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한 문장 1월 18일

마음의 눈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직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 헬렌 켈러


인간에게는 크게 두 가지 눈이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과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다.

마음의 눈을 뜨면 실제로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볼 수 있다고 한다. 시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청각과 촉각, 후각이 동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마음의 눈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감각이 혼합되어 발달한 공감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분별력과 통찰력, 그리고 지혜를 아우른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사랑, 선함, 행복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바로 마음의 눈이다.

마음의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최대한 순수한 상태로 마음을 닦아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면 마음의 눈도 뜨게 되지 않을까.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은 사람(부처)이 되는 것인데 깨달음이 곧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보고, 수행을 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감각을 여섯 가지로 나눈다.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에 마음을 더한 것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육입처(六入處)라고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은 접촉을 느낀다. 마음으로는 몸으로 느끼는 촉각을 받아들이며 생각을 분별한다. 이 감각들을 스스로 통제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다.

선종에서는 수행을 매우 중시한다. 깨달음은 수행 정진하면서 마음을 순화시키고 본성을 찾음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선종의 핵심이다. 실천 방법으로 '돈오점수 정혜쌍수'를 든다. '돈오'란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고. '점수'는 자심의 마음을 닦는 것을 말한다. '정'은 마음의 본체이고, '혜'는 사물을 분별하여 보는 것이며 '쌍수'는 이것을 함께 닦는다는 것이다.

달마대사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신광이라는 젊은이가 달마대사에게 찾아와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내게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와 보라고 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신광은 달마대사에게 가서 찾지 못했다고 하자 달마대사는 "내가 너의 마음을 안심시켰다."라고 말한다.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기에 다루기 어렵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떻게 다루는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쉬울 수도 있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감정과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여러 가지 번민에 휩싸여 괴롭다가도, 그게 아니지 하면서 생각을 고쳐 먹으면 그럭저럭 넘어간다.

마음의 눈을 가지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괴로움의 극복은 괴로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각할 때에 이루어진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매일 수행을 해도 쉽게 도달 할 수 없다. 순식간에 될 리 없는 것이기에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수련하면서 발달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살면서 그때그때 이끌어 줄 수 있는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스승은 좋은 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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