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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an 10. 2021

[남프랑스 #16]세잔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예술가의 발자취

지난해 코로나가 덮친 이후에 남프랑스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2년 전 여름에 여행한 것을 돌이켜보며, 추억의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기록하는 작업은 약간 게으름을 피운 들 누가 뭐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덮어놓았다. 양심에 좀 찔리면 대학 강의를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곤 했다. 이것저것 부산했던 까닭에 시간을 내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게다. 다시 힘을 모아 기억을 다시 추슬러 여행을 계속하려 한다. 여행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할 테니.


프로방스의 중심에 있는 엑상프로방스는 아주 오랜 도시로 남프랑스를 대표한다. 원주민이 살고 있었고 로마인들이 들어와 도시로 개발했다. 엑상프로방스는 '프로방스의 엑스(Aix)'인데 프랑스인들은 엑상프로방스를 줄여서 '엑스'라고 한다. 도시의 어원은 이렇다. 기원전 123년 로마제국에서 파견된 통치자 섹스티우스 Sextius는 자신의 이름을 이 도시에 붙여 '아쿠아 섹스 티아'라고 칭했다. 샘물이 많이 있었던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에는 로마시대의 분위기와 풍물, 문화가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여있어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특히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분수들은 이 도시의 매력을 한껏 풍요롭게 한다. 로마시대에 샘이 있던 곳에 분수를 만들어 놓았다는 아름다운 분수는 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오래된 골목길들이 교차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매력적인 광장과 아름다운 분수가 있다.

중심 대로인 '꾸르 미라보'에는 예술과 정의와 농업을 상징하는 여신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원형의 분수 '로통드'를 비롯해  4개의 분수가 있다. 분수는 늘 신선한 식수를 공급하기도 했고, 포도주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역할도 했다. 보기에도 아름다우니 일석삼조라고 할 수 있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폴 세잔은 엑스에서 태어나 예술가로 살다 죽었다. 정말 단순 명쾌한 삶이다.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처럼 그에게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자연을 품은 엑스를 사랑했다. 엑스 시에서는 도시 곳곳에 세잔의 자취가 남아있는 장소를 따라가며 '세잔의 길'이라고 이름 짓고 그 노정에 금속판을 박아놓았다.

시 관광청에서 만든 '세잔의 길을 따라' 안내지도는 32곳을 방문 포인트로 안내하고 있다. 관광청 사무실 앞의 세잔 동상부터 시작해 폴 세잔이 다니던 부르봉 중학교(지금은 미녜 중학교), 그가 묻힌  생피에르 공동묘지, 오페라가에 있는 생가, 마지막 거주지, 아틀리에, 어머니의 집, 외할머니 집, 어린 폴이 세례를 받은 생장 바티스트 포부르 교회까지 그의 생애를 밟아갈 수 있다.

폴 세잔은 1839년 1월 19일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났다. 은행가였던 아버지 루이 오귀스트 세잔과 안 엘지자베스 오베르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폴을 낳았다. 데피뇌가의 초등학교, 생조셉 기숙학교를 거쳐 부르봉 중학교(현재는 미녜 중학교)에 입학했다. 부르봉 중학교에 입학하던 1852년 학교 운동장에서 폴은 에밀 졸라를 만난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다른 급우들의 놀림감이 됐던 세잔을  에밀이 자기편을 들어주었고, 폴은 그 고마움을 담아 사과 한 바구니를 에밀에게 건네주면서 우정이 싹텄다. 에밀과 폴, 여기에 장 밥티스탱 바유가 합류해 세 소년은 엑스의 시골과 강가, 채석장 등을 산책하며 '삼총사'의 화려한 소년기를 보낸다. 에밀 졸라와의 우정은 1886년까지 이어진다. 그해 졸라는 '작품(L'Oeuvre)'라는 작품을 발표했는데 실패한 화가가 주인공인데 폴 세잔은 자신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하고 에밀 졸라와 절교했다. 중학교 시정의 친구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에게 큰 아픔이었겠지만 오랜 친구를 버릴 만큼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강한 폴 세잔이었다.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에서 태어나 자란 세잔은 파리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1858년 에밀 졸라가 먼저 파리로 떠나고 폴 세잔은 엑스의 로스쿨에 들어가지만 그만두고 1861년 4월 파리에 올라가 에밀과 합류했다. 하지만 첫 방문에서 파리의 분위기에 실망하고 엑스로 돌아와 아버지의 은행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그러다 다시 파리에 재도전, 스승 피사로를 만나고 인상주의 기법을 전수받는다. 1863년부터 내리 살롱전에 출품하지만 계속 낙선하던 그는 파리 바티뇰 대로의 카페 게르부아에 드나들며 드가, 시슬레, 르누아르, 모네, 쿠르베 등 화가들과 알고 지낸다. 1874년  인상주의 회화전에 출품한다. 1회, 3회 출품하고 나서 비평가들의 혹평에 환멸을 느낀 조용히 그림 연구와 작업에 열중하기로 한다.

