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an 16. 2021

[남프랑스 #17]생폴 드 방스- 마그 재단

현대미술의 보석

'마그 재단 미술관'은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보석같은 곳이라고, 남프랑스에 가면 꼭 방문해 보라고 방혜자 화백도 추천해 주었던 미술관이다. 허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선 여간해선 갈 수 없다. 그동안 못가본 곳 위주로 짜는 이번 여행에서 마그재단 미술관은 반드시 들러야 할 곳 리스트에 맨 위로  올랐다.

생폴 드 방스와 앙디브, 니스 등을 둘러보는 남프랑스 여정의 마지막 거점은 중간 지점에 있는 그라스로 잡았다. 향수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그라스 역시 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일단 생폴 드 방스의 마그 재단 미술관부터 가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그라스를 출발했다.

마그 재단 미술관은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생폴 드 방스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 산속에 있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미술관은 규모가 거창하지는 않지만 매우 프라이빗한 느낌이 든다.  개관시간에 맞춰 도착해 거의 첫 번째 방문객으로 티켓을 구입해 입장했다. 소나무 숲을 정원으로 삼아서인지 아침 공기가 청량하고 새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귓전에 울리는 가운데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 헨리 무어 등 거장들의  조각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그 재단 미술관은 현대미술 작품 컬렉션의 양과 질에서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역시 정원에 설치된 조각부터 달랐다. 맑은 공기 속에 새소리를 들으며 걸작들을 감상하며 산책을 하니 오감이 열리고 이것이 진정한 아트 힐링이구나 싶었다.

연한 분홍빛을 띤 미술관 건물은 말아 올려진 흰색 지붕이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수녀님들의 흰색 모자(?), 혹은 중세 여자들의 머리장식을 건물에 씌워 놓은 것 같다. 1960년대 이 시골에 이런 미술관을 지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마그리트와 에메 마그 부부는 칸에서 판화공방을 하면서 갤러리도 함께 운영해 꽤 성공을 거뒀다. 예술가들과도 친분이 깊었다.  1953년 막내아들 베르나르가 11살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잠겨있던 마그 부부는 친하게 지내던 화가 페르낭 레제의 조언을 받아 미국 여행을 떠난다.  

예술을 사랑하는 미국의 부호들은 미술재단을 만들어 미술관을 짓고 자신들이 수집한 작품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반스, 필립스, 구겐하임 등 재단미술관을 돌아본 마그 부부는 당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작품도 하면서 교류하는 공간을 생폴 드 방스에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전쟁으로 파괴된 예술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예술 플랫폼을 구상했다. 1956년 마요르카에 있는 후안 미로의 미술관 겸 작업실을 방문한 부부는 주변 환경과 멋지게 어우러진 건축과 분위기에 매료돼 건축가 조셉 루이스 세르(Josep Lluis Sert)에게 미술관 설계를 의뢰하게 된다.

마그 부부의 뜻에 공감한 많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건축가 조셉 루이스 세르의 설계를 기반으로 호안 미로가 세라믹 설치작품을 했고, 조르주 브라크와 마르크 샤갈이 건물 외벽의 모자이크 작업을 했다. 조르주 브라크는 예배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도 했다.  청동으로 된 램프, 벤치, 문 손잡이 등은 지아코메티가 파리에서 디자인했다. 1957년 설계 의뢰를 시작한 미술관은 1964년 개관식을 가졌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참석해 축하했다.

미술관 마당에는 마그 부부의 아들을 위해 지은 작은 예배당이 있다. 마그 재단 미술관이 생기게 된 계기를 제공한 곳으로 아담하지만 그 안에서는 특별한 예술적,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브라크의 푸른빛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인 것 같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상의 예수님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평화가 깃들어 있다.

미술관에는 미로의 작품이 특히 많다. 서쪽 벽면의 모자이크를 비롯해 조각들, 설치 작품들로 꾸며진 야외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메인 전시공간에 전시된 소장품은 정말  놀랍다.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들이 특히 많아서 눈 호강을 제대로 한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도 있고 특히 생폴 드 방스를 사랑했던 화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 '인생'이 한 벽을 차지하고 있다.

마그 재단 미술관은 예술가들과 교감을 원했던 설립자의 뜻을 이어 동시대 예술가들을 초대해 기획전을 열고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초대되는데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벨기에의 현대미술가 얀 파브르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뇌를 드러내서 곤충, 과일, 상징적 사물, 미니어처 등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시각적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다. 예술 관련 서적이 갖춰진 북샵 겸 기념품점까지 둘러본 뒤 미술관 전체를 다시 한 바퀴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공간들이 다양하게 안과 밖을 오가면서 구성되어 있고 곳곳에서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생폴 드 방스 마을로 내려갔다. 예술가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해서 지금도 갤러리들이 무척 많다.

중세부터 산 언덕에 자연 형성된 마을로 들어가는 성문을 통해 들어가면 골목을 따라 예쁜 상점들이 많은데 식사 후에 둘러보기로 했다. 1920년대 예술가들이 들렀다는 유명한 호텔 겸 식당  콜롱브 도르도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패스하고 절벽에 만들어진 식당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점심을 먹었다.

본격적으로 마을 구경을 하려는데 소나기가 내린다. 비를 피하려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테이블보, 비누 등 이것저것 사고 났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모른다. 그래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었다. 마르크 샤갈의 무덤이다.

 샤갈은 1887년 7월 7일 러시아 서부 벨라루스 공화국의 비테프스크(유대인 거주지역)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샤갈은 생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수업을 받다가 후원자의 재정지원으로 파리에 가게 된다. 모이셰 세갈이라는 이름도 프랑스식 마르크 샤갈로 바꾸고 모딜리아니 등 다른 나라에서 온 화가들과 교감하며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1차 대전 중인 1914년  고향 비테프스크로 돌아간 샤갈은 이듬해인 1915년 벨라 로젠펠드와 결혼했다. 보석 세공사의 딸 벨라는 미모와 교양을 갖춘 여인이었다. 샤갈은 비테프스크의 인민 미술위원으로 미술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곧 그만두고 모스크바로 옮겨 무대미술에 열중했다. 모스크바 국립 유대 극장의 벽화 장식을 의뢰받아 작업하던 중 사회주의자들과 마찰로 1922년 가족과 함께 영구히 러시아를 떠났다. 베를린에서 파리로 옮겨 다니며 힘들게 생활했지만 판화 연작 등을 발표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고 1926년 뉴욕에서도 개인전을 가졌다. 유대인인 샤갈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도피해 유럽서 피신해 온 다른 예술가들과 어울려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1944년 사랑하는 아내이자 뮤즈인 벨라가 감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큰 상실감에 빠져 9개월 간 붓을 들지 못하다가 딸의 소개로 버지니아 해거드를 만나 슬럼프를 극복하게 된다.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오르쥬발에 살면서 유럽의 도시에서  전시회를 이어갔다. 1952년 발렌티나(바바) 브로드스키와 결혼하면서 예술적으로도 새로운 활력을 받아 성경 시리즈 작업과 파리 오페라 천정화 등을 제작했다. 197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고 생애 마지막 20년 간 생폴 드 방스에서 살다가 1985년 9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긴 세월을 예술가로 살면서 아름다운 색채와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우리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준 그는 생폴 드 방스의 언덕 아래 유대인 묘지에 생의 후반을 함께한 바바와 함께 조용히 묻혀 있었다. 그의 예술작품은  영원히 남아 우리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프랑스 #16]세잔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