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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12. 2022

치자 꽃 향기에 취해

한 없는 즐거움

내가 치자꽃에 꽂힌 건 그날 아침이었다. 즐겨 듣는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청취자의 글을 읽어주는데 끝에 이런 멘트가 있었다. “치자꽃 향이 너무 좋네요~”

그 멘트를 듣는 순간 하얀 치자꽃과 그 향기가 떠올랐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집 근처에 있는 약수시장에 주말마다 화분들을 가져와 파는 곳이 있다. 몇 주 전에 마을도서관 가다가 마침 계시기에 치자 꽃이 있는지 물었다. 큼직한 화분이 하나 있었다. 가지 끝마다 봉오리가 맺혀 있는 것이 탐스러웠다.

-어머나, 얼마예요?

- 5만 원. 그런데 누가 예약해 놓고 갔어요. 이따 배달해 주러 갈 거예요.

- 엥..! 또 없어요?

- 없네요.

누군지 좋겠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할 수 없지. 언니에게 얘기하니 종로 6가 꽃시장에 가면 많다고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그렇게까지 할 건 없다고 하고 패스.

그다음 주 일요일 창덕궁 가는 길에 마침 화원 아주머니가 계시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 혹시 치자꽃 있어요?

- 아, 한 그루 있어요.

하면서 내놓으시는 치자꽃 화분. 그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제법 꽃 봉오리가 많아서 한참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기도 적당했다.

- 얼마.. 에요?

- 오천 원만 주세요.

만원쯤 하겠지 짐작하고 그래도 사려 했는데 오천 원이라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드리며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6시 전에는 와서 가져가라 신다. 누군가 와서 찾다가 한 그루 있는데 이미 팔린 걸 알면 참 아쉬워할 테지..?

오후 늦게 집으로 오면서 꽃을 찾아왔다. 치자꽃은 통풍이 중요하다고 한다. 집에 와서 베란다에 놓고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치자나무에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물을 듬뿍 주었다.

그날 밤 들여다 보니 봉오리 하나가 살짝 터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 하얀 꽃잎이 보이는데도 봉오리에 코를 들이대고 맡아보니 제법 향기가 난다.

흠.. 바로 이거지! 한 밤 중에 일어나 피어나고 있는 꽃 봉오리에 코를 박는다.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꽃을 살폈다. 어젯밤보다 훨씬 봉오리가 벌어져 피어나 있었다. 겹으로 피는 치자꽃나무가 맞았다. 또 코를 박고 흠흠.

“아! 향기로워라..”

갑자기 고민스러워졌다. 주문진에 가야 해서 며칠 집을 비워야 하는데 어쩌나? 나무가 시들어버리면 어쩌지?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했으니 괜찮겠지만 낮에 해가 너무 강해서 걱정이다. 더욱이 피어나는 꽃을 어여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데려갈까? 혼자 궁리를 하다가 그늘막을 쳐 주고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사흘 뒤 서울에 올라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베란다로 달려갔다.

서너 송이 피어난 꽃 들이 방긋이 웃으며 나를  반긴다. 꽃향기가 너무 사랑스럽다. 잘 피어주니 예쁘고 반갑고 고마웠다.

순백의 꽃은 얼핏 보면 백장미라고 하겠지만  술이 확연히 다르다. 치자 열매가 열리는 치자나무 꽃은 외겹인데  비해  치자는 겹으로 피고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치자나무 원산지는 중국인데 꽃치자는 서울 구룡산이 자생지라고 한다. (블로그에 따르면) 꼭두서니과 치자나무속에 속하는 록관목이다. 어쨋거나  발코니에 있으니 좋다. 코를 박고 흠흠..  향기가 너무 좋다. 하얀 꽃도  우아하고 예쁘다. 소담하니  송이 같아서 한여름 무더위도 날려준다.

다음날 아침에 꽃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자랑삼아 아침인사 삼아 보냈다. 이런 인사말과 함께.

“꽃 모닝! ”

“치자꽃 향기도 함께 보내요~ “

치자꽃의 꽃말을 찾아봤다. 한 없는 즐거움, 청결, 순결. 정말 한 없는 즐거움을 주는 꽃이다.

이런 꽃을 오천원에 모셔 오다니!  그 생각을 하니 더욱 즐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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