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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Aug 16. 2024

[대전] home, sweet home!

열음방학 02 7월30일-8월3일

대전은 나의 오랜 집이다. 나고 자라 대학교 때 첫 독립을 하기 전까지 한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살았으니 모든 기억과 추억은 거진 그곳에 묻어 있다 해도 무방하다. 큰 대, 밭 전. 옛 말로는 한밭. 언제든 달려가도 좋은 그곳은 어떻게 가든 날 거두어주는 넓디넓은 품이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운전 연습을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과 아직도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유아퇴행적 관념이 버무려져 격주에 한 번씩은 대전을 가고는 했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대전행 기차를 타고는 했다. 주중에는 서울 집, 주말에는 대전 집을 오가는 생활 중에서는 대전 집이 오히려 더 반갑고 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 가면 따뜻한 물, 따뜻한 밥이 기다리는 데다 부모님의 환대는 더할 나위 없는 덤이었으니 말이다. 주말 중 하루는 꼭 차를 30분에서 1시간쯤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로 나들이 장소를 물색해 운전을 다녔다. 주로 엄마는 보조석, 아빠는 골프 일정과 귀찮음을 이유로 자주 행차하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오더라도 보조석은 노상 엄마의 자리였다.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세종까지 나가기도 하고, 잠깐 바람 쐬고 온다고 근처 예산이나 금산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니 내 운전 실력을 키운 건 8할이 충청의 길이었다.


그러나 올해 학교를 옮기고 나서는 도통 대전에 내려갈 짬이 나지 않았다. 작년 12월부터 주말 시간을 이용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금요일 대전행 기차로의 발길을 끊은 탓이다. 아무리 학교 일이 한가로워졌다 해도 주말 시간이 자유롭지 않으니 대전을 내려가기 빠듯해졌다. 강제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호회 활동을 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지라 잠깐 대전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어 부모님도 내심 서운해하셨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이나 이번 여름 방학이 시작한 다음에 조금 길게 대전에 내려가 있어야지 싶었다.

냅다 빵 사진 올리기

대전에 내려가 있는 동안은 엄마의 밥상과 아빠의 관심을 포식한다. 엄마는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어 복숭아를 애정하는 만큼 섭취할 수 없는 나에게 매일 2개씩 먹을 수 있도록 아침마다 깎아준다. 위장병을 달고 살기 때문에 때를 딱딱 맞추어 아점과 점저를 먹는다. 그 사이 커피와 디저트는 엄마와 내가 오랜 기간 맺은 파트너십으로 척하면 척, 그날 그날 컨디션에 따라 카페를 달리한다. 주로 가는 곳은 둔산동과 탄방동에 위치한 카페들인데 남선공원 스포츠머리 사장님 가게, 탄방동 일본 유학파 장인 가게나 둔산동 라떼 맛집으로 걸음 한다. 아빠는 그 사이를 비집고 박사 과정 지원은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거취는 어떻게 정할 건지에 대해 여쭈어 보시고는 한다. 계획이 특별하게 없기에 딱히 세워진 계획이 없다고 보고하면 아빠는 이러한 딸의 무계획성을 논리적으로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수긍하신다.


대전은 진정으로 노잼 도시가 맞다. 대전 시민인 내가 인정하는 바니 이건 지역 비하도 멸칭도 아니다. 오히려 대전 시민으로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예로부터 대전은 극단적인 자연재해나 모두의 이목을 끌 만한 사건 사고가 특별히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다. 전면적으로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이나 지역 명소라든가 지역색이 두드러지는 특정 분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알음알음 지역 주민들이 찾아가는 동네가 있고 즐길 거리가 있다. 사시사철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지만 대전에서 왔어요, 하면 타지방 사람들은 그렇군요, 거기 살기 좋다면서요, 하는 그런 동네. 어느 교실에나 있는 조용하긴 해도 가끔씩 지우개 없으면 뒤에서 쓱 빌려주는 그런 친구 같은 동네.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편한건가. 이 작은 나라에서도 지역감정이 있고,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편견과 편향적인 시선이 떨어진다는 게 참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부터도 누가 대전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발끈할 때가 있는지라 나고 자란 동네가 내 정체성의 일부를 이룰 수 있긴 있구나 싶어 진다.


올여름은 며칠을 얌전히 대전 바닥에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배가 자주 아파 항상 집을 나섰다 멈추어 서던 보도블록 길, 친구들과 뛰어놀던 평상, 가기 싫어서 떼쓰던 상가 피아노 학원, 아파트 앞 경비 초소를 드리우는 왕벚꽃나무. 남아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며 사라진 것도 있고, 새로 생겨난 것도 여럿이다. 그래도 대전은 대전이다. 홈, 스윗 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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