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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May 22. 2023

제 눈을 위한 드림랜드가 어딨는지 아십니까?

드림 렌즈 여정 -상-

사실 내 시력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나쁘다. 그건 애지낙에 알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렌즈 착용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소프트 렌즈는 산소 투과가 안 돼서 눈 건강에 좋지 않다는 안과 의사에 말에 하드 렌즈부터 착용했다. 하드렌즈는 정말이지 하드코어 그 자체였다.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옆에 있는 친구들을 당황케 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그들도 적응해 “쟤 또 렌즈 돌아갔다” 또는 “먼지 꼈냐?”라며 심심찮은 안타까움을 표시할 뿐이었다.


3년차 이후 소프트 렌즈로 광명을 찾았다. 신체적으로 느끼는 편안함은 매우 높았으나 그만큼 내 눈의 습도는 떨어져 갔고 종래에는 눈만 깜빡여도 뻑- 뻑- 하는 옹졸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집 나간 시력을 되찾으러, 렌즈와 수술 없이도 깨끗한 시야를 얻을 수 있는 꿈의 렌즈를 찾으러. 그렇게 드림 렌즈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검안을 하려면 기본 2시간에다가 사전에 렌즈를 5일 이상 착용하면 안 되었기에 심사숙고해 날짜를 정했다. 개인 일정이나 직장 상황으로 렌즈 착용이 반드시 필요한 날을 피해 일주일동안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 주간을 잡아 놓았다. 뱅글이 안경을 끼고 학교에 나타나자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 “어, 안경?”, “와, 안경 껴요?” 등등의 탄성으로 맞이해주었다.


매우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건 단순히 안경을 끼는 것이 아니라 매우 안 좋은 시력으로 렌즈알이 체감 국어 사전 두께만큼 두껍다는 걸 스스로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에 이런 인사치레에서부터 의식이 안 될 수가 없었다. -8 디옵터의 시력으로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한 불편을 십 년이 족히 넘는 세월 껴안고 살았고, 이에 대한 불만은 시간이 간다고 익숙해 지지 않았다.


교실로 들어서고 안경을 낀 채로 학생들을 처음 마주했다. 아이들은 안경 끼지 말고 벗으라며 성화였다. 아이들은 너무나 다정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온갖 다양한 표현과 문장으로 내가 안경을 쓰면 못 생겨지니까 꼭 벗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어필했다. 갑자기 유리 창문을 두 눈에 장착하고 돌아와 낯설게 생각될 수도 있을 법했겠고, 실제로도 그리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으나 내 눈 건강을 신경 써주고 앞이 안 보이는 거냐, 혹은 다시 안경 안 끼는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냐며 제 나름대로 우려를 표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4일 밤을 매일 거르지 않고 8시간 이상 드림랜드로 숙면을 취하러 갔다. 조금 더 잘 보이는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조금 더 선명한 바깥 세상에 내딛기 위해. 자기 전 해야할 일과 아침에 렌즈를 제거하며 해야할 일을 루틴으로 만들어 하루의 시작과 끝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어나자 마자 손을 깨끗이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렌즈를 뽁뽁이로 제거한 뒤, 세척제를 손바닥에 펴발라 물 떠 놓고 기도하듯이 문질러 발랐다. 더 좋은 눈을 갖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시 보존액을 채워 놓고 렌즈 통에 끼워넣었다.


학교로 향하는 길에 주기적으로 보이는 표지판을 시력 검사표 삼아 거리를 다르게 두고 바라보고는 했다. 여기까지는 흐릿하고, 여기서부터는 나름 잘 보이네. 걸음 수를 앞 뒤로 헤아려 가고, 보폭을 조정해가며 글자를 읽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미간에 힘이 들어가려고 치면 안돼, 찌푸리지 않고 읽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시력이라고 했지, 하며 스스로를 일깨웠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문서 작업을 하고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다 영 안 되겠으면 글 읽을 때는 안경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교정된 시력과 다른 도수의 안경은 어쩔 수 없이 글씨를 흐릿하거나 뭉개지게끔 만들었다.


난 일주일동안 겹눈을 가졌다는 잠자리처럼 여러 겹의 막이 쳐져 있는 세상에 살았다. 하지만 결국 한 겹씩 벗겨 내리다 보면 순정의 세계가 나올 것임을 굳게 믿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 다시 경건한 의식을 시작했다.손을 깨끗이 씻고, 렌즈를 흐르는 수돗물에 헹군 뒤 다시 식염수에 세척하고 인공눈물을 점안한 뒤에 검은 자에 바로 맞추어 넣었다. 눈을 질끈 감고 뜬다. 난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모든 선과 형태가 깨끗해지길 바라고 또 바랐다.


금요일이 돌아와 다시 재검안을 하는 날의 아침이었다. 렌즈를 정리하고 집에 나서는 길 다시 익숙한 표지판과 거리의 간판을 둘러 보았다. 바뀐 게 없는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검안 날이 다가올 수록 짙게 맴돌았는데 애써 모른 척 하려 했다. 하지만 당일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의사에게 원하지 않았던 말을 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원치 않는 확신마저 들기 시작했다. 학교를 일찍 나서서 병원으로 향했다. 검안을 다시 하고 진료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끙,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제가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환자 분의 시력이 워낙 안 좋은데다가 안구 모양이 보인느 것처럼 볼록하기보다는 평평한 쪽에 가까워요. 아무래도 교정에 불리한 두 가지 조건을 다 갖고 있으니까 교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같이 얘기를 했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있음에도 불편함과 성가심 모든 걸 감수할 의지가 충만했기에 흐릿한 시야와 그에 따르는 모든 요소를 참을 수 있었다.

“오늘까지 했는데 시력이 여기까지 올라온 거면 사실 큰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환자 분 미련이 남아 있는거죠?”

“네.“

결연하게 답했다.

“그러면 일주일만 더 지켜볼까요?”

“네.”

“그럼 오늘부터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여태까지 한 것처럼 성실하게 착용하셔야 합니다.”

“네.”

모든 대답은 간결하지만 너무나도 절박한 염원이 담겨져 있었다.

드림랜드로 가는 티켓은 아직 유효하다. 앞으로 7일이다. 나는 매일 밤 드림랜드의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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