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삶의 현장! 유튜버 도전기
교감 선생님께 유학 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린 그날, 처음으로 카메라를 켰다.
삼각대 대신 대충 두꺼운 지도서 몇 권 깔아놓고 그 위에 지지대로 분필 케이스를 끼워서 카메라 각도를 대강 맞춰서 세워놓았다.
그리고선 울었다.
아니, 변명해보자면 울기 위해 카메라를 켰다기보다는 뭐라도 담으려고 카메라를 켰는데 자초지종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너무 절망적이어서 눈물이 나왔달까.
그 당시의 상황이란 스페인 대사관과 포르투갈 대사관을 오가며 비자를 동시에 발급받으려고 했으며, 유학휴직을 신청하기 위해 교감 선생님과 교육청 사이를 왔다 가다 오가며 한창 혼란의 카오스를 겪었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하나라도 뒤틀리거나 하루라도 기한을 넘었다가는 유학 휴직의 꿈은 박살이 나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굉장히 예민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당시 2학기 휴직 예정자로 과학 전담을 맡게 되었으므로 1교시부터 4교시까지는 과학 수업을 진행했어야 했으니 오전에는 수업과 오후에는 메신저가 불이 나게 교육청에 연락을 하고, 며칠에 한 번씩은 조퇴 상신을 달고 서류를 떼러 공증 사무실에 가거나 비자 관련 업무를 보러 대사관을 다녀왔어야 했다.
첫 휴직의 시작은 개고생이었다.
그러니 이 서사의 첫 단추를 꿰는 데 있어 이루 말 못 할 심적 고통을 혼자 핸드폰 앞에 두고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참담함에 가슴이 미어지는 경지에 이르러고 말았고, 눈물이 비죽비죽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어느 한적한 날 오후, 브이로거로써 데뷔하게 되었다.
목적은 별 다를 건 없었다.
나중에 내가 돌아봤을 때 영상으로 남을 기록물을 남기는 것.
그리고 가족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영상 공유물을 만들어보는 것.
그 두 가지가 메인이었으며 유일한 이유들이었기에 다른 면들을 세심히 살펴보기 전에 나는 핸드폰만 냉큼 들고 브이로그라는 것을 한 번 해보겠다,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주제는 대충 교사가 유학하는 내용으로 하자, 별생각 없이 올린 초반 영상들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굴러다니는 책들을 쌓아 올려서 핸드폰을 올리고 가로로 돌렸다가 다시 세로로 놓았다가 난장판이었다.
하물며 길가에 나뒹구는 나뭇잎마저 이보다는 더 안정감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극악무도한 카메라 무빙과 방구석 뒤에 간헐적으로 비치는 너저분함을 애써 가리려는 화면 구도의 조합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일단 올리고 봤다.
편집도 검색창에 가장 먼저 뜨는 핸드폰 편집 어플로 했는데 직접 구매해서 써야 되는 프로그램들보다야 당연히 모든 기능적인 면들이 떨어졌지만 그게 문제겠느냐 싶었다.
과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결과물을 배출했다는 것만으로도 한 발을 내디딘 것이 아니겠냐며 한껏 뻔뻔해져 본다.
일단 올리고 보는 거다, 라는 마인드는 하나씩 영상을 올려가면서 갖게 된 마인드이자 채널을 석사 과정 내내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 마음가짐이었다.
일관적인 업로드 주기는 죽 쑤어 버렸고, 영상의 미학이나 퀄리티는 개나 준지 오래인 신세였지만 이렇게 하나씩 포트폴리오에 작품을 하나씩 더해가는 건 소소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가끔씩 댓글을 달아주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 신기하게도 좋은 기운을 전해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튜브를 거대한 시장으로 보기보다는 내 일상을 담을 수 있는 장바구니처럼 생각한다면 부담을 내려놓고 유튜브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만끽할 수 있다.
친구들과 보낸 시간들,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담은 순간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풍경들, 나중에 함께 먹고 싶은 감동적인 먹거리를 찍었고 고스란히 그 감회를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음에 고마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 중 하나는 친구의 생일 파티 때 찍은 영상이다.
24명 반 친구들 모두가 모여 스페인에서 첫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컴컴하게 불을 끈 테라스에서 숨죽이며 기다리는 동안 우린 별 시답잖은 얘기를 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와 입을 틀어막아야 했고, 몇 번씩이나 생일 주인공이 아닌 다른 친구들이 오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래며 벌벌 떨어댔다.
친구가 드디어 테라스에 가까워지자 우린 다 같이 그 친구의 말로 외워둔 생일 축하해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폭죽을 터트리고, 아직 냉동 상태에서 다 녹지 않은 애플 시나몬 케이크를 친구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케이크 위에 꽂혀 있는 촛불은 벽에 반사되어 어룽어룽 연기가 피어오르는 왜곡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친구가 생일 초를 불자마자 화면은 한 번 까맣게 깜박이고, 우린 플라스틱 접시에 한 조각씩 덜어 담은 케이크를 먹고 몇몇 친구들은 벽에 기대어 들고 있던 와인잔을 기울인다.
화면 안에서는 기쁨이 줄줄 흘러나오고, 그 색은 오색찬란하게 네모난 프레임을 가득히 채운다.
다른 영상은 내가 좋아하는 곡을 입혀 만든 콜라주 영상이었다.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 시작하게 된 런데이 어플에 중독돼 처음으로 5킬로미터 러닝에 도전한 적이 두어 차례 있었다.
모든 것이 언택트로 진행되던 그 시점에서 러닝 대회마저도 온라인으로 기록하여 기록물을 대회 본부에 보내면 되었으므로 나는 리스본에 돌아와서도 인터넷으로 대회를 신청해 번호를 받아놓고 격일로 나가서 공원이나 길거리를 달리는 나름의 훈련을 하고 있었다.
리스본의 일상을 담고 싶었기에 다른 지점에서 뛰는 장면을 찍어보았고, 특히 건물이나 뒤로 보이는 배경을 담고 싶어서 장소를 선정하는 것부터 그와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것까지 편집의 연속선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짧은 영상은 그 이후에도 가끔 돌려보는데 단순히 내가 나와서가 아니라 그 안 구석구석 찾을 수 있는 기억들 때문에 그렇다.
여기를 다섯 바퀴 돌면 노래 한 곡이 끝났지.
강가가 내다보이는 이 공원 앞 벤치에서 그 친구를 처음 만났는데.
저 거리는 지금쯤 사람들이 많이 걷지 않을까, 그때는 락다운이어서 그렇게 한산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쯤이면 여기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 색이 변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은 화면에 담긴 물체들과 사람들에게 입혀진 나의 기억들이고 내가 덧바른 해석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런 찰나의 순간들이나 스스럼없이 지나칠 법한 날의 일부를 영상으로라도 잡아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지금으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기록물들은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딱딱한 이름이 붙여진 형체 없는 공간에 나는 수 없이 많은 자신들로 갈려져 아무런 무게 없이 흩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