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포르투갈 12 해리포터가 빗자루를 타는 이유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롤링 작가는 스코틀랜드 뿐만 아니라 포르투에서도 작품 속 영감을 얻었다고 인터뷰한 바가 있다. 렐루 서점의 꼬인 계단을 보고 기숙사와 강의실을 연결해주는 움직이는 계단을 구상했다고는 하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포르투에서 생활했다는 걸 전제로 롤링 작가도 지리지형이 선사하는 고통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허구한 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이 도시에 마법사와 마녀가 산다면 적어도 시민의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이동을 용이하게 만드는 아이템을 한 가정 한 개씩 보급해야 한다는 걸 뼛 속 깊이 통감한 것이 분명하다. 마법 세계와는 걷는 것보다 나는 게 더 어울리고, 이왕 나는 김에 삼단봉보다는 빗자루를 타고 나는게 확실히 키치해 보인다는 귀납적 사고로 해리포터 세계관 속 빗자루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짧게 말하면 포르투의 지리지형은 극악무도하다. 포르투 3일차, 해리포터 음모론에 이어 아무래도 포르투에 살던 사람들이 수도를 옮기는 중에도 그 놈의 언덕을 잊지 못해 리스본으로 이주한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마저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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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쾌하게 마제스틱 카페에서 아침을 연다.
“아이스 라떼 주세요.”
“그건 없는 메뉴예요.“
어제 와서 얼음이 동동 띄워진 라떼를 먹었는데 여기는 주기마다 메뉴가 바뀌나.
“대신 얼음 넣은 뜨거운 라떼는 있어요.“
“그럼 그거 주세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우치는 이곳은 포르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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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브런치 메뉴로 아몬드 타르트와 에그 타르트, 프렌치 토스트, 햄치즈 크로와상을 시켰다. 적어 놓고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구나 싶긴 하지만 한 입씩 먹으니까 금방 사라졌다. 크로와상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 마제스틱 카페는 이름도 잘 지었다. 뭐가 됐든 한 입씩 먹을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 곳을 방문할 의향이 있는 여행객들에게는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가 프렌치 토스트라고 해서 단독으로 그것만 시키지 말고 위장 내부 확장 공사한다고 마음 굳게 먹고 이것저것 시키고 한 입씩 꼭 먹어 주길 바란다.
나도 여행을 떠나기 전 각종 질병질환으로 위장이 잔뜩 쪼그라들어 애석하게도 여행 중에 한 끼를 거대하게 먹을 때마다 탈이 나 힘들긴 했다. 하지만 소화제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 메뉴를 탐구해보는 것이 후회가 덜 남는다는 결론이 이르렀다. 소화불량에 뒤따르는 신체적 고통보다 포만감이 주는 정신적 포만감이 약간 앞서기 때문에 미련한 소리로 들릴 수는 있어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의 신체적 기량을 발휘해 최선을 다해 먹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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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간단한 진수성찬을 먹고 향한 곳은 볼량 시장이었다. 마제스틱 카페를 따라 거리를 쭉 걷다 보면 쇼핑몰과 재래 시장이 있는 상업 지구가 나온다. 특히 볼량 시장은 많이들 간다기에 한 번 들린 곳에 불과했는데 도착해서 둘러보니 생각보다 규모도 제법인데다 볼거리가 많은 곳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 둘러볼 곳이 많은 시장이었으면 좀 더 빨리 움직일걸 하는 여행객다운 아쉬움이따랐다. 그래도 다음 날 에어비엔비 체크 아웃을 하고나서 잠깐 다시 올 수 있을 정도로 숙소와의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밀려든 헛헛함을 달래 보기로 한다. 그리고 물론 도시를 떠나기 전 볼량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쇼핑을 마침으로써 포르투 여행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것을 미리 말해야겠다.
