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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Jun 30. 2023

WONDERWALL

이 노래는 기타 반주로 시작한다. 뒤이어 첼로의 선율이 어우러져 있다. 드럼 비트가 더해진다. 우리는 지구가 낳아준 나무와 가죽을 조각해 악기를 만들었다.  손으로 만든 악기로 멜로디를 빚었다. 하지만 조금 더 듣다 보면 목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목소리. 기타와 첼로, 드럼의 연주 위를 그 목소리가 걷는다. 인간은 악기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전율이 떠오른다.

중학교 2학년 네모난 독서실 안에 사방의 벽 안에서 원더월을 들으며 난 그 공간이 무한히 확장하는 것을 느꼈다.

사방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나가는 공기의 흐름에 눈을 감고 몸을 맡기면 적어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다른 평행세계로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그때는 유일한 오아시스였다.

열대여섯이 무슨 걱정이 있냐며, 네 나이 때가 가장 좋을 때라는 말만 수도 없이 들었다만, 그런 말들은 도통 먹히질 않는다.

고작 열대여섯이란 핑계로 근심 걱정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더 각박한 법이다.

각자 자기만의 방에서 괴로움에 머리를 싸매는 일쯤은 있는 거지, 적어도 오아시스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날 위로해줬다.

재생 버튼만 누르면 귀를 꽂는 말들이 있었다.

나를 구해주는, 나를 알아주는,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그런 노랫말이 들려왔다.

오아시스 덕에 난 꽤나 근사한 중2병을 겪은 셈이다.


원더월은 그 이후로도 내 삶에 빈번하게 출현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합격과 불합격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때.

새해에 듣는 노래가 그 해의 운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에 이 노래를 먼저 떠올리고 새해 카운트 다운과 동시에 재생을 누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매번 드라마틱한 장면을 장식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정니에 첫 고무줄을 끼웠을 때 같은 시시한 순간에도 함께했다.

잇몸에 박은 네 개의 스크루를 혀로 만지며 다시 야자를 하러 들어오는 학교 정문 앞 언덕배기에서 원더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더월은 떠올리면 재생되는 노래였다.

내 머릿속에 그 노래만을 위한 플레이 버튼이 새겨진 듯 말이다.

그래서 처음 그 노래가 오아시스를 통해 불러지는 그 순간을 목격했을 때, 눈물이 나온 건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점점 번져가는 시야 속에서도 뚜렷이 들려오는건 수만 번 되뇐 그 멜로디와 노랫말이었다.

Because maybe you a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 are my wonderwall.


원더월은 사전에 없는 말이란다.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이 만든 단어일 뿐이라고 한다.

Because maybe you are gonna be the one that saves me. And after all you are my wonderwall.

왜냐면 넌 아마 날 구할 단 한 사람일 테니까. 결국 너는 내 원더월일테니까.

없는 말까지 만들어가면서까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기존의 단어들의 조합만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했기 때문일까?

정말로 단순한 단어 그 이상을 떠올렸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원더월’은 무슨 뜻일까, 어차피 정해진 뜻이 없다니까 생각할 필요도 없는 문제긴 하지만 때때로 고민에 휩싸인다.

내 원더월은 어떤 색이 입혀졌고, 어떤 소리를 품으며, 어떤 향으로 가득할지 너무나 궁금한 것이다.

아무렴 우리 모두가 우주를 품은 존재라는 말도 있는데 이만하면 나와 너, 우리 모두가 각자의 원더월을 품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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