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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원짜리 화장대가 이렇게 튼튼할 일

Đê La Thành st. | 방어용 제방에서 가구거리로

by 예스혜라



지난달 가계부 지출 내역의 상당 부분이 집 가꾸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목록을 훑어보니 신발장에 둘 작은 의자 하나, 베개 커버 세 장, 냉장고 안 정리 바스켓 두 개, 공기 청정기 필터 뭐 이런 것들이다. 사실 진짜로 사고 싶었던 것은 화장대와 TV 수납장이었는데 집에 있는 가구들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바꿔야 할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애써 찾아낸 이유는 딱 한 가지, 단순변심.


마음에 안 드는 저 화장대와 TV 서랍장은 오래전 하노이 델라타잉(Đê La Thành) 거리에서 산 가구들이다. 델라타잉 거리는 목공소와 가구점이 많이 모여있어 한국 교민들에게 '가구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하노이에서 예쁜 가구점을 찾기 쉽지만 당시만 해도 한인타운에 있는 가구 체인점 한 곳을 제외하고는 가구를 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라면 델라타잉 가구 하나쯤은 집에 있을 것이다.


소규모 목공소와 가구점이 줄지어 있는 Đê La Thành


하지만 델라타잉(Đê La Thành) 거리 이름은 가구와 별 상관이 없다. Đê는 제방이나 둑, La Thành은 성을 둘러싼 방어시설을 뜻하는 베트남어로 '성곽을 따라 지어진 제방'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11세기 리(Lý) 왕조 시절에 하노이 수도(Thăng Long)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용 제방을 만들었고 그 외곽 방어선을 이루던 지역이 지금의 델라타잉 거리 구역과 겹친다. 시간이 흘러 도시가 확장되면서 제방이 교통로로 변했고 현재의 델라타잉 도로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가 좁고 차가 많아 교통체증이 잦은 거리



델라타잉 거리는 우리의 신혼시절을 아련히 떠오르게 해 준다. 타지살이 첫 혼수를 여기서 마련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 둘 다 의심 없이 남을 잘 믿고 또 싫은 소리도 못하는 성격이라 해외생활을 시작하며 바가지 씔 걱정을 참 많이 했다. 속된 말로 호구당하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서로 꼭 더블 체크하자며 세상물정 모르고 낄낄대었던, 순두부 같았던 우리였다. 이런 둘이서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침대, 소파, 화장대 그리고 TV 서랍장까지 모두 한 날에 사버렸다. 말랑말랑한 것들이 물러보이지 않으려고 가게 앞에서 등도 돌려보고 계산기도 두드려가며 열심히 흥정했었다.



7년 전에 산 화장대, 아직도 튼튼하니 왜




오늘 아침에도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새로 살 명분을 또 열심히 찾고 있는데 어휴, 오늘도 실패다. 대체 7년 전에 3만 원도 채 안 주고 산 이 화장대는 왜 이렇게 튼튼한 걸까.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도 계속 튼튼할 것 같은 이 화장대를 보니 여보, 우리 그래도 그렇게 호구는 아니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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