렐루 서점으로 향했다. 우린 미리 홈페이지에서 표를 예매했는데 이 또한 에어비엔비 호스트의 백만가지 추천 사항 중 하나였다. 지난 몇 가지 선택을 그의 조언을 바탕으로 결정했기에 전날 저녁에 미리 렐루 서점 입장권도 사놓기로 했다. 역시나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했더니 긴 대기줄을 뚫고 바로 시간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다. 서점은 들어서자마자 호그와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내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이미 소설과 영화를 여러 번 읽고 보았기 때문에 작가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찾아낸 거지만 그보다 신기한 건 어떻게 이 서점에 들어서서 마법으로 움직이는 계단을 연상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호그와트에서 움직이는 계단은 그야말로 마법의 신비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개체 중 하나다. 우리가 사는 세계, 즉 머글의 세계에서 마법 세계로 차원 이동시켜주는 여러 오브제는 시리즈의 가장 첫 작품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환상적으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조촐하게 끊임없이 날아드는 부엉이 떼와 그들이 전달하는 호그와트 입학 통지서와 호그와트의 문지기인 해그리드가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해리를 데리러 온 것. 그리고 킹스 크로스 역에서 나타난 9와 4분의 3 승강장은 곧장 시리즈의 독자마저 호그와트 직행열차에 태워 버린다. 열차가 증기를 뿜고 맹렬하게 달리며 도착한 호그와트의 육중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곳이 마법 세계의 마법 학교라는 것을 증명하는 명백한 단서가 곳곳에 심어있다. 해리는 바로 전날까지 머글이었기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법한 광경이 그를 마주한다. 날아다니는 연회장의 그릇, 말하는 모자, 기숙사를 지키는 액자 속 움직이는 인물, 움직이는 계단. 소소하게 머글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마법의 힘을 만나 탄생해서 더 매력적인 세계가 독자의 머릿 속에 그려진다. 소설 속에선 단지 한두 페이지로 묘사되었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는 해리가 어떤 세계에 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해리가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하기 전에 독자는 이미 마법 세계에 푹 빠져버린다.
렐루 서점은 사람으로, 아니, 머글로 북적거렸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여기도 어떤 책을 특정 페이지로 넘기면 마법 세계로 가는 통로가열린다든지, 이 곳에 일하는 직원 중에도 오러(마법 정부 소속 직책)가 있다든지 하는 터무니없으면서도 영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걸 과몰입이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이런 과몰입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과몰입 가능한 분야가 있어야 일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사고 우린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곳도 마찬가지로 에어비엔비 호스트의 추천 목록에 있었는데 이쯤되니 우린 호스트가 여행 일정을 짜준거나 다름이 없었다. 포르투 중심지에서 40분을 가면 해안가가 나오는데 거기에 본점이 있고 중심지에 위치한 이 곳은 분점이라고 했다. 3박 4일 일정상 아예 해안가로 나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대신 이 레스토랑에서 포르투 해안의 맛을 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은 참이었따. 도착하니 3시에 영업을 마치는데 남은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타미가 들어가 종업원과 나름의 협상 아닌 협상을 하더니 우리까지는 손님이 빠지는대로 테이블을 마련해주겠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연남동 가게 웨이팅에 단련된 우리에게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가게 셔터를 내리는 게 무섭지, 기다림은 여행객의 미덕이지 않은가.
레스토랑은 의외로 내부가 널찍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단정한 차림새의 웨이터에 기대감이 고조됐다. 무엇보다도 이미 자리 잡아 식사를 즐기고 있는 손님들 테이블을 장식한 음식의 자태가 어찌나 영롱하던지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선택의 시간은 참으로도 행복에 겨운 고통이었다. 물론 여태 포르투갈에서 해산물 음식을 다양하게 먹어왔다지만 이 곳은 아주 제대로 된, 그러니까 정통 해산물 집이란 걸 메뉴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이었다. 우린 겨우 메뉴를 추리는 데 성공한다. 해물밥, 문어 샐러드, 농어 구이, 대구 요리. 줄줄이 주문한 요리가 도착했다. 상 다리가 휘어도 한참을 휘어질 차림이었다.
해물밥은 단연코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했고, 문어 샐러드의 풍미와 신선함은 완벽한 에피타이저였다. 농어 구이는 등장과 함께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종업원이 직접 손질해 살점만 개인 그릇에 올려 주었다. 이 과정에서 상황이 발생했다. 전제는 그 종업원이 브래들리 쿠퍼를 닮았다는 것이다.
