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Nov 22. 2022

프랑스 22 가을 : 퐁피두센터, 제라르 가루스트 전

불안과 광기의 연극 같은 세상

퐁피두센터는 이번 가을 시즌 메인 전시로 제라르 가루스트 Gerard Garouste의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했다. 현대 프랑스 주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하는데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루스트라는 성을 기억하는데 무척 오래 걸렸다. 퐁피두센터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전시장이 어딘지 물어보면서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포스터의 작품( 피노키오와 주사위 게임, 2017)처럼 코를 죽 뽑아 보이면서 "이 그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안내원은  금방 알아듣고는 "아 하하! 그거 참 좋은 표현법이네요. 제라르 가루스트 전은 저쪽으로 가면 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아무튼 파리 여행 초반에 퐁피두센터에  갔을 때 시간이 없어서 앨리스 닐 전시만 보고 왔고, 제라르 가루스트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로 퐁피두센터를 다시 찾았다. 어느 월요일이었다. (참고로 월요일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대부분 휴일이지만 퐁피두센터는 월요일에 정상 운영한다. )

1948 생인 제라르 가루스트는 '불안' '광기' 주제로 매우 독창적인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는 120 점의 회화 작업과 설치, 조각을   있다. 시대와 예술사조, 흐름을 초월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데 매우 강렬하고, 때로는 왜곡된 신체가 매우 그로테스크하여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이람에게는 불쾌감과 불안감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을  같았다. 그러나 현대미술 감상은 일단 마음을 열고 시작하는 것이라 믿는 , 그런 일은 없었고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을 들여다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적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파격’이다. 1960년대  파리 에콜  보자르에 재학  마르셀 뒤샹과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사학자인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 '마르셀 뒤샹'이란 제목으로 단행본도 나와있다) 읽고 나서  충격을 받고 회화의 고정된 영역을 벗어나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푸생,  그레코, 틴토레토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거장들의 작품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작풍을 연구하면서  위에 자신이 만든 신화(허구적 스토리) 덧입히는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결과는? 어디서  듯한 작품이지만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기존의 걸작들을 뒤틀고 자신이 창조한 상황을 덧대어 매우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수많은 역사적 작품과 인물들을 인상적으로 재해석해 낸다. 구상작품이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강렬하다. 드라마틱한 설정으로 마치 작품  인물들이 다시 연극 무대에 올려진  같다.  

포스터에 실린 피노키오의 경우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데, 피노키오는 '진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 자신이 피노키오가 되어 성경 속에 나타나는 '노아의 방주'가 높은 풍랑에 흔들리는 상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심은 의심에 그칠 뿐임을 보여준다. 또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그에게 특히 강력한 영감을 준 고전이다. '신곡'에 등장하는 연옥과 지옥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해석해 대형 캔버스를 채웠다. 문학적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고 밑바닥에 깔린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강렬한 그림들이다. 2000년대 들어 가루스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주제로 다뤘다.  

거대한 천막 설치 작업도 인상적이었다. '성경의 신탁'(Oracle of the Holy Bible, 1998)이란 제목으로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리고 텐트 모양으로 설치한 것이다. 관람객은 만화경을 통해서만 이미지를 접할 수 있는데 그 이미지란 것도 상상 속의 상황이어서 들여다 볼수록 '허,참!'이었다.  

그에게 작품의 주제는 다만 주제일 뿐 관람자에게 주제를 통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성찰을 자극한다. 당나귀 엉덩이에 사람 얼굴이 달려있거나 거꾸로 선 여자의 나체 등 왜곡된 인체 형태와 강렬한 색상이 자주 등장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매우 몽환적이어서 상상력을 자극한다.

신화와 성경, 고전 문학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있는 작품들이라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대형 캔버스를 채운 작가의 엄청난 작업량과 무한한 상상력과 지식, 드라마같은 화면 구성력과 강렬한 색채의 사용은 탄복할만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떻다고   없는 부류의 화가인데 예술 작품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고 하면 과장일까? 머릿속에 잠재해 있는 고정관념, 심지어 사람들이 진리라 믿는  마저 뒤집고 의구심을 제기하는 한마디로 '독창적인' 예술가인 것만은 틀림없다.  전시는 2023 12일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22 파리 오르세의 ‘뭉크’ 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