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구조·미학의 완결판, 모더니즘 건축의 살아있는 교과서
뉴스에서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부동산 투자회사(이지스 자산운용)가 남산 지킴이 밀레니엄 힐튼 호텔을 어마어마한 가격에 샀고,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멀쩡한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 비까 번쩍한 오피스 빌딩을 올릴 계획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힐튼 호텔은 원로 건축가 김종성 선생이 공들여 디자인하고 지은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입니다. 자본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자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무조건 철거해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보존을 통해 더욱 시너지를 올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요? 전통 건축은 전통건축 대로 기준이 있어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도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조하고 있지요. 그런데 지은 지 40년 전후의 현대 건축물은 이도 저도 아니어서 보존의 명분을 못 찾고 있습니다. 모 아니면 도. 건축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힐튼 호텔은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한 건축가의 작품인 동시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초석을 닦은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습니다. 무조건 부수고, 개발하기에 앞서 이 건축물이 우리 건축사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서울이라는 도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어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맥락이 있고 품격이 있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남산 지킴이 도시의 역사성을 대변하는 것은 건축물이다. 서울 도심에 들어선 고층 빌딩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대한민국의 발전사, 그 자체다. 고도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1980년을 전후로 서울의 도심은 타워크레인으로 숲을 이뤘다. 아직 시공 기술이 일천한 까닭에 외국회사에 설계를 맡겨야 안심이 되던 시절 든든한 원군들이 속속 도착했다. 가난한 시대에 고국을 떠나 세계적 수준의 기량을 갈고닦은 귀환 건축가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건축가 김종성이다.
1935년 생인 김종성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재학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에서 모더니즘 건축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지도를 받으며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학부 졸업 후인 1962년 미스 사무실에 입사해 12년간 일했고 1966년엔 IIT 건축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72년 부학장, 1978년 학장 서리를 역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경기고 후배인 대우 시카고 지사장의 연락을 받는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서울에 특급호텔을 지으려 하는데 설계를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면서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건축가가 된 김종성은 서울 힐튼호텔 설계를 계기로 1978년 9월 귀국을 결심했다. 서울 건축을 설립하고 대우건설과 협업으로 육군사관학교 도서관(1982),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1986),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1991), 서울역사박물관(1997), 아트선재센터(1998), SK사옥(1999)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현대자동차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 설계 책임 건축가 자리를 끝으로 국내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집필활동에 전념하던 그가 요즘 틈이 날 때마다 한국을 찾고 있다. 남산 기슭에 40년 가까이 자리 잡고 있던 힐튼 호텔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021년 여름 매각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철거 후 재건축'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기됐을 때 미국으로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철거를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했을 뿐 전면에 나설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투자자로 들어가는 등 흘러가는 모양새는 87세 노인이 장거리 비행을 감내하고 한국을 찾게 만들고 있었다.
1983년 11월 문을 연 힐튼호텔은 1999년 외환위기로 싱가포르 기반의 호텔 운영사 CDL호텔코리아에 소유권을 넘겨줬다. CDL코리아는 부동산펀드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지난해 밀레니엄 힐튼을 약 1조 1000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지스 운용은 오는 12월 말까지만 힐튼호텔을 운영한 뒤 5성급 호텔, 소매시설, 오피스 등을 갖춘 복합시설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어떻게든 힐튼이 철거되는 일은 막고 싶어 여러 사람을 만나 호소하고 있다”는 건축가 김종성을 19일 서울 힐튼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힐튼의 건축적 가치를 재조명해 보기 위해서였다. 현대 건축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적 유전자를 답습하며 20세기 한국 건축계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원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건축가에게 가장 자부심을 갖는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로비 공간에서 만나는 풍요로움입니다. 원래 부지는 북쪽(퇴계로 쪽)에서 진입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소월길 쪽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동쪽에서 진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지요. 남산 자락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사진 지형에 지어야 했지만 소월길 끝에서부터 확 트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한 공간입니다. ”
지하 2층부터 2층까지 높이 18m, 메인 로비 정면 입구에서 서쪽 끝까지 64m로 시원하게 뚫린 아트리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힐튼호텔은 남산 소월길 자락에 동쪽을 향해 앉아있다. 동쪽 입구를 통해 메인 로비로 들어오면 서쪽 끝까지 확 트인 공간이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펼쳐진다. 2층의 유리 파빌리온부터 지하 1층까지 모두 자연광이 들어오는 덕분에 시야가 넓고 안정감과 공간감이 느껴진다.