“근데 우리 종업원 브래들리 쿠퍼 닮지 않았냐?”
“오, 진짜.”
여기서 끝난 대화였으나 안타깝게도 상황은 예상치 않은 국면에 접어든다. 포르투 브래들리가 한창 농어를 손질하고 있을 때 언니가 주접을 참지 못한 것이다.
“저기, 제 동생이 그러는데 브래들리 쿠퍼 닮았대요.”
저 경거망동한 입을 문어 다리로 꽁꽁 동여 매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포르투 브래들리는 눈부신 미소를 짓는다. 하하, 칭찬 고마워요, 라는 에코가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아아, 그는 그렇게 갔습니다, 농어만 남겨 둔 채.
바다향 나는 점심을 해치운 뒤, 우린 아줄레주로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한 성당에 잠깐 들리고 바로 대성당으로 내려 갔다. 대성당까지는 쭉 내리막길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편했지만 그만큼 다시 숙소로 되돌아가는 길이 고달플 것을 알았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던 차였다. 어느 샌가부터 샛길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아마 다들 대성당으로 향하거나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대성당 아래에는 강변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있는 곳이어서 슬슬 인파가 많아질 지점이긴 했다. 가파르고 좁은 길이 점점 넓어지자 대성당은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우리가 정문이 아닌 대성당의 후면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포르투는 어딜 가도 웬만큼은 높아서 도시가 다 내려다 보이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이 언덕을 매일 같이 오르내리는지 몰라.“
“그래도 생활 체력은 좋을 지도 모르겠다.“
“비오거나 눈오면 교통 체증은 장난 아닐 거 같긴 한데.“
“장단이 분명하네.“
“그렇지.“
대화의 양상은 별 의미도 없고 감흥도 띠지 않았던 반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속 시원하게 끝없이 펼쳐지는 붉은 지붕과 벽돌의 연속이었다. 한 쪽으로는 강가가, 다른 쪽으로는 포르투 도심이 반대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꼭대기까지 품고 있었다. 반면, 황홀한 풍경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여태 포르투 도심을 헤매서, 또 밟고 지나온 모든 길이 울퉁불퉁한 돌길이어서 지쳐버린 우리는 대성당 안을 들어가 구경하는 대신 차라리 커피나 시원한 음료를 더 마시는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우린 강변을 바라보는 모퉁이에 차려진 작은 카페 안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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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침은 평화로웠다. 포르투가 늘그랬듯이 말이다. 우린 마지막까지 호스트의 추천 리스트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아저씨가 말해준 포르투에서 제일 맛있는 에그 타르트 집에 가서 세트를 시켜 커피와 함께 먹었고, 볼량 시장으로 직행해 마지막으로 살 거리가 있는지 둘러 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나름 있다고 엊그제 내가 타미랑 먼저 가본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맥도날드에 한 번 더 갔다. 무도회장처럼 꾸며진 내부에서 난 오레오 한 스쿱 더 추가한 오레오 맥플러리를, 엄마는 라떼를 주문했다.
포르투에서의 3박 4일이 그렇게 흘렀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속도로 우린 여행의 끝에 다다랐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시간이 흘러 이윽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왔다는 걸 뒤늦게 체감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곳은 참 희한한 도시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모든 게 다 변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인데 포르투는 왠지 모르게 언제나 포르투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도로가 생기고, 차와 자전거가 다니지만 그걸 대신하는 자갈이 깔린 길과 말을 탄 마부를 상상해도 무엇 하나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게 없다. 묘하게 시간의 법칙과 자연적인 흐름을 비껴나가 있는 것만 같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변하고, 내 주변의 사람이 변하고, 내가 가진 것들까지 변했을 때 다시 포르투에 온다하더라도 변함 없이 붉은 빛 노을과 반짝이며 일렁이는 강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되어 버릴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내 모습도 포르투 곳곳에서 하나씩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좁은 길목을 돌아서, 마제스틱 카페의 한 자리에서, 바람이 부는 모루 언덕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