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글쓰기
" 글을 쓴다는 것은 최상의 경우일지라도 고독한 삶입니다. "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 중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글 실력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헤밍웨이의 친구들이 단어 6개로 자신들을 울릴만한 소설을 써보라고 장난 삼아 내기를 걸었다. 헤밍웨이는 즉석에서 지어내 친구들을 울렸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 아기 신발 팝니다. 한 번도 신은 적 없음.)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좋아한다. 불필요한 수식이 없는 명확한 단문과 힘 있는 긍정문으로 상징되는 그의 글 스타일을 부러워하고, 글 쓰는 습관을 고수한 그의 태도를 본보기로 삼고자 했다. 그는 쿠바에서의 은둔 시절에 조차 매일 오전에는 글을 썼다. 서서 쓰는 것이 습관인 그는 '자신에게 속이지 않으려고' 매일 자신이 쓴 단어 수를 차트에 기록했다고 한다. 이튿날 멕시코만에서 낚시를 해야 할 때에는 이틀 치에 해당하는 분량의 글을 썼다.
헤밍웨이는 '글쓰기란 목격자도 필요 없이 사적이고 고독한 업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타자기 앞에 앉아서 피를 토하면 된다.'
헤밍웨이는 자유로운 로맨티스트, 그러나 늘 고독했던 풍운아로 기억된다.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하다 1차 대전 당시 적십자 부대의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 1918년 7월 박격포 공격에 큰 부상을 입고 밀라노로 후송돼 병원에서 간호사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훗날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아그네스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이별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토론토 스타'의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 자격으로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거트루드 스타인,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등 당대의 유명한 문화인들과 교류하며 문학활동을 했다.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글의 소재를 수집했다. 1926년 미국으로 돌아와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 정착한 그는 전후 '잃어버린 세대'의 모습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한데 이어 전쟁 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를 통해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 뒤 다시 유럽으로 가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경험으로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발표했다.
헤밍웨이는 1939년 쿠바에 정착해 1960년까지 살았다. 그 사이에도 통신원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2차 대전의 현장을 누볐으며 케냐에서 사파리를 하며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필력의 쇠잔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쿠바의 삶을 바탕으로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해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심해 낚시와 사냥, 권투에 몰두하고 크고 작은 전쟁터를 누볐던 헤밍웨이는 패기만만하고 마초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실은 글을 쓰는 내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 힘겨워했던 것 같다. 1950년대 말부터 우울증과 피해망상 등으로 괴로워하다 1960년 7월 쿠바에서 추방된 뒤 정착한 미국 아이다호 주 케첨의 자택에서 1961년 7월 2일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라고 했다. 헤밍웨이, 그 다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