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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남녘, 섭씨 42도

스페인 유랑단 08

by 이해린

7월 21일 마드리드 가로지르기

그라나다로 내려갈 때, 마드리드를 경유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바로 내려가기에는 편도 7시간의 대장정을 감수해야 했기에 중간 정착지를 마드리드로 설정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마드리드 아토차역까지 3시간, 다시 마드리드에서부터 그라나다까지 3시간 정도였다. 마드리드 중심지에 숙소를 잡는다면 하루 정도 여기저기 둘러봐도 될 일정을 야심 차게 세워보았다.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 이르렀다. 세 시간의 기차 여정을 마치고 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차 좌석에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그 새 녹초가 되어 몸이 절로 지친 육신을 뉘일 곳을 갈망했다. 하지만 우린 바로 숙소로 향할 수 없었다. 캐리어 보관소에 잠시 짐을 맡기고, 피카소의 그림을 보러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가야 했다. 가고 싶다고 말하기보다는 가야만 한다는 결연한 의지에 가까운 마음으로 힘차게 전진했다. 돌길 위를 걸으며 캐리어 바퀴가 용맹스럽게 굴러갔다.


저녁에는 좀 쉬어야겠다, 언뜻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구매와 지출에는 보태보태 병이 있다고 기차 여정을 마치면 피로할 것이 예상되었는데도 추가 일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드리드까지 왔으니 말이다. 저녁이 되면 노란 가로등이 밝힐 광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눈꺼풀에 졸음이 내려앉아도 꿈벅거리며 애써 털어내야 했다. 그 광경을 놓칠 수는 없지. 숙소에서 광장까지는 걸어서 15분, 갈 만한 거리였다. 다만, 광장에 도착했을 때 광장이 눈에 들어오기는커녕 급하게 처리할 일이 터져 버렸다. 기숙사 방에 개미 떼가 나타난 것이다.


룸메이트 줄리아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 왔다. 사실, 개미 떼의 출현은 마드리드로 향하기 3일 전부터 있었다. 빼꼼 한 두 마리가 나오나 싶더니, 열 마리, 스무 마리, 종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규모의 개미 떼가 나란히 정렬해 집안 구석구석, 벽의 틈과 균열 사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 두 차례의 방역을 치렀다. 방역 업체 직원은 며칠 시간을 두어야 소멸할 거라고 했지만 방역 후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을뿐더러 마드리드 광장에서 부엌 공간까지 침투했다는 비보를 전달받으니 불안은 공포로 번졌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를 부여잡고 고심했다. 줄리아는 기숙사 행정실에 방 교체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시로 배정받은 방은 여러 모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방보다 조건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개미 떼의 습격에 방을 잃어버린 신세가 되는 것은 영 석연 찮았다. 우리가 원주민인데 이렇게 궁색하게 내쫓기다니, 제대로 된 반격은 펼쳐 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광장에서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행정실에 방을 옮기지는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추가 방역 일정을 조율했다.


마드리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우리는 피곤했지만 그 와중에 할거리와 볼거리를 놓칠 수 없었다. 말차 라떼에 푹 빠져 버린 요즘, 집 앞 까페에서 말차 한 잔을 시키고 바로 옆의 힙해 보이는 동네 베이커리에 들어가 패스츄리를 한가득 시켜 아침으로 먹었다. 교과서에 손바닥만 한 크기로 등장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사실 미술관 한 벽을 몽땅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였다. 전쟁과 학살의 참혹함을 담은 그림을 가까이서, 또 몇 걸음 떨어져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마드리드의 반나절은 짧았다. 하지만 나름 나름 여유를 즐겼고, 또 나름 나름의 탐방을 했다.


7월 22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궁전을 위한 도시였다. 그래서 숙소를 잡을 때도 궁전 같은 숙소를 골랐다. 침대에 드리워진 나풀거리는 천과 앤티크한 소품이 곳곳에 놓인 거실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삽입된 한 장면을 발췌한 것 같았다. 흙으로 빚어지고 태양볕으로 구워진 것 같은 거대한 토성의 느낌을 주는 그라나다와 참으로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거실에 놓인 소파에 누우면 알함브라 궁전의 성벽과 그 안에 솟구쳐 있는 탑 꼭대기가 손톱의 하얀 부분만 큼씩 살짝 보였다. 낭만이 충만한 전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허거지겁 라면을 끓여 먹었다. 뜨끈한 라면 국물에서 피어오르는 김 한 줄기와 그 새로 보이는 탑의 꼭대기는 조화로움과는 제법 거리가 먼 그림을 일구어 냈지만 어쨌거나 라면이 낭만적이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7/23 알함브라 궁전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알함브라 궁전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엄마, 이모, 나까지 세 명을 처음에 예약하기는 했지만 더위에 약한 나는 고민하다가 투어를 취소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오전 내내 알함브라 궁전과 테네리페 정원까지 훑는 일정인데 괜히 무리하다가 탈 나면 이어지는 일정에도 영향을 줄까 봐 지레 겁이 났다. 아, 이것이 유랑 단장의 숙명인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읊조리며 조용히 취소 신청을 눌렀다. 그래도 입장까지는 같이 할 예정이었다. 이미 티켓을 사기도 했고, 이왕 온 김에 궁전 내부를 둘러보지 않으면 아쉬울 게 뻔했다.


