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허상의 경계선에서 멈추지 말라.'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우리는 종종 심리적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더 이상 못하겠어. 내가 이러다가 큰 일 나지. 이렇게 고생하느니 차라리 그만 두고 말겠어!’라며 포기한다.
그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은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를 앞둔 시점이고 중요한 전환점일 때가 많다. 심리적 한계에 달했다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경계선을 넘기면 심리적으로 통제력을 상실해 무너질 것 같고, 그것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고 , 부모님이 크게 실망할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니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물러선다.
그런데 그 '선'이라는 게 누가 나에게 강요한 것인지 따져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 경계선은 내가 그어놓은 허상이 아니던가? 사실이 그렇다.
스티브 도나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때 내 안의 일부가 죽는다.(..) 허상의 국경선에서 멈춰 버리면 열정도 죽는다.'라고 말한다.
난관은 넘으라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진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란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다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우리를 경계선에 가두어 두는 잘못된 믿음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우리의 이성을 가렸거나, 아니면 그 상태에 너무 몰입해서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허상의 경계선을 넘고 나면 그곳에 더 심오한 진실이 있음을 깨닫기 위해 신념이 필요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부끄럽지만 나의 삶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에피소드라고 할 만한 이야기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늘 겁을 먹고 물러섰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을 그어 놓고는 넘지 못했다. 도전하는 삶이 아니었다. 한계선에 늘 가로막혔다. 그 결과 크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평탄한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면 많은 것을 놓친 것 같다.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박노해 시인의 시 <한계선>이 가슴을 때린다.
앞으로 남은 날은 다르게 살고 싶다.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허상의 경계선을 넘어 가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