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인생에 휴가를 주겠습니다.

'인이 박인다'는 말이 있다. 버릇 생각 태도 따위가 깊이 밴다는 뜻이다. '마감'에 쫓기는 직업을 가졌던 나의 경우 바쁨에 인이 박여서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냥 나를 달달 볶는다고 할까. 조금이라도 한가하다는 기분이 들면 그 때부터 무언가 바쁘게 스케줄을 만들고, 일을 벌인다. 그것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허덕허덕 일을 마무리하고.. 역마살을 핑게삼아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지 않는다. 어딘가로 떠나고, 돌아오고, 그래서 몸은 피곤하고, 심지어 그런 피로가 기분 좋게 느껴지곤 했다. 안 바쁘면 괜시리 허전하고 인생이 무상하고, 우울해지는 이상한 버릇.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사서 고생하면서 경험의 폭도 넓히고, 무슨 일이 닥쳐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좀 지나치게 한가함을 참지 못하는 게 문제다.

퇴직을 한 이후에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나이가 있으니 직장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은 예견되어 있었다. 그만두기 몇 해 전부터 어떻게 '정년' 퇴직 후를 잘 보낼지를 고민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를 찾아내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괜한 불안감에 초조했다. 결국 아무 준비도 없이 퇴직을 하고 나서 뭔가 해 보려다 마음고생만 엄청했다.

다행히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 수업 준비하고, 강의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삶을 연장할 수 있었다.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는 보람은 있었지만 강의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안겼다. 절대 평가는 괜찮은데 '상대평가'로 학기말에 성적처리를 할 때는 거의 노이로제가 올 정도로 고민스러웠다. 보통 과제물로 대체를 했었는데 학생수가 늘어나니 주관적으로 평가를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의 주관적인 평가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학적부에 점수가 박히고 그것이 학생의 평생을 따라다닐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잠이 안 왔다. (그래서 올해엔 단답식 문제를 출제해서 기말고사를 치렀다.) 춘천까지 수업하러 장거리 운전해서 다니는 것도 '이 나이'에는 힘에 부쳤다.

푸념 조로 '왜 이렇게 바쁜지 몰라!'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래도 바쁜게 좋다.'라고 한다. 그 말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바쁜 게 좋지.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도 있지 않던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또 바쁘게 돌아다니고, 그래서 지치고 힘들고.

2022년 7월 1일 아침, 파바로티가 부른 나폴리 민요 '오 솔레미오' (오, 나의 태양!)를 듣다가 돌연 결심을 했다.

이제 그만 바쁜 삶에서 은퇴하자! 내 삶에 '진정한' 휴가를 주자.

정독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집어 든 책 ,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소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처럼 이제 남은 날은 전부 휴가로 쓰겠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내가 얘기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제목만 놓고 보면 너무 맘에 든다는 얘기다.)

그런데 또 버릇이 도진다.

뭐하고 쉬지? 아마도 바쁘게 쉴 것 같다.

지난봄 다시 시작한 붓글씨도 써야 하고, 새로 시작한 수채화도 그려야 하고, 독서도 해야 하고 여행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음악회도 가야 하고.. 그리고 여행.. 글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기. 이게 바로 휴가 아닐른지?

......

아!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그저 무작정 휴식’을 한다는 것은 내게 정말 어렵다.

이래도 되나? 그냥 이렇게 살다가 조용히 사그러드는 건가? 소는 누가 키우지?

갖가지 걱정거리, 불안감이 스물스물 밀려온다.

극복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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