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포르투갈 09 포르토, 포르토!
이번 가족 여행의 주제는 4일마다 한 번씩 바뀐다. 엄마와 언니가 총 12박 14일을 하기 때문에 3분의 1분기마다 여행의 방향성이나 장소가 새로 정해지는 셈이다. 첫 4일은 리스본 시내, 그 다음 4일은 포르토 여행, 마지막 4일은 리스본 근교 도시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과 리스본에서 첫 4일을 지낸 지금, 다음 행선지는 포르토였다.
포르토는 석사 생활을 하면서도 내내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결국 가보지 못한 도시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포르토를 들리고, 가장 인상 깊은 도시라고 꼽던데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오히려 리스본보다 특색이 있다는 얘기도 가본 친구들로부터 몇 번 들은 기억이 있다. 포르토는 리스본 이전의 포르투갈 수도였기에 우리나라 경주처럼 옛 수도 특유의 곶넉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짐작을 하고는 했다. 락다운이 시행 되고 포르토는 무슨, 집 밖에도 못 나간다며 애석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엄마와 언니, 타미까지 함께 가는 여행이라니 참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타미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자면 그의 신상은 이렇게 짧게 소개할 수 있겠다. 포르투갈-브라질 혼혈이자 리스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역사학도. 내 석사 생활 중 리스본에서 만나 21년부터부터 나와 교제하고 있는 남자친구이다. 이번 포르투갈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집을 구하는 과정이나 가족 여행을 함께 계획하는 것처럼 굵직한 것부터 사소하게는 포르투갈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것까지 이번 리스본살이를 보다 쉽게 만들어 주어 고마운 게 많은 친구다. 포르토 여행도 그렇게 합류하게 되었다. 포르토에서 어디를 가는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그럼 너도 같이 가지 않겠냐며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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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포르토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여정은 편도 3시간 정도가 걸린다. 포르투갈 기차에 재미있는 점을 꼽자면 열차 한 칸을 카페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 카페처럼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직접 커피를 내려주고, 샐러드나 샌드위치류 같은 음식도 따뜻하게 데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기차에서 섭취할 수 있는 자판기 간식이나 음료보다는 종류도 많을 뿐더러 질적인 면에서도 낫다. 게다가 열차 내라고 특별히 부가 요금이 붙어 비싼 가격도 아니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감자칩과 샐러드, 음료수 몇 개를 사서 먹으며 기차 여정을 마쳤다. 포르토에 도착하니 3시였다. 택시를 잡아 에어비엔비로 곧장 향했다. 에어비엔비를 구할 때 가장 신경쓴 것은 첫째는 위치, 그 다음이 숙소의 상태였다. 특히 4명이 3박4일을 묵을 것이었으므로 방과 화장실의 갯수나 거실과 부엌 같은 공용 공간의 규모를 신경 썼다. 엄마랑 여행을 하는 것이다보니 여러모로 꼼꼼하게 따질 것이 많아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나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스본에서 묵는 집은 아주 만족스러웠고 엄마가 여태 편안하게 지내고 있어서 기차에 내릴 때는 곧 보게 될 포르토의 숙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포르토의 에어 비엔비의 위치는 합격이었다.. 모든 관광지를 걸어서 20분 이내면 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포르토도 언덕이 많은 곳인만큼 숙소의 위치가 높은 곳에 있어 어디든 갈 때는 쉽게 내려갈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호스트가 2년 전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오래 되었어도 집 자체는 깨끗하게 단장 되어 있었다. 호스트도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약 10여분가 동안 숙소 구석구석을 살펴 설명해 주었고, 근처에 갈 수 있는 동네 맛집도 메뉴별로 알려 주었다. 가방 정리를 마친 후, 우린 그 길로 호스트가 알려준 맛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프란세지냐?“
“프란세지냐는 포르투갈 말로 작은 프랑스 소녀.”
타미가 더듬더듬 한국말로 설명했다. 그러자 바로 치고 들어오는 후속 질문.
“왜 하필이면 프랑스였대요?”
“아, 그건, 옛날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가난해서 프랑스 음식 보고 저렇게 만들어야지, 해서 그렇게 된 거 였어요.”
“오, 그래서 포르투갈 대표 음식이 되었다?“
“포르토에서 유명해요. 여기가 리스본보다 진짜.“
타미는 아는 말 모르는 말 총동원해서 프란세지냐 설명을 마쳤다. 우린 집 앞의 프란세지냐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왔다. 프란세지냐는 꼭 여기서 먹어야 한다는 호스트의 말을 듣고는 달려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부실한 아침 식사로 배가 그렇게나 고플 수가 없는 상태였다. 메뉴판을 보고 프란세지냐 2개와 와인을 시켰다.
