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개천의 경의선 책거리 De빌딩
철길을 따라 도심을 가로지르며 길게 이어진 경의선 숲길은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서 용산구 원효로까지 6.3km에 이른다. 이제 제법 나무와 풀도 자리를 잡고 길 양쪽으로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어지면서 걷는 즐거움이 크다. 기존에 기찻길을 따라 들어섰던 그만 그만한 모양의 연립주택들이 대부분인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건물이 들어섰다. 경의선 책거리가 시작되는 홍대역 6번 출구 부근에 들어선 6층 높이의 상업건물인 ‘De빌딩’은 존재감이 다르다.
직사각형 땅 위에 각이 진 콘크리트 건물은 구리 빛깔의 메탈라스 외피를 두르고 있다. 알루미늄판을 잡아 늘린 메탈라스의 변화무쌍한 물성 덕분에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마포구 서교동의 주상복합건물 ‘De 빌딩’은 김개천 국민대 교수가 디자인했다. ‘명묵의 건축’ 등 동양철학과 건축 미학에 관한 저서와 글을 다수 발표한 김 교수는 철학적 콘셉트를 담은 건축, 예술적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진지하고 차분하며 철학적인 디자인일 것이라 상상하면서 현장을 찾아갔다. 진한 핑크빛을 콘셉트 컬러로 하는 2층 카페의 인테리어 디자인도 김 교수가 직접 했다는 말에 예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서측 입구로 올라오는 공간은 완전히 진한 핑크로 도배를 했다. 젊은 디자이너 김명천의 작품이라고 한다.
건축은 삶의 무대라고 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이 건축 공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주택(주거건축)과 상업건축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질과 직접 관계되는 건축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삶의 주변에 위치하는 상업건축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에서의 상업성과 예술성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이런 상업건물을 통해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디자인했다”라고 말했다.
건축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는 아주 해묵은 질문이다. 건축이 예술이라는 말속에는 건축은 형식과 공간으로서의 미학적 대상인 동시에 그 자체가 심미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예술이 아니라고 할 때 건축은 예술이기 이전에 삶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며 상업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이분법은 21세기에 와서는 더 이상 이제 유효하지 않다.”면서 “평범한 일상과 차별화되는 미적인 삶으로의 승화이기보다는 일상적 삶의 터전에 예술이 자리 잡아야 하며 건축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건축은 예술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상업적인 이유로 출발한다. 많은 비용과 힘든 시공 때문에 금전적 이익과 목적이 없는 건축은 거의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건축에서 예술성과 상업성은 구분될 수 없다”라고 했다. 왜 일까? 그의 답은 간명하다. “삶이 예술을 원하기 때문이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대척점에 놓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따르면 상업적 건축은 집장사가 오로지 수익을 목적으로 짓는 저속한 것이 되고 예술적 건축은 고상한 무엇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 이전의 개념이었다. 상업성은 단순히 상업적 목적만을 추구한다기보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즐기고 보람을 찾게 하는 감각적 욕망과 지적 욕구의 태동지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
김 교수는 “예술성과 상업성은 동전의 양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한 몸처럼 늘 마주치는 것이다.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날 때 삶은 놀이가 되고 그만큼 윤택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건강하고 자유롭고 윤택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면서 “De 빌딩에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예술성도 갖는 건축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직사각형 평면 위에 지어진 건물은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는다. 그럼에도 외부로 드러나는 선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공간들 때문에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작은 샘이 있는 테라스 공간과 계단이 본체 외부로 나와 있어 다양한 공간적 경험이 가능하다. 사철 변화하는 수목으로 조경을 해서 안과 밖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도록 배려했다.
