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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Nov 20. 2022

프랑스 22 파리 오르세의 ‘뭉크’ 전

죽음의 공포, 고독에서 피어난  예술

파리의 많은 미술관 박물관 중 파리에 올 때면 반드시 한 번은 들르는 곳이 오르세 미술관이다. 기차 역사를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의 2월 혁명이 있었던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의 회화와 조각, 공예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그 앞의 유물과 작품은 루브르 , 그 후의 작품은 퐁피두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 이 3곳만 보면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은 대부분 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선 두 차례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파리에 비교족 오래 머물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지난번에 너무 늦은 시간에 와서 잘 보지 못했던 에드바르드 뭉크 전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또한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여류 화가 로사 보뇌르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를 이용해 봤다. (하루 티켓은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루이뷔통 재단에서 나와 잠시 개선문에 안부를 전하느라 샹젤리제에 내렸다. 길 건너편에서 마침 오르세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휴일에도 운행 중이었다. 감사한 일. 오르세는 지하철 솔페리노, RER C 선 오르세, 혹은 튈러리 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어느 경우든 좀 걸어야 한다. 버스는 종점이고, 코너만 돌면 되니  최적인 셈이다. 미술관 앞은 역시나 긴 줄이 끝없지만 박물관협회 카드 ICOM 덕분에 바로 입장했다. 감사한 순간들.

뭉크 전은 오르세 미술관이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과 협력해서 개최하는 전시다. '절규' 너무나 유명한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1863~ 1944) 다양한 작업을   있는 귀한 전시여서 프랑스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회화 외에 드로잉, 판화  100 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번 왔을 때보다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작품 감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걸작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시장을 알려주는 입간판을 보니 뭉크 전에는 ', 사랑, 그리고 죽음의 '라고 표제가 달려있다.  포스터에 있는 작품은 뭉크의 '뱀파이어'. 사랑을 하면 이토록 피를 빨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인가? 겁이 많은 사람은 감히 사랑을  엄두를   것만 같다.

이번 전시는 뭉크의 작품 세계 전반을 통해 그가  이런 주제에 몰입하게 됐는지, 같은 주제를 놓고도 어떻게 독창적이고 새로운 표현을 고민했는지 회화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기획되어 있다.

전시회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뭉크의 자화상이다. 담배를  젊은 뭉크의 모습은 상징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한 그림이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학문분야에서 벌어진 새로운 변화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주제와 기법을 탐구했던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생애 내내 동일한 주제를 계속 순환하며 변형을 두면서 작품을 그렸다. 순환의 개념은 뭉크의 사상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인간과 자연 모두가 삶과 죽음, 재생의 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뭉크는 프리드리히 니체와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에 영감을 받았고 이를 도상학으로 연결하려 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 배경에 등장하는 다리는 아마도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상징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리 위의 소녀들을 그린 작품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데  의미를 이번에 어렴풋이 느낄  있었다. 얼굴을   없는 소녀들은 각자 다은 운명을 지니고 있으며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아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다. 

작품마다 여러가지 버전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됐다. 전시에는 가족의 죽음, 다리 위의 사람들, 키스, 뱀파이어 등응 다른 시기에, 다른 스타일로 그린 것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그는 평생의 작업을 특정 주제 매달렸다. 자화상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자신을 놓고 분석하며  표현하는 화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았다. 가슴 뭉클하다.

뭉크는 외로움과 슬픔, 죽음을 주로 다뤘다. 그의 아버지가 의사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 특히 어린 환자들과 부모의 고통을 익숙하게 봐왔다. 어린 환자를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담긴 작품은 참 애절하다.  실제로 그의 누이도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나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여러 차례 다른 방식으로, 더 불안하고 더 우울하게 표현되곤 한다.     

뭉크의 작품에는 사랑의 감정이 자주 표현되고 있다.  남녀의 얼굴이 뭉개져 합쳐지는 '키스', 여인에게 피를 빨리는'뱀파이어' 사랑의 정열이나 달콤함이 느껴지기보다 고통스러운 사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남녀의 사랑에 대해, 질투에 대해, 소유욕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은 왜였을까. 사랑의 감정은 인간의 기본적 감정이고, 사랑에 대한 욕심도 결국은 근본적 외로움과 통하지 않을까.

 유명한 작품 '절규' 없었지만  작품의  번째 버전인 석판화를   있다.  배경이  다리가 그려진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는데 어딘지 부유하는 고독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렘브란트의 자화상만큼이나 뭉크의 자화상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뭉크의 자화상부터 어딘가 외출하려는지, 외출에서 돌아오는 건지 모르지만 삶에 지친 자화상이 있고, 불타는듯한 표정의 자화상도 인상적이다.  머리가 다 빠지고 마치 해골만 남은 것 같은 얼굴이지만 벽의 그림자는 조용히 성찰하는 그 자화상이 가장 나중의 작품이다.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78년이 지났다. 우리는 지금 그의 작품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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