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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18. 2021

건축 탐구] 궁극의 힐링 공간, 울릉도 코스모스

우주와 땅의 기운이 조응하는 건축

여간해선 실천하기 어렵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나열한 것이 버킷리스트이다. 울릉도  코스모스(KOSMOS) 리조트는 많은 사람들이 국내 여행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곳이다. 아주 특별한 장소에 자리 잡은 특별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가 위치한 울릉군 북면 추산리는 예로부터 울릉도에서 기(氣)가 좋기로 이름난 곳이다. 추산리라는 지명을 낳은 날카롭게 솟은 바위산 송곳봉이 뿜어내는 양의 기운이 나리분지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음의 기운과 만나는 혈의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직원 연수원을 지으려고 부지를 매입했다가 계획을 바꿔 호텔을 짓기로 했다. 발주처(코오롱글로벌)의 요구는 간단명료했다.

“추산지역 땅과 하늘의 기운을 온전히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곳,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달라.”


강릉항에서 뱃길 따라 동쪽으로 3시간, 울릉도가 가까워진다. 강릉항에서 출발하는 해로는 율릉도 북쪽으로 지나게 되는데 멀리서 보이는 섬의 북쪽 지역 벼랑 끝에 서 있는 흰색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위치상 코스모스가 아닐까 했는데 짐작이 맞았다.

저동항에 내려서 다시 자동차(코스모스에서 셔틀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예약할 때 도착 항구를 얘기하면 셔틀버스 송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로 울릉도 순환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렸다. 섬의 북쪽 바다 끝에 날카롭게 솟은 송곳봉(추산)이 눈에 들어온다. 2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거대한 바위산이다. 10도 정도의 경사로를 따라 오르니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우뚝 선 송곳봉과 마주하며 벼랑 끝으로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흰색 유선형의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벼랑 쪽 건물(A동·빌라 코스모스)은 흰색 꽃 한 송이가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앉은 것 같다. 송곳봉과 코스모스 사이에 뜬금없이 거대한 고릴라 조형물이 서있다. 투숙객뿐 아니라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울라'(울릉도 고릴라를 줄인 것)이다.   

 A동 뒤로 서있는  건물(B동·빌라 떼레)은 거대한 키조개 몇 개를 세로로 꼽아 놓은 모습이다. 풀빌라 형식의 A동과 과 7개의 독립 객실을 가진 B동 건물은 한결같이 지붕과 벽이 따로 없는 부드러운 곡선이 이어지는 비정형의 구조다. 흰색 구조물의 두께는 12㎝에 불과하다.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부서지지는 않을까? 궁금한 마음에 저절로 손이 간다. 보기엔 부드러워도 단단하다.

코스모스를 디자인한 건축가 김찬중 (더시스템 랩 대표·경희대 건축과 초빙교수)을 성수동 더시스템 랩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삼성동 하나은행 레노베이션 프로젝트 ‘플레이스 원’, 삼성래미안 갤러리 등 프로젝트마다 실험적인 방식을 시도하는 것으로 건축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김 교수는 “처음 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자연이 너무 장대하고 아름다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면서 “산세와 주변 환경이 너무 수려해서 어떤 건물이 들어가도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육면체의 매스를 가진 전형적인 건축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오브제’를 들여놓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좁고 긴 형상의 대지에 들어 선 두 개의 건물은 회오리 모양의 커브(곡선)를 그리는 디자인의 영감은 현장의 자연에서 받았다고 했다. 건물의 콘셉트는 ‘하늘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은 어떤 궤적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한다.

“이 땅의 주인은 수만 년 전부터 있었던 송곳봉이었다. 다르면서도 송곳봉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다. 울릉도 추산에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게 밤하늘인데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첫날 그곳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거대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체의 궤적을 살린 오브제가 이 땅에 어울릴 것 같았다.”

천체의 변화와 해와 달의 궤적, 추산의 능선과 수평선, 바닷가 마을과 나리분지 방향의 풍경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원이라는 기하학 안에서 나선으로 귀결시키도록 디자인했다. 궤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벼랑 끝 대지를 중심으로 계속 이동한다. 소용돌이처럼 생긴 라인들을 연결하면서 디자인은 완성됐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우주’를 뜻하는 KOSMOS로 표기하면서 코오롱그룹의 K를 수렴하는 것으로 브랜드 네이밍도 정리했다. 디자인은 상당히 명쾌하게 진행됐지만 유선형의 디자인을 가진 가뿐한 느낌을 살려 울릉도에 오브제를 짓는 것은 그야말로 큰 모험이었다.

