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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 질러 세비야로

스페인 유랑단 09

by 이해린

그라나다에서부터 세비야까지. 비행이나 열차 대신 우리가 택한 옵션은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샌딩 투어 상품이었다. 출발지는 그라나다, 도착지는 세비야. 중간중간 경유지가 껴있었다. 멈추는 지점은 렌터카 없이는 들리기 힘든 소도시들. 내가 운전대를 잡지도 않고 갈 수 있다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집합 시각은 8시 30분. 그래서 8시 출발을 약속한 것이다.

“지금 몇 신데?”

“8시!”

출발 시간이 기상 시간이 되면서 조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집 바로 앞에서 택시가 멈추어 섰다. 구시가지에 있어선지 아침부터 우버를 잡는 것도 일이었다. 일단 나가보자, 길가에 서 있으니 마침 유유자적히 지나가던 택시 한 대가 보였다. 기사님은 짐을 긷고 유쾌하게 출발했다. 알고보니 그라나다 인싸셨는지 골목을 돌아서며 맞은 편에 다른 택시 기사라든지, 환경 미화원이 있으면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인싸력이 충만한만큼 도시를 속속들이 잘 아시는 기사님은 요리조리 솜씨 좋게 좁은 골목 새로 택시를 구겨 넣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야간 버스를 탄 것처럼 말이다. 구시가지는 맨 바닥에 꾸불거리는 면발이 얹혀진 것 같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점 지대가 낮아지면서 겹쳐진 길을 돌고 돌다가 어느 틈으로 툭 내던져지듯 시내로 튀어 나왔다. 8시30분. 우린 제일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라나다 인싸 기사님, 감사합니다. 무챠스 그라시아쓰예요.


첫 정거장, 프리힐리아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한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고, 언제 정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가이드님이 분명 풍경만 보지 말고 역사와 정보도 같이 머리에 담아두랬는데 이런 비경을 보면 도저히 머리에 뭐를 남길 수 없다. 눈으로 보느라 바쁘고, 사진 찍느라 정신 없다. 배배 꼬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비탈길이 나오고 트인 곳에는 삐죽 지중해가 새파란 자태를 드러낸다. 하늘도 파란데 바다는 더 푸르러서 서로 평행을 그리다가 지평선의 끝으로 가면 결국 하나의 선으로 맞닿아 있게 된다.


다은 정거장, 네르하

유럽의 발코니란다. 여기 가면 유럽의 가장 뭐시기라 그러고, 저기 가면 또 유럽의 다른 거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겠다. 감탄사와 수사어구가 자꾸만 붙여지는 풍경이 끊임 없이 나와버리는데 어쩌냐 이 말이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돌아다니다가 턱이 슬슬 아파질 쯤에 입을 다무는 걸 떠올리게 되는 동네인거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식당을 들어갔다. 추천받은 밥집을 가고 싶었는데 여는 시간이 아니라 발 닿는 곳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활짝 열린 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러니까 또 입이 쩍 벌어진다. 이번에는 벌어진 입이 닫히기 전에 스테이크와 화이트 와인도 함께 들어갔다.


마지막 정거장, 론다

론다의 누에보 다리에 당도 했고, 보았고, 건넜다. 다리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1793년 그 옛날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바퀴들을 견뎌 냈을까. 멀리서 보면 거대한 암석 두 덩이를 아슬아슬하게 얇은 허리가 잇고 있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끊어져 가파른 협곡 아래로 무너질 것만 같은데 지어 놓고 보니 다리가 너무 튼튼한 나머지 다리가 견디는 최대 무게를 지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누에보 다리를 건넜다. 신시가지로 향하는 상인들이 밟았던 길을, 다리 아치에 박아둔 난간에서 사형에 처한 죄수들이 걷던 길을. 우린 여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누에보 거리를 건넜다. 다리는 잇고 연결해준다. 누에보 다리는 우리에게 세비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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