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출산과 코로나를 동시에 겪으며 나는 정말 많이 변했다. '변했다'라는 말보다 '성장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도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느낌이라. 어쨌든 벌어진 앞니나 사라진 생리통과 같은 신체적 변화들도 있고, 아이들에 대한 관대해진 시선이나 조금 부족해도 굴러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정신적인 변화들도 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크게 변했다.
하노이에서는 보통 1, 2년 단위로 집을 임대계약한다. 계약 시 보증금은 한 두 달 치 월세로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라 중간에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가 흔하다. 집주인이 집을 갑자기 팔기도 하고 혹은 더 높은 월세를 받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쫓기도 한다. 적절한 보호법도 없어서 하노이에 오래 산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맞닥치면 '아~ 이번에는 내가 당할 차례였구나.' 한다. 수긍 70에 자조 30쯤 되는 이 마음가짐은 베트남에 오래 살며 터득한 나의 짬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니 살고 있는 집에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첫 집이 풀옵션이었어서 가전, 가구는 물론 숟가락까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숟가락정도는 하나 사지, 뭐 그것까지 남이 쓰던 것을 써?' 과거의 나에게 잔소리 한마디가 절로 나온다. 재채기와 사랑만큼 숨겨지지 않는 것이 아줌마 티다. 그다음 해에 노옵션 집으로 이사를 갈 때도 가성비 위주의 가전, 가구를 사들였다. 진짜 우리 집이 생기면 그때 좋은 것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게다가 남편과 나는 둘 다 집에 좀처럼 오래 있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여 집과 관련된 것에는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땐 정말 상상도 못 했다. 10년 후인 2026년 새해도 여전히 베트남에서 맞이하게 될 줄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 와중에 통행증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던 역경의 코로나까지 겪으며, 나에게 집은 먹고 자는 거취의 문제 그 이상을 해소해 주는 곳이 되었다. 요리를 할 바엔 차라리 설거지를 택했던 내가 삼시 세 끼를 지어냈던 부엌, 유주 현우의 감격스러운 첫걸음을 보았던 거실, 짬짬이 온전한 내 시간을 보냈던 안방, 아직도 아기상어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화장실. 집구석구석에서 나는 참 많이 웃고 울고 행복했고 또 위로받았었다. 그때쯤부터 머물고 있는 공간에 애정을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났던 것 같다.
하노이에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식기 세트를 샀고 널찍한 6인용 식탁도 새로 들였다. 거실에 있는 칙칙한 암막 커튼을 다 떼버렸고 스탠드를 두 개나 더 샀다. 돈은 역시 없어서 못쓰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먹고 보니 정리함, 매트리스 커버, 옷걸이 등 바꾸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이 보이던지. 어쨌든 지금의 나는 이렇게 집에 관심을 두고 비우고, 정리하고, 채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의미를 두고 돌보는 이 공간의 기운을 믿는다. 변화된 그 기운은 분명 좋은 에너지로 돌아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다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록 내일이라도 이 집을 떠나야 할 수도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보다 당장 오늘 가족과 보낼 근사한 저녁에 더 집중할 것이다. 이 마인드도 타지에서 10년을 산 나의 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