“송곳봉 앞에 들어서는 오브제는 자연의 장대함에 힘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육중한 느낌으로 건물을 구축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근육질보다는 야리야리한 느낌을 주는 것을 일반 콘크리트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실제 건축구조에 구현된 사례가 없어서 큰 리스크가 크지만 물리적인 무게감을 줄이고 시각적으로도 가볍게 하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었고, 그 방식을 선택한 이상 도전적으로 풀어나가기로 했다. ”

코스모스는 UHPC(울트라 하이퍼포먼스 콘크리트·초고강도 콘크리트)를 구조 재료로 사용해 지은 건물이다. 건축계에선 아직 생소한 재료인 UHPC를 현장에서 타설해 지은 세계 첫 사례로 유명하다. 강철 섬유(스틸 파이버)를 믹싱 한 UHPC는 교량의 조인트 부분에 사용하도록 개발된 토목공학 쪽의 재료다. 일반 콘크리트보다 밀도가 높아 누수가 없고 염분에도 강하다. 무엇보다 강도가 높아 건축물을 얇게 만들 수 있다. 콘크리트의 벽식 구조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벽 두께는 최소 30㎝ 이상이었지만 UHPC를 사용하면 12㎝ 두께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척 예민한 재료여서 다루기가 까다롭다. 당시 플레이스 원 공사 현장에서도 UHPC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모듈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코스모스에서처럼 현장 타설은 리스크가 훨씬 큰 작업이었다. 김 교수는 “아무도 해 본 적이 없는 시공 소재나 기술을 도입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건축주를 설득하는 것인데 이 경우엔 발주처의 의지가 무척 강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면서 “ 그런 건축주를 만나는 것은 건축가로서 행운이었다”라고 말했다.

시공에 들어가기 전 정확한 계측과 실시 실험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원들과도 설계단계에서 긴밀하게 협조했다. A동은 육지에서 철판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실어오고 B동은 현장에서 나무로 거푸집을 만들었다. 빨리 굳는 특성 때문에 동시에 타설을 하기로 하고 울릉도내 레미콘 회사 두 곳을 동원했다.

“새로운 물성에는 새로운 구축 논리가 필요하다. 이론으로 가능해도 실제 현장에서 구현된 적이 없을 땐 리스크가 따른다. 특히 정서적 책임이 크다. 하지만 한번 검증되면 단번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해야 기술도 발전하고 새로운 재료를 만드는 업체들도 활력을 얻고 젊은 건축가들은 새로운 소재를 시도하는 기회도 늘어난다. 한번 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김 교수는 “UHPC는 아직 많이 쓰이지 않고 재료 자체가 비싸다. 하지만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딱딱하고 차가운 재료라는 인식을 바꾸고 미감을 변화시켜 주는 재료여서 시공 히스토리가 하나 둘 쌓이면 콘크리트도 외유내강의 재료로 인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벽 두께 12㎝로 코스모스를 완성한 이후 자신감이 붙은 김 교수와 시스템 랩팀은 UHPC를 8㎝로 얇게 만들어 삼진제약 연구소 건물을 시공 중이다.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코스모스는 디자인에서도 파격이다. 일반적으로 바닷가에 지어지는 건물은 가로로 길게 창을 내고 내부에서 ‘파노라마 뷰’를 즐기도록 하지만 코스모스는 수직적인 뷰를 갖는다. B동의 객실 테라스에 서면 펼쳐진 풍경을 세로로 쪼갠 듯한 독특한 전망이 나온다.

“파노라마 뷰는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방에서는 오직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뷰를 갖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자연과 건물의 관계에서 건물이 지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가 건물을 통해 보는 자연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육로를 지나 해로를 거쳐 다시 육로를 통해야 도달할 수 있는 코스모스는 결코 접근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죽기 전에 한번쯤 와볼 만한 것은 틀림없다.

객실이 너무 적어서 예약이 무척 힘든  사실이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경험하려면 하룻밤 묵어보는 것이  건축의 진가를 느낄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곳은 석양이 특히 아름답다. 하늘에 붉은빛을 드리우는 석양 무렵엔 지상의 낙원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정원에 설치된 조명 하나둘 불을 밝히면 동화의 나라에 온듯하다. 그러다 밤이 되면  그대로 검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같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면 우주의 특별한 기운 온몸으로 껴진다. 

 건축 평론가이며 건축가인  찰스 무어는 최상의 건축물 감상법은 그 안에서 잠을 깨 보는 것이라고 했다. 대상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체의 움직임과 우주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깊은 잠에 빠진다. 아침햇살이 송곳봉을 비추면 새소리와 함께 섬은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잔디에 내린 이슬을 밟고 서서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가슴 깊숙이 들여보내 본다. 자연이 일부가 된 나 자신이 느껴진다. 궁극의 힐링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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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울신문 기획연재 건축 오디세이를 위해 쓴 글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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