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거북이에 대한 단상
이젠 내게 자유 시간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의무들(역시나 글 쓰는 일) 때문에 아직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내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던 대학 강의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큰 부담을 덜었다.
자유시간을 만끽한다고 해서 무작정, 무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일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 의지로 하고 싶은 일들, 즐거운 일들,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을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한다. ‘ 는 자유시간 보내기 원칙을 갖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 아침 산책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단지는 바로 매봉산 자락에 붙어 있어서 아파트에서 산책로와 등산로가 바로 연결된다. 마치 커다란 정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요즘 각광받는 ‘숲세권’ 아파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가 하루의 기분을 맑게 해 준다. 새 소리를 좀더 가까이 들으려고 산책길에 오른다. 잘 가꿔져서 철마다 꽃이 피고 무엇보다 산에 오래전부터 있던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녹음과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일요일 아침에 산책을 나섰다. 아침이지만 무더운데 숲은 바람도 불지 않고 습도가 더 높았다. 오후에 약속이 있으니 땀을 흠뻑 빼고 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해야겠다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산 중턱의 어린이집 앞길에서 무언가 낯선 물체를 발견했다.
개의 용변인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요즘은 길 한가운데에 이렇게 개가 용변을 보도록 방치할 수 없는데.. 뭔지 자세히 보려다 그 물체가 움직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거북이였다. 등의 길이가 20센티 정도 될까? 어른 손바닥 크기만 한데 자연 속에서 혼자 저렇게 자랐을 리는 없어 보였다.
“저것 좀 보세요! 저거 거북이죠? “
뒤에서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어르신에게 말을 걸며 거북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거북이가 기어 오고 우리는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지팡이를 든 어르신은 “이게 사람이 키우다가 여기에 내다 버리거나 , 아니면 어린이집에서 키우는 게 기어 나온 걸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거북이를 보더니 잠시 멈춰 선다. 부인이 “요즘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지. 키우기 시작했으면 그냥 키워야지 이렇게 내다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혀를 찬다. 그러는 사이 유기 거북이인지, 집 나온 거북이인지 알 수 없는 거북이는 계속 움직여 흙길에서 수풀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기어가고 있었다.
어르신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거북이를 숲 속으로 밀어 넣어 주며 “아무튼 숲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 어린이집에서 키우던 거면 담장 안으로 던져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웅얼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외로 거북이 걸음은 빨랐다. 등 딱지 집을 이고 네 발로 걷는데 삐죽 튀어 나온 머리는 레이더 처럼 발향을 감지한다. 뾰족한 꼬리는 날카롭기까지 하다. 거북이가 느림보라는 말은 거북이을 보지 않은 사람이 만들어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거북이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토끼와 거북이 동화에서 거북이가 이기는 것도 수긍이 갔다.
잠시의 소동이 가라앉고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갔다. 거북이가 계속 숲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보이지 않게 되자 나도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거북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물에서 사는 걸까, 뭍에서 사는 걸까? 원래 어떤지 모르겠다. 요즘은 사람들과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야 할까? 마른 나뭇잎과 거의 비슷한 보호색을 가진 것을 보니 숲에서 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책하는 내내 거북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지구를 걱정하기에 앞서 이 작은 생명체를 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119에 전화는 하지 않더라도 120 다산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 거북이를 좀 어떻게 해 주려면 어디에 문의하는 게 좋을 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먹이는 제대로 찾아 먹을까? 이것저것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길을 묵묵히 가는 집 나온 거북이.. 그 거북이도 자유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산책을 할 때마다 숲 속을 들여다보며 그 거북이 생각을 한다. 대답도 없지만 살짝 불러도 본다.
거북아, 거북아!!
무사히 살아만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