세잔은 1869년 파리에서 책 가공 공장에 다니는 마리 오르탕스 피케를 만나 아들을 낳았지만 아버지가 반대할 것이라는 생각에 비밀에 부쳤다. 보불전쟁(1870년)이 발발하고 남부에 내려가 피신하던 때에 숨겨놓은 아내와 아들의 존재가 드러나고 아버지는 매달 200프랑씩 보내 주던 생활비를 절반 이하로 줄여 버렸다. 벌이가 시원치 않았던 세잔은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에밀 졸라에게 돈을 빌어쓰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1891년 아내 , 아들과 함께 고향 엑상프로방스에 내려가 정착한다. 이후 엑스에 머물며 작업에만 열중했다. 바베뮈스 채석장 부근에 오래된 집을 빌려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의 아틀리에는 확 트인 자연이었다. 그는 로브 언덕에서 생트빅투아르 산의 모습을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느끼며 캔버스에 담았다. 1901년 로브가에 작업실을 지었다.

세잔은 프로방스 자연의 본질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가르단, 에스타크, 바베뮈스 채석장 등, 강가 등을 그리기도 했지만 특히 좋아하던 주제는 생트 빅투아르산이었다. 세잔은 자신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담은 유화 44점, 수채화 43점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많은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엑상프로방스에서 보는 작품은 남다른 감회를 준다. 그라네 미술관 Musée Granet 은 세잔의 작품을 담고 있는 보석함과도 같다.

마자랭 구역에 위치한 그라네 미술관은 프로방스 출신의 화가 그라네(1775~1849)가 자신의 소장품과 작품을 엑스 시에 기증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이곳에 세잔의 작품 10점이 전시되어 있다.




세잔의 아틀리에는 1902년부터 생을 마감한 1906년까지 그가 작업하던 곳이다. 한낮에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햇살이 비추는 아틀리에는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그 햇살을 그대로 다 받아들여서 자연광 아래에서 작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2층 작업실 벽 한쪽을 터서 길게 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작품을 내놓고 자연광 아래에서 비교해 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틀리에는 그때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프로방스 풍의 도자기와 작업복, 모자 등 세잔이 아끼던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다.


세잔은 1906년 10월 15일 로브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았다.  세탁물 마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음날 다시 그림을 그리러 산을 올랐다가 다시 쓰러졌다. 폐렴이 악화되어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1906년 10월 23일 세잔은 세상을 떠났다.

'늘 자연을 따라 배우고 있지만 발전이 더딘 것 같아. 자네가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고독이 나를 늘 야금야금 끌어내리니 말일세. 난 이제 늘고, 병들었어. 무거운 납 같은 무기력으로 가라앉는 것은, 열정에 자신을 맡겨 감각을 거칠게 만들기로 한 노인네에게는 위협이야.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그림을 그리다가 죽겠다고 맹세했네.'  

말년의 세잔이 젊은 화가이자 작가인 에밀 베르나르(1868~1941)에게  1906년 9월 21일 쓴 편지의 일부이다. 그의 다짐대로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예술이란 곧 삶이며 감동이었다.   

" 자연은 늘 그대로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중에 그대로 머무르는 게 하나도 없지. 그래서 예술이란 자연의 순간적인 떨림과 편린들,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네. 그것을 영원히 맛볼 수 있도록 말일세.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네. 그리고 모든 것이 있지."

- 폴 세잔. 조아셍 가스케 <세잔과의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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