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꽃나무 찬탄

세상에 버려질 꽃 없어라

봄은 꽃의 계절이다. 목련 진달래 개나리에 이어 벚꽃이 만개한다. 바람에 벚꽃잎이 비 내리듯 떨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울 틈도 없이 철쭉과 진홍빛 영산홍이 알록달록 피어난다. 화려한 영산홍에 정신이 팔리려다 말고 바람결에 실려온 라일락향에 취한다.

일주일에 한 번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두 강좌를 하루에 몰아서 하느라 화요일이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한 덕분에 멀리까지 오갈일은 없었지만 이번 학기는 대면 수업을 하고 있다. 장거리 운전이 힘들지만 학생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이 좋고, 젊음이 가득한 대학 캠퍼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오전 3시간 강의를 마치고 오후 강의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휴식시간에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교정의 벤치에 앉아 꽃구경하는 게 큰 즐거움이다. 교정의 화단 관리를 참 잘하고 있어서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 점심시간에 교내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오후 강의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관리하시는 분이 커다란 전지가위로 나무를 정리하고 계셨다.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에는 푸른 잎과 함께 연둣빛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데도 미련 없이 싹둑 잘라낸 게 너무 아까웠다. 아저씨는 나뭇가지가 옆으로 삐쳐 나와서 잘라버린 거라고 하신다.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으니 물론이라며 적당한 길이로 밑동을 싹둑싹둑 잘라주셨다. 자동차에 있던 머그에 물을 붓고 나뭇가지를 담갔다.

서울에 갈 때까지 마르지 않도록 고이 모셔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집에 가져가는 걸 깜박해서 나무는 하룻밤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다행히 지하 주차장이라 숨이 죽지 않고 수요일 오후에 무사히 유리병에 옮겨 꼽았다. 꽃봉오리에서 어떤 꽃이 필지, 무슨 꽃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긴 겨울을 지내느라 애쓴 뒤 피어난 파란 잎사귀와 봉오리가 잘리고,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다행하게도 나뭇가지는 생기를 되찾은 듯했다. 집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봉오리를 보니 곧 필 것 같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오후에 들어와서 보니 흰색 꽃이 활짝 피어 나를 반긴다. 목련처럼 하얀 꽃이 담백하고 우아하다. 향기를 맡아봤다. 뭐랄까..? 자연의 향기. 봄에 깊은 산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은은하고도 달콤한 향기. 초파일이 내일인데, 룸비니 동산에서 아마 이런 향기가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만들 정도로 황홀하다.

이 꽃이 무엇일까? 산목련? 산후박? 검색을 하다가 마침내 정답을 찾았다. 함박꽃나무였다. 학명은 magnolia sieboldii. 한국 산목련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식물학자 프란츠 폰 지볼트 박사가 korean mountain magnloia 라고 이름 지었다. 화려한 함박꽃 하고는 다른 관상수다. 우리나라 깊은 산 중턱에서 자라는 목련과의 꽃나무다. 그러고 보니 나를 반겼을 때 꽃이 함박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함박꽃도 좋아하지만, 이제부턴 함박꽃나무도 좋아할 것이다.

하얀 꽃이 내게 말을 하는 것 같다 버려지지 않게 해 줘서 고맙다고, 꽃을 피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더 고맙다. 시들지 않고 피어줘서.

세상에 버려져야 할 꽃은 없다. 모든 생명이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저녁이 되니 꽃이 다시 오무라 들었다. 아침에도 그대로다. 똑똑 두드려 본다.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기지개를 켜듯 꽃이 다시 피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알 수 없다.

지구상에 식물이 약 50만종이 있으며, 꽃이 피는 식물이 약 25만 종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적다. 그래도 이번에 함박꽃나무 한가지를 보태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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