김종성 선생은 “사람들이 건물 안에 들어섰을 때 감동이 솟구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서 “이곳이 비단 호텔이라서 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즐길 수 있는 퍼블릭 공간으로서 기능하도록 건축적 장치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아하고 세련되며 기능적으로도 완벽한 최고의 공간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그는 네트워크와 정보를 총동원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재를 구해다 썼다. 로마 건축물 재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리석(로만 트래버틴)을 바닥에 깔았고, 알프스에서 채석한 녹색 대리석 베르데 아첼리오를 벽에 사용했다. 대리석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대표작인 뉴욕 시그램 빌딩(1958년)에 대리석을 납품한 회사에서 구했다. 그런데 인테리어 보수 공사를 하면서 로비 쪽 벽면에 철제 프레임을 설치하는 바람에 지금은 대리석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재 벽면은 미국 캔터키 참나무를 1.5㎜ 두께로 돌려 깎은 것을 사용했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 나무 벽에 흠집이 생길 경우 외피를 잘 갈아서 칠로 마무리하면 감쪽같아서 오랜 세월을 두고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공간감과 장중함을 더해주는 기둥은 브론즈로 마감했다. 고려아연의 동판을 장인의 도움으로 특수 화학 처리해 시간성이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효과를 냈다. 로비에서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아래에 설치된 대리석 분수도 김종성 건축가의 디자인이다. 직경 5m의 로쏘 레반토 대리석 원반에서 물이 네 갈래로 떨어져 다시 직경 1.5m의 작은 원반 4개로 물이 흘러내리게 하면서 탁 트인 공간에 청각적 풍요로움을 더한다. 호텔 인테리어는 미스 사무실에서 토론토 도미니언 뱅크(1968) 작업을 할 때 알게 된 존 그레이엄이 맡았다. 재료도, 기술도, 정성도 지금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내부의 우아함이 전해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을 외부에서 느낄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심플함이 이 건축물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힐튼호텔은 알루미늄 커튼월 방식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대형 건물이다.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미국 대도시의 고층빌빙 건설에서 1950년대부터 유행했고 국제 양식으로 각국에 널리 퍼졌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그걸 실현할 만한 기회도, 기술력도 없었다. 힐튼의 알루미늄 커튼월은 시그램 빌딩의 브론즈 커튼월을 설계·제작·시공한 플라워 시티가 디자인하고 국내의 효성 알루미늄이 압출과 제작을 맡았다.
창문의 알루미늄 틀을 만들어 건물에 표정을 주었고, 객실의 아래쪽 창문은 안으로 열도록 만들어 창을 열었을 때 튀어나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단순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모더니즘 건축의 맛은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와 감각에서 빚어진 결과다. 신의 한 수는 또 있다. 힐튼호텔 건물은 옆으로 펼쳐진 건물의 양쪽 모서리가 120도 각도로 꺾여 있다.
“표준 객실 640개의 특급 호텔을 남산에 지으려고 보니 고도제한 때문에 옆으로 길게 늘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냥 ‘한 일’ 자로 하려니 너무 심심해서 양쪽을 120도로 꺾었습니다. 객실이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꺾어서 마치 남산과 마주 보며 대화하는 모양을 만들었더니 모두들 좋아했어요. 힐튼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요.”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김종성 건축가는 “작업 당시 함께 일했던 사람들, 재료를 구해주던 파트너들의 얼굴과 웃음, 땀방울이 기억난다”면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들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힐튼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한국은 국제 수준에 맞게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없다”고 답했다.
“생각했던 것의 95% 이상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완성도가 높게 설계되고, 시공을 잘한 건물이에요. 그래서 더욱더 철거를 막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부동산 투자로 이익을 올리지 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어질 때에 용적률이 600% 였는데 350%만 사용했고, 현재 용적률이 800%로 늘어난 만큼 개발의 여지는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어요. 헐지 않고도 충분히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만약에 힐튼을 살리면서 리모델링 마스터플랜을 세운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동그란 안경 뒤의 눈에서 빛이 나는 듯했다.
“어차피 서울 성곽 때문에 남산 쪽으로는 현재의 호텔 높이를 넘어설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폭이 6m밖에 안되니 기존 건물의 폭을 뒤로 뒤로 2배 늘리고, 그 뒤로 각기 용도가 다른 건물들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가능성은 무한대입니다. ”
남산 기슭에 40년 가까이 자리 잡고 있던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신 거장의 마스터피스가 인텔리전트 한 빌딩들을 뒤에 거느리고 듬직하게 남산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성이 있는 도시 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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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건축물도, 근대 건축물도 아니라고 해서 보호받아야 할 건축물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100년 후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한국 1세대 현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 공간사옥 건물(현 아라리오 미술관)이 2013년 경매에 나왔을 때 많은 건축인과 예술인들이 건물의 보존을 위해 힘썼고, 그 결과 50년이 안된 건물이지만 건축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됐습니다. 미국의 경우 문화재라는 등급은 없지만 시그램 빌딩의 경우 뉴욕시에서 레지스터드 랜드마크(Registered Landmark)로 지정해 소유주가 바뀌어도 큰 틀은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인용하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