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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린 Feb 05. 2021

덮치는 두려움

난데없이.

난데없이 막연한 두려움에 시달릴 때가 있다.

차라리 꿈이라면 깰 때까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서 기다리기라도 할 테지만 너무도 생생한 현실이라는 걸 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눈을 부릅뜨고 버텨내야 하는 악몽이랄까.

어떤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는 반면 형체도 없는 불안감에 며칠이고 내내 시달릴 때가 있다.

하도 마음에 책이 잡혀 신체적인 통증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어릴 때는 몸이 안 좋거나 아픈 줄로만 알았다.

난 그게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드리워지는 신체적 통증이란 걸 전혀 유추해낼 수 없었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띵하다, 어지럽다.

이런 자잘하고 미세한 통증들은 불시에 거두어지기도 했으므로 주변 어른들 시선으로는 꾀병으로 보이기 일쑤였다.

몇 번이고 주변에서 핀잔 어린 소리를 들었을 무렵, 그때부터는 스스로 아픔을 통제하기로 했다.

머리가 아파도 곧 지나가겠거니 싶었고, 배가 아파도 아침에 뭐를 잘못 먹었구나, 별스럽지 않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통증은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다만, 불안의 부산물은 고스란히 떠안고 가게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수리 옆에 500원짜리 동전만 하게 큰 땜빵이 났다.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다가오는 중간고사에 올백을 맞아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그 결과가 원형탈모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면서도 안됐다.

고작 열 살짜리의 걱정이 원형탈모를 부르다니 말이다.

엄마가 약국에서 사 온 연고를 매일 밤 빈 땜빵에 발라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몇 주 지나자 잔디처럼 애기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한 손으로 보들보들한 새로 나는 머리카락을 만지며 다른 손으로는 기출문제집을 풀었다.

다 풀면 친구들과 나가서 미끄럼틀에서 탈출을 하고 놀았다.

엄마가 창문으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집에 들어가서 아직은 내 손에 무거운 쇠숟가락을 쥐고 국그릇을 퍼면 넘어가는 해보다도 빨간 김치찌개가 담아졌다.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땜빵이 채워졌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가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머리를 말리는데만 한참이 걸린다고 했다.

거울 속에 웃는 나로 가득 들어찼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 일로 미국에 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엄마 아빠가 그 당시 어떻게 세 명의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행정처리며 전반적인 생활을 꾸려나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난 여전히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이렇게나 바쁜데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조차 불분명한 에코로 들리던 첫 몇 달이 떠오른다.

답답함을 넘어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와중에 정신은 언제나 또렷한 각성 상태였다.

빳빳한 종이처럼 늘 날이 서 있었고, 누군가라도 주변에서 인기척을 내면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가려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다.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그 날의 점심 메뉴를 선택해야 했다.

점심은 세트 메뉴 두 가지와 매일 나오는 피자, 이렇게 세 가지 메뉴 중에 선택해야 되는데 그 날의 당번이 메뉴를 읊어주면 먹고 싶은 메뉴에 손을 들고, 당번이 손을 헤아려 쪽지에 적어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당번이 메뉴를 너무나 빨리 읽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몇몇 메뉴는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요리였기 때문에 장벽은 더없이 높았다.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나는 첫 한 달 내내 피자를 점심으로 먹어야 했다.

그 메뉴가 뭔지 물어볼 수도 있었고, 다시 천천히 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었다.

방법은 많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마음에 편하다는 오직 그 이유 하나로 나는 매일 피자를 먹었다.

친구들이 매일 피자를 먹는 게 지겹지 않냐고 묻는 말들이, 당번이 불러주는 점심 메뉴들이, 주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이해가 될 쯤에야 나는 마카로니 치즈가 곁들여진 파스타, 샐러드, 젤로와 피비 앤 제이를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민함은 기질이다.

고요한 돌풍 같은 학창 시절을 거치며 나 스스로를 나름대로 객관화할 수 있을 때 즈음, 나는 예민함은 습관이라고 단정 지었고, 고치려고 노력해보았다.

대범함을 기르는 방법, 성격을 바꾸는 여섯 가지 습관, 세상을 바꾸는 자신감의 힘.

같은 내용을 담고 다른 수식어를 붙인 글들이나 방송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흘러가는 시간밖에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한참을 헤맸다.

이제야 돌이켜보건대, 나는 매번 첫 한 해가 힘들었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들 눈에는 내가 참 밝고 싹싹하다고들 하지만 결국 그건 내 불안함이 조성한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면밀히 나를 본다면 언제나 주변을 살피고 기류를 읽으려 부단히 애쓰는 날 발견할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게 조금 더 피곤하고, 어쩔 때는 기습처럼 몸이 아파올 때가 있다는 것뿐이다.

불안은 필시 내가 평생을 떠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영영 풀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끝낸다고 끝내 지지 않는 그런 모순적인 수수께끼처럼 말이다.


폭풍처럼 휩쓸어도 뽑혀나가지 않도록 더 튼튼히 뿌리를 내리길, 또 살을 에리는 냉기에도 얼어붙지 않도록 마음속 불씨가 꺼지지 않길, 그렇게 불안이 어떤 형상을 취해오더라도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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