노출된 기둥들은 알루미늄 메탈라스 외피로 건축물을 감싸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실제의 건물보다 훨씬 볼륨감이 커 보이는 효과를 주는 더블스킨 공법에 사용된 재료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알루미늄 메탈라스. 원래 내장재나 연결부위, 옥상 가리개 등에 주로 사용되는 건축재료로 금속성을 강조하는 소재이지만 여기선 외피로 사용됐다. 철판을 늘리면서 생긴 구멍들이 여러 가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임대용 건물은 장차 무슨 용도로 사용될지 모른다는 모호성 때문에 기능을 특정화 시키기도, 구체적인 색상이나 모양 혹은 재료를 규정짓기가 힘들다. 그런 단점을 특징으로 활용했다. 비어있고 혼재되어 있는 형태를 구축했다.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지어 생각하는 것에서도 벗어나고자 했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비유비무(非有非無)한 건축을 추구했다. ”
상업성과 예술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했던 의도는 ‘De빌딩’이라는 건물의 이름에도 담겨있다. ‘De’는 디자인 Design이라는 단어에서 쓰이는 접두어로 여러 뜻이 있지만 ‘저항하는’이라는 뜻에 주목했다. 이 건물은 상업성과 예술성을 나누는 것, 성과 속,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정신을 나누는 이분법적 건축관에 저항하고 있다.
‘De’는 건축적 형태에서도 저항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건축의 평면은 직사각형이지만 건물은 직사각형의 메스(건축물 덩어리)라기보다는 투영되는 점들로 만들어져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형태가 되고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은 선과 메스의 건축이다. 주 소재는 콘크리트다. 기존의 건축적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경제적이기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독창적 형식을 취한다. 선과 면으로 된 건축이지만 보기에 따라 점이 되기도 하다.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건축물인데 계속 달라진다. 공간도 외부와 내부가 혼재되어 있다.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콘크리트로 지어진 것은 분명한데 콘크리트 건물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렇다고 금속 건물도 아니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건물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무엇을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살아있는 것들은 무엇이라 한마디로 묘사할 수 없듯이. 그런 건축이고 싶었다. 다만 아주 쉬운 방법으로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건축을 하고 싶었다.”
건축가의 의도대로 공간의 변화와 그 순간들을 가장 잘 즐기고 느끼는 이는 건물의 6층에 사는 건축주와 그의 딸이다. 건축주는 40년을 살았던 동네가 매일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예민한 청소년기의 딸은 아침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다. 6층의 살림집은 독특한 구조다. 70평 정도의 면적에 건축주가 사는 18평 집, 그의 부모님이 거주하는 40평의 집 두 채가 긴 복도와 하늘정원을 공유하고 있다. 복도는 연결되지만 테라스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각자의 삶에 독립성을 준다.
건축주의 배려로 작은 집을 구경했다. 큰방, 거실 겸 부엌, 작은 방으로 구성돼 있다. 최대한 수납공간을 짜 넣어 밖으로 나와있는 살림은 거의 없다. 간소하지만 갖출 건 다 갖춘 3개의 공간은 미닫이 문으로 구분해 놓았다. 미닫이 문을 사용해 공간의 크기나 쓰임새에 얼마든지 변화를 주는 방식은 김 교수가 ‘한칸집’에서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정사각형 평면의 한칸집은 벽을 두지 않고 8개의 미닫이 문만으로 공간을 구분하면서 거실, 침실, 서재, 부엌 등으로 자유자재로 변용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구조만으로 변화를 주면서 그 무엇이 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가능한 ‘중립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번에 그는 축소된 크기이지만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했다. “한번 지어지면 변화를 줄 수 없다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이 추구하는 이상도 이 시대에 달라져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반영한 디자인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큰 아파트에서 삶이 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삶의 질은 공간의 크기와 무관하다. 주어진 공간에서 모든 게 가능하고 자유로울 수 있으며 건강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쓸쓸한 ‘삶’ 그 자체를 있게 하는 집이 현대인에게는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삶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상업성을 져버릴 수 없지만 삶을 살아가는 한 예술적인 것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즉 그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관건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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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건축 오디세이 기획을 위해 작성된 기사를 손보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