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적어도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 중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읽어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더구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보면 늘 새로운 것 같거든요. 간간이 밑줄 친 부분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읽었다는 얘기인데 말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부분에 왜 밑줄을 쳤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많아요. 한때 고대 철학에 관심이 가서 '대안연구공동체'라는 공부모임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부터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던 탈레스를 비롯해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제논 등이 우주와 자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공부했지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사상가인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플라톤의 네 대화편>을 읽으면서 함께 토론하고 공부했었죠. (솔직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자연현상을 관찰하며 만물의 근원 무엇 일지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달리 인간 내면에 눈을 돌려 지식과 도덕의 문제에 몰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무지한 것처럼 가장한 채 질문을 던져 상대방이 스스로의 사고력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했지요. 이런 대화법을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이라고 하지요.
소크라테스는 "소포클레스는 현명하다. 에우리피데스는 더욱 현명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만인 가운데서 가장 현명하다."는 델포이 신탁 내용을 듣고 그것이 무슨 의미일지 고민에 빠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서 티끌만큼의 지혜를 찾을 수 없기에 말이죠. 심사숙고 끝에 델포이의 신탁이 틀렸음을 입증하기 위해 지혜롭고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이 자신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확인하면 델포이의 신탁은 거짓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 나섭니다. 정치가와 시인 그리고 수공업자를 만납니다. 아마도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 놓는 그 특유의 대화법으로 꼬리를 이어가는 질문을 던졌겠죠. 하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곧 실망하고 맙니다.
정치가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무언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시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의 의미조차 알지 못했으며 수공업자들은 자신의 기술이 월등하니 다른 분야에서도 월등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죠.
정치가를 만난 뒤 소크라테스는 생각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지혜로운 것을 틀림없어. 그나 나나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이 무엇인 알지 못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렇다면 이런 점에서만큼은 그보다 내가 좀 더 지혜로운 건 아닐까? 적어도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하려는 지혜는 바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그가 남긴 글은 전하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으로 남긴 결과 우리에게 앎은 무지의 깨달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부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