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오늘은 충남 아산의 이순신 장군 묘소에 참배하고 현충사까지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와중에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내년 1월 2일 이순신 장군이 남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지 422년이 되는 날을 앞두고 이순신 연구자인 박종평 선생을 중심으로 몇몇이 답사하고 참배를 하신다기에 뒤늦게 따라나섰습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아주 맑아서 답사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순신 장군 묘소는 충남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7에 위치해 있습니다. 해가 잘 드는 언덕에 장군의 부친인 덕연군(이정) 부부 묘소와 형제, 손자들이 묻혀 있고 그 서북쪽으로 1리 거리 어라산 언덕에 장군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소나무가 잘 에워싸고 있고 해가 잘 드는 언덕에 부부합장으로 앉혀 있습니다. 평생 전장을 누비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영원한 평화를 찾으신 듯합니다.
묘소는 원래 맞은편 금성산에 있었답니다. 1598년 11월 19일(음력) 남해의 노량해전 중 전사 후 3개월 장을 마치고 명나라의 지관이 본 자리인 금성산 아래 언덕에 묘를 세웠습니다. 16년 뒤인 1614년 어라산(於羅山)의 북서쪽 언덕으로 묘소를 옮기는데 아산의 저명한 풍수사 박이인(朴履仁)이 권한 것을 후손들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구 묘소 자리는 아산시 음봉면 산소리에 있고 장군의 아들 회, 열 등의 묘소가 있고, 이순신의 묘소 위치에는 둘째 손자 이지석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묘소 참배 후 현충사로 향했습니다. 학창 시절 소풍이든, 답사든 왔었을 텐데 새로 기념관도 만들고 공원으로 조성이 잘 되어있어서 첫 방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장군의 장인장모 묘역도 있고 고택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허나 왜군과 싸우다 21살 젊은 나이에 사망한 충무공의 세째 아들 이면의 무덤을 보자니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장군은 자신을 꼭 빼닮았던 아들 면이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명량대첩 승리를 위한 희생양이 된 것 같다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규모가 꽤 큰 전시장에는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료들과 거북선 모형 등 충무공의 업적을 전시해 놓았는데 난중일기는 복사본, 큰 칼도 복제본뿐이어서 아쉬웠습니다. 진본을 보기 위해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찾을터이니까요. 난중일기는 명량대첩 부분을 복사해 전시해 놓았습니다.
수차례의 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은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에도 불굴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지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정신력은 정유재란에 벌어진 명량대첩에서 빛을 발합니다. 1597년 9월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한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전투는 패배가 눈 앞에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전투를 앞두고 장수들에게 '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 생즉필사 生卽必死, 사즉필생 死卽必生)’이라고 결기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불과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선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둡니다.
무슨 일이 닥쳐도 이런 정신력만 지니고 임한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