알함브라 궁전을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 분 이상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앞만 보고 오르지 않길 바란다. 중간중간 멈추어 뒤돌아 보면 전보다 높아진 만큼 더 넓어진 구시가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잠깐잠깐씩 아픈 다리를 쉬어주는 건 이렇게 훌륭한 경치를 보기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핑계도 댈 수 있다. 오르다 보면 나타나는 입구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알함브라 궁전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모인다.


엄마와 이모를 먼저 보내고 나는 홀로 탐방에 나섰다. 그라나다와 알함브라 궁전은 2019년 스페인 남부에서 석사를 할 때 친구와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11월이어서 목도리와 재킷을 걸쳤는데 지금은 내놓은 팔도 햇볕 아래에 서면 덴 듯 금방 뜨끈해진다. 그때, 그라나다에서 엘피 플레이어를 샀다. 기념품 치고는 묵직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동네 골목 레코드 샵에서 팔던 엘피 플레이어가 하루 보내고도 눈에 계속 아른거려 이튿날에는 품에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 엘피 플레이어는 한국에까지 무사히 도착해 접촉 불량으로 고장 나기 전까지 몇 년을 수천 번의 엘피 판의 오목볼록한 선을 따라 불안정한 음율을 연주해 주었다. 그라나다는 내게 그런 산뜻한 낭만을 선사한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마주한 그라나다는 여전히 따사롭고 낭만이 짙게 배어 있었다.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근사한 전경. 이만하면 그라나다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음악당에서 엄마, 이모와 다시 합류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이제 슬슬 허기가 질 시간이었다. 우리 숙소에서 왜 알함브라 궁전의 꼭대기가 보였는고 하니 그만큼 가까워서였다. 실제로 궁전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우리 숙소의 붉은 벽돌이 내려다 보였다. 숙소 앞 식당이 즐비한 거리가 있는데 그곳 중 하나를 골라 점심 식사를 할 요량이었다. 남부에 왔으니 안달루시아 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리에 앉았다. 메뉴 델 디아, 종업원의 안내를 들으니 안달루시안 요리가 거진 다 포함되어 있었다. 살모레호와 가스파초가 전채 요리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더운 여름날 오이냉채를 마시는 것처럼 열기가 들끓는 이곳 남부 지역에서도 토마토로 만드는 냉수프가 여름에 먹는 전통 요리다. 상큼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함께 입맛이 싹 돈다. 더 감동적인 건 이게 고작 전채 요리라는 것, 아직 본식과 후식은 나오지도 않았다 이거지. 어는 나라를 가든 남부를 가야 한다. 남부로 내려 갈수록 식탁 상다리가 더 휘어지는 건 지구촌 공통 불문율이다.


“내일 우리 일찍 일어나야 돼. 한 8시쯤에는 나가야 될 것 같은데.”

“걱정 마라. 그나저나 내일 냉장고를 다 비워야 되는데 아침에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뭐 남았지?”

“복숭아, 아까 식당에서 포장한 치즈케이크. 그리고 카레로 아침 먹어야지.”

“아침부터 진수성찬이네.”

“차 오래 타는 날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

아무래도 피곤한 하루였다. 여행을 떠나면 하루하루가 영글 차서 저녁에는 잠도 잘 온다.


그런데 아마 잠이 너무 잘 온 탓일까.

“일어나! 늦었어, 늦었어.”

“몇 신데?”

“여덟 시!”

어라, 그건 우리가 나가야 될 시간인데. 얼떨떨했다. 밖에서 엄마와 이모는 2배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 복숭아는 어떡하지? 자를까? “

“복숭아? 무슨 복숭아, 그냥 치워!”

엄마는 복숭아 타령하다가 이모한테 혼나고 있었다.

“배고픈데, 쩝. 치즈 케이크는 가방에 넣어가야 되는데. “

난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가운데 서있었다. 오늘은 승합차를 타고 세비야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8시 반까지 집합 장소에 나타나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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