언니는 내가 와인 마시는데 맛 들였다며 타박을 했다. 그런데 여행을 가면 산지를 먹고 마시라는데 어쩔 수가 있나.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값싼 와인과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데 매 끼니마다 안 마시고 배길 수가 있냐는 말이지. 어차피 술을 즐기지 않아 나는 와인을 마시면 보통 화이트를 마시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와인 리스트마다 그린 와인이 있어 처음 시도했을 때 맛과 특유의 산뜻함이 좋아 매번 그린 와인을 시키고 있던 참이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볍고 마시기 편하니까 내내 시켜왔는데 막상 또 주문하려니 궁금증이 일었다. 왜 와인 종류가 그린 와인이지? 익히 알고 있는 레드, 화이트, 로제까지면 몰라도 그린 와인은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장르였다. 빠른 인터넷 검색 결과, 비뉴 베르데는 덜 익은 상태에서 숙성을 시켜 신맛이 많이 가미된 와인으로 포르투갈에서만 생산이 된다고 한다. 난 이 사실을 접한 이후로는 더욱더 비뉴 베르데의 광적인 마니아가 되었는데 괜히 포르투갈에서만 생산되는 와인이라고 생각하니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 이거 1인1프란세지냐 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어쩐지, 2인분이라고 친절하게 써있기는 하더만.“
너무 작은 글씨로 써있어서 못 보고 넘어갈 뻔 했다. 프란세지냐 4개 시켰다가는 오늘 가기 전에 다 못먹었을 지도 모른다. 등장한 접시에 담긴 양을 보고 일차적으로 놀라고, 그 위를 다 덮은 치즈의 양에 그 다음으로 놀랐다. 하지만 진정한 프란세지냐의 묘미는 음식을 한 칼 잘랐을 때 드러나는 층층이 쌓인 속에 있었다. 그냥 뭉쳐 놓은 고기 패티가 아닌 두툼한 고기를 깔고 그 위 아래로 빵과 소스, 치즈가 이루는 환상적인 지층은 입에 절로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치즈 폭포를 뚫고 나이프로 잘라 한 입들 크게 베어 물었다. 예상 외로 강력한 비쥬얼에 비해 짠맛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두꺼운 고기가 치즈의 짠맛을 중화 시켜 주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고기 양에 난 결국 1/2 프란세지냐도 다 끝내지 못했는데 엄마는 모조리 다 해치웠다. 강경한식파인 엄마가 그 대척점에 서있다해보아도 무방할 프란세지냐를 이렇게 좋아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높은 치즈 산을 넘지는 못했지만 나도 프란세지냐 본토에서 그 메뉴를 첫 끼니로 먹었다는 것에 대해 큰 만족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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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서 배가 잔뜩 부른 상태가 되자 본격적인 관광객 모드를 취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딱이다. 배가 채워지고 나서야 주변 배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담하고 길쭉한 집들, 울퉁불퉁한 돌길바닥, 붉은색 타일의 지붕들. 전체적으로 리스본의 전경과 닮아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리스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품은 듯해 정말로 포르투갈의 옛 수도다운 분위기다웠다. 포르토의 전체적인 풍경을 멀찍이서 눈에 담고 싶다면 동 루이스 다리를 향하면 된다. 동 루이스 다리는 포르토에서 적어도 한 번은 갈 수 밖에 없는 ‘그 다리‘다. 모로 향해도 이 다리로 통하게 되어있고, 강 건너편의 와이너리라든지 모루 정원, 수도원 같은 관광 명소를 들리기 위해서도 이용하게 된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철교지만 에펠탑을 건축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를 맡았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 새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는 ‘그 다리’. 사실 나도 사전 지식 없이 다리를 건넜다가 엄마가 옆에서 으이구, 넌 이것도 모르냐, 면서 일장연을 한 뒤부터는 괜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에펠탑을 에펠탑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심플한 철탑이라는 점인 것처럼 동 루이스 다리를 포르토의 ‘그 다리‘로 각인시켜주는 것 또한 심플한 철교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복층으로 이루어져 상층부는 트램과 보행자가 교행하고, 하층부는 자동차와 보행자가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직접 건너 보면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상층부의 다리는 보행자 전용 도로의 폭이 좁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트램이 다니지 않을 때면 차도 밖으로 나와서 걷기도 한다. 그러다 트램이 지나갈 때면 클락션을 거세게 울려 가며 보행자에게 비키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게 마치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로 가는 열차의 기적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름 낭만적인 망상 중에 나란히 걷던 타미가 “여기 트램 기사는 일하면서 성질 다 버리겠다“면서 산통을 다 깨버린다. 동 루이스 다리는 낮은 것도 아니다. 상층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 무리가 검은 점처럼 보인다. 하층부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거기서는 떼로 몰려다니는 개미들로 보인다. 그런 아찔한 높이에서 하층부 철교 난간 위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를 걷다가 냅다 수면 위로 풍덩 뛰어서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환호와 비명 속에서 직접 그 광경을 목도했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었다. 타미는 심드렁하게 저 사람들 경찰에 다 신고해야 된다면서 또 다시 거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써 촌철살인을 날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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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 정원은 언덕이 진 작은 녹지다. 정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정갈하게 가꾸어진 느낌의 꽃밭보다는 사방이 탁 트인 풀밭에 더 가깝다. 하지만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넌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다 강가를 바라보고 있으니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하나의 작품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너편의 알록달록한 건물과 겹겹이 쌓인 언덕층, 그 뒤로 하늘이 푸른 조각보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는 걸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팝업북처럼 한 겹 위에 질감과 색이 다른 겹이 포개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다. 포르토의 노을은 반드시 모루 정원에서 맞이하라는 글을 블로그에서 많이 읽었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실제로 보지 않아도 머릿 속으로는 어떨지 가늠이 되었다. 높은 곳에서 내다보는 강변의 노을, 기막힌 석양을 낳는 완벽한 레시피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해가 넘어가려면 적어도 9시에 가까운 시간은 되어야 했다. 바람도 너무 심하게 부는데다 그 날 하루만 해도 쉼없이 거렁다닌 탓에 피로가 쌓일대로 쌓였다. 결국 언니와 엄마를 모루 정원에 남겨두고 나와 타미는 일찍 숙소로 향했다.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데 1일차부터 어쩌다 이렇게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게 되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논리로는 풀 수 없지만 여행을 하게 되면 아무리 게으른 자도 평상시보다 대략 1.5배는 부지런해진다. 일단 남은 포르토 여정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겠다 생각하며 1일차 여행을 마감했다.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남겨놔야 앞으로 할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 스스로를 설득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