이 길이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국 다음의 어우락 왕국을 세운 왕의 이름이라는 것. 이렇게만 기억해 두었는데도 밖의 풍경이 전보다 더 생생하다.



세 돌이 지난 요즘의 현우에게는 웬만한 자동차들은 모두 시시한 듯 보인다. 그 자동차들이 로봇으로 변신한다면 또 모를까. 어쨌거나 거실 풍경에 대해 이 엄마가 할 말이 생겼는데 현우가 이해하려면 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만 이라도요 집주인님, 월세 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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