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는 즐거움
내가 치자꽃에 꽂힌 건 그날 아침이었다. 즐겨 듣는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청취자의 글을 읽어주는데 끝에 이런 멘트가 있었다. “치자꽃 향이 너무 좋네요~”
그 멘트를 듣는 순간 하얀 치자꽃과 그 향기가 떠올랐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집 근처에 있는 약수시장에 주말마다 화분들을 가져와 파는 곳이 있다. 몇 주 전에 마을도서관 가다가 마침 계시기에 치자 꽃이 있는지 물었다. 큼직한 화분이 하나 있었다. 가지 끝마다 봉오리가 맺혀 있는 것이 탐스러웠다.
-어머나, 얼마예요?
- 5만 원. 그런데 누가 예약해 놓고 갔어요. 이따 배달해 주러 갈 거예요.
- 엥..! 또 없어요?
- 없네요.
누군지 좋겠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할 수 없지. 언니에게 얘기하니 종로 6가 꽃시장에 가면 많다고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그렇게까지 할 건 없다고 하고 패스.
그다음 주 일요일 창덕궁 가는 길에 마침 화원 아주머니가 계시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 혹시 치자꽃 있어요?
- 아, 한 그루 있어요.
하면서 내놓으시는 치자꽃 화분. 그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제법 꽃 봉오리가 많아서 한참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기도 적당했다.
- 얼마.. 에요?
- 오천 원만 주세요.
만원쯤 하겠지 짐작하고 그래도 사려 했는데 오천 원이라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드리며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6시 전에는 와서 가져가라 신다. 누군가 와서 찾다가 한 그루 있는데 이미 팔린 걸 알면 참 아쉬워할 테지..?
오후 늦게 집으로 오면서 꽃을 찾아왔다. 치자꽃은 통풍이 중요하다고 한다. 집에 와서 베란다에 놓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치자나무에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물을 듬뿍 주었다.
그날 밤 들여다 보니 봉오리 하나가 살짝 터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하얀 꽃잎이 보이는데도 봉오리에 코를 들이대고 맡아보니 제법 향기가 난다.
흠.. 바로 이거지! 한 밤 중에 일어나 피어나고 있는 꽃 봉오리에 코를 박는다.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꽃을 살폈다. 어젯밤보다 훨씬 봉오리가 벌어져 피어나 있었다. 겹으로 피는 치자꽃나무가 맞았다. 또 코를 박고 흠흠.
“아! 향기로워라..”
갑자기 고민스러워졌다. 주문진에 가야 해서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데 어쩌나? 나무가 시들어버리면 어쩌지?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했으니 괜찮겠지만 낮에 해가 너무 강해서 걱정이다. 더욱이 피어나는 꽃을 어여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데려갈까? 혼자 궁리를 하다가 그늘막을 쳐 주고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사흘 뒤 서울에 올라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베란다로 달려갔다.
서너 송이 피어난 꽃 들이 방긋이 웃으며 나를 반긴다. 꽃향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잘 피어주니 예쁘고 반갑고 고마웠다.
순백의 꽃은 얼핏 보면 백장미라고 하겠지만 꽃 술이 확연히 다르다. 치자 열매가 열리는 치자나무 꽃은 외겹인데 비해 꽃 치자는 겹으로 피고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치자나무 원산지는 중국인데 꽃치자는 서울 구룡산이 자생지라고 한다. (블로그에 따르면) 꼭두서니과 치자나무속에 속하는 상록관목이다. 어쨋거나 내 발코니에 있으니 좋다. 코를 박고 흠흠.. 꽃 향기가 너무 좋다. 하얀 꽃도 참 우아하고 예쁘다. 소담하니 눈 송이 같아서 한여름 무더위도 날려준다.
다음날 아침에 꽃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삼아 아침인사 삼아 보냈다. 이런 인사말과 함께.
“꽃 모닝! ”
“치자꽃 향기도 함께 보내요~ “
치자꽃의 꽃말을 찾아봤다. 한 없는 즐거움, 청결, 순결. 정말 한 없는 즐거움을 주는 꽃이다.
이런 꽃을 오천원에 모셔 오다니! 그 생각을 하니 더욱 즐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