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민낯은 가볍습니다
19살과 20살 사이 애매하게 낀 시간에 엄마 손 잡고 간 백화점에서 화장품 세트를 샀다.
스킨과 로션 다음에 놀랍게도 얼굴에 발라야 할 것들이 한참 더 많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대학교 입학 전 단정한 옷 한 벌 장만하러 간 백화점에서 집으로 나서는 길에 프라이머와 베이스, 에센스, 비비크림이며 씨씨크림이며 온갖 제형의 화장품이 굴러다니던 쇼핑백은 엄마 손 둘, 내 손 둘에 가득 잡히던 쇼핑백들 중 하나였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1년이 넘게 지나도록 그 당시 샀던 화장품 바구니에서 하나조차 끝까지 쓰지 못했다.
둥그스름한 테두리 탓에 발에 차여 구석까지 굴러 들어간 수분 크림이었나, 나이트 크림이었나 하는 이름도 이상하게 길었던 제품은 이사 가기 전에 실종되었다 생각하고 찾을 생각조차 안 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화장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에 가까웠다.
금손을 가져 눈꼬리를 쭉 빼서 정교하게 라인을 그리는 친구들의 실력이 부러웠고, 눈두덩이에 바르는 쉐도우를 2-3개를 섞어 쓰며 음영을 주는 그들의 스킬이 대단해 보였다.
변변찮은 화장 실력에도 불구하고 본래 까무잡잡한 내 피부에 창백함을 끼얹어줄 21호 파데와 입술 색을 갈아 끼워주는 립 제품은 언제나 손 닿을 거리에 보관했다.
쌩얼은 무례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었던 게 분명했던 난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피부색과 입술색은 반드시 사수해야 할 영역이었다.
그러다 화장이 하지 않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은 화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오후가 되면 피부에서 기름이 나와 번지르르한 윤기가 도는 시점에 수정 화장을 하기보다 볕 좋은 잔디밭에 자리 잡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화장을 정성스럽게 하고 간 날이었다면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와중에 파데가 무너졌을 거고, 간식거리를 먹고 나선 다 지워진 입술을 다시 덧발라야 했을 거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활 모습들 중 어떤 라이프 스타일은 화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 군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떠오른 상념들은 확신이 되며 화장품들은 내 생활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종래에는 모든 생활 면에서 딛고 설 틈을 잃게 됐다.
내가 일찍 일어나 얼굴을 꾸미기에 나는 아침 7시 40분 수영 수업을 들어야 했고, 다 끝나고 다시 얼굴을 만지기엔 9시 30분 아침 수업을 가야 했다.
점심시간에 무슨 립 제품을 바르기엔 아침 수영으로 버석버석해진 입술에 립밤을 발라 줘야 트는 걸 방지할 수 있었고, 어차피 낯빛을 밝게 한답시고 비비 크림을 바르기엔 3시에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할 때 몸 안의 모든 수분이 땀으로 구석구석 분출되었다.
난 많이 움직이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꽤 건강해졌다.
화장이 설 자리를 잃은 내 생활은 어느 면으로 보든 쾌적함을 높여 주었다.
언젠가부터 콧등부터 관자놀이까지 주근깨가 콕콕 박히게 되었다.
주근깨가 까무잡잡한 피부 위에 점점이 뿌려져 있었는데 나는 잠깐 밤하늘에 수 놓인 별 같다는 하염없는 낭만에 잠깐 빠져있었다.
그래도 선크림은 제대로 발라야지, 해변으로 가는 어느 날에 에코백 속 수건과 책을 넣으며 생각했고, 미적거리는 손놀림으로 선크림 뚜껑을 열고 한 층을 얼굴 위에 덮고 길을 나섰다.
사소한 변화가 의외의 큰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ANABADA
2017년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환승역을 걸어가다 보면 빈프라임이라는 구제 옷가게가 있었다.
나와 정차역이 같았던 친구는 구제 가게들을 이미 애용하는 고객이었고, 집에 가는 길 매일 지나다니는 곳이 어쩌다 보니 빈프라임이었다.
작은 우연들이 모여 구제 옷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헌 옷을 입으면 귀신 붙는다, 어디서 구르던 옷들인 줄 알고 입으려고 하냐, 병균이 득실득실할 거다, 이제는 익숙해진 말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서로 돌려쓰고,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이 비정상적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새로운 것을 더하고 쌓기보다는 이미 세상 위에 존재하는 것들을 받아쓰고 이어서 쓰는 것이 더 자연의 이치에 합당한 행위가 아닐까?
물론, 그러한 사상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색과 취향을 더해 옷을 골라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취향껏 빼입는 것조차 너무나도 가능해진 것이 현대 구제 옷 세계다.
내 옷장의 허함과 내 지갑의 부족함을 가리키기에는 이미 지나치게 방대한 양의 제품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양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것이 패션 생태계의 현주소다.
친구는 좁게만 느껴졌던 세계의 구석에 서 있던 내게 낡은 신세계로 이어지는 차원의 문을 열어 준 셈이다.
그 이후로는 여행지를 갈 때마다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중고 제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라나다에서는 남색 점퍼와 나이키 운동 가방을 20유로에 샀다.
나이키 운동 가방 안쪽 상표에는 Daniel L.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기 때문에 난 그 옆에 아주 조금 남은 여백에 LHR 이니셜만 가까스로 새겨 내 것이 되었다는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리스본에 넘어와서는 갈색 겉옷을 샀는데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이 연일 이어지는 바람에 급하게 주말 장터에서 마련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옅은 갈색이 잘 받는다고 말해줬고, 바람 부는 저녁에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국가 이동을 할 때 챙겼던 짐의 대부분이 중고 제품이거나 구제 옷들이어서 다시 되팔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주고 올 수 있어서 가볍게 다시 리스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옷들이 한 겹 더 낡게 되었더라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도 새로운 출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니 이들과 나의 헤어짐은 아름다운 작별이다.
중고의 모든 것에는 지난 기억과 추억이 다른 농도로 배어있는데 나는 그것을 각별한 낭만으로 받아들였기에 물건을 새로운 눈으로 훑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갖고 싶은 것이 많아도 쥘 수 있는 손은 두 개뿐이다.
그럼에도 욕심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덜어내는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중이지만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짙은 의구심이 든다.
직원이 하얀 면 장갑을 끼고 막대기를 쭉 펼쳐서 사람 두 명을 얹은 높이에 자리한 명품 가방을 사서 내 옆구리에 끼고 길을 걷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희한하게 열고 닫는 핸드폰을 사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려내리는 내 손가락은 바쁠 것이다.
요즘 시계는 심장이 1분에 뛰는 횟수를 재어주고,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전화까지 대신 걸어준다는데 내 손목은 허전하다.
거리를 걷는 이름난 브랜드 사이에 내가 신는 하이넥 컨버스와 어깨에 걸친 천으로 덧댄 에코백은 가끔 적적함을 담는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당연하지만 은근한 생각이 내 몸을 비집고 나올 때 한숨으로 나오지 않도록 호흡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저 편에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들이 점점 더 멀어지고 희미해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젖어드는 행복은 유별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