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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May 30. 2023

건축탐구] 고속도로 옆 삼각형카페

무균질의 백색 공간 경기도 여주 ‘카페 바하리야’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이름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한다. 요즘은 아예 카페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클 것이다. 브랜드 카페보다는 산업시설을 개조한 빈티지한 카페부터 을지로 뒷골목의 고풍스러운 가배전문점, 서울숲 근처의 힙한 카페 등이 커피 향 넘치는 공간의 매력과 함께 발길을 모은다. 최근 카페를 위해 디자인된 카페 건축이 많아지면서 건축의 한 장르로서 '카페건축'이 자리를 잡을 정도이다. 벌써 거의 한 해가 지났는데 경기도 이천의 '논스페이스'도 그중 하나이고, 아직 가보진 못했지만 민현준 교수가 음악 마니아인 건축주를 위해 설계한 '콘치노 콘크리트'도 카페건축의 대표 작품이라고 꼽을만하다.  최근 지어진 카페건축 중에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는 여주의 '카페 바하리야'를 찾았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가다 여주 인근을 지날 때면 고속도로 변으로 대형 물류창고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류회사, 등산용품 전문회사, 물류회사 등 익히 보아온 상표를 단 물류창고들 사이로 떠 있는 흰 벽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런 표시도 없어서 더 눈에 띄는 흰 벽은 고속도로와 평행선으로 달리기 시합을 하는 듯하다. 도대체 뭐 하는 곳일까?

공중에 떠 있는 흰색 가로 벽이 전부인 이곳은 ‘카페 바하리야’다. 이런 데서 카페를 하면 누가 찾아올까 싶지만 괜한 걱정이다. ‘여주의 독특한 카페’로 인스타그램에서 이름난 곳이다.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너무 황당했어요. 이런 땅을 왜 사셨을까 궁금했죠. 자동차는 쌩쌩 달리고 물류창고와 그곳을 드나드는 거대한 트레일러 말고는 주변의 맥락에서 건축적 모티브를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  

고속도로변에 자리 잡은 ‘카페 바하리야’를 설계한 민워크샵 건축사사무소 민우식 소장은 “너무 삭막해서 상업공간이 들어서기엔 적절치 않은 입지라는 것이 첫인상이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변이라 진입도 불편하고 주변에는 기능에 충실하게 지어진 무뚝뚝한 물류창고뿐이다. 길도 잘 닦이지 않아 울툴불퉁하며, 건초 덤불이 있는 노지에 옆으로는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는 데다 부지는 꼬리가 달린 삼각형 모양이었다. 꼬리 부분에 건축주의 주택을, 삼각형 땅에는 카페를 짓고 싶다는 건축주도 ‘이런 땅에 지어도 되는지’ 의구심을 표할 정도로 부지의 조건은 좋지 않았다.

민 소장은 “첫인상에 부지가 너무 삭막했지만 어려운 것을 풀어내야 하는 것에서 오히려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고속도로라는 메인 콘텍스트와 부지의 형태에서 디자인 구상은 순식간에 끝났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이 대지를 지나가는데 불과 2,3초밖에 안 걸리는데 어떻게 하면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지하게 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사물을 인지하는 순서는 색깔, 형태, 재료의 순인데 색깔로 포인트를 주려면 너무 과감해야 하고, 어떤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말지요. 고속도로에서 볼 때 대지의 길이에 아무 표시도 없는 흰색 덩어리를 띄워놓는 것이 눈길을 잡아끄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건축주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떠있는 벽을 가진 삼각형의 공간’인 카페의 디자인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금세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됐다.

민 소장은 1층을 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땅에서 들어 올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눈높이와 건물의 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대지의 모양을 따라 한 변이 30m인 정삼각형의 매스를 배치하고, 고속도로 변과 평행한 대지의 가장 긴 변에 길이 50m, 높이 4m의 하얀 떠 있는 벽을 만들었다. 고속도로 쪽에서 보면 물류창고와는 대조적으로 아무런 사인도 없는 흰색의 가로로 긴 벽이 공중에 떠 있는데 그 안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니멀 디자인으로 유명한 ‘무지(MUJI)’처럼 디자인 없는 디자인은 이 장소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필로티 구조의 1층에 주차를 하고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20m 길이의 매달린 경사로를 만난다. 계단과 경사로가 만들어 내는 지그재그의 기하학적인 산책로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백색이 주조를 이루며 마치 무균질의 공간에 온 것 같다. 온길을 돌아보면 경사로도, 난간도, 벽도 모두가 백색 톤이다.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은 채 자연석만 몇 덩어리 무심한 듯이 놓여있는 하얀 모래로 된 정원과 차분하게 하늘이 반사되는 수(水) 공간을 배경으로 카페 건물이 서 있다. 가볍고 경쾌한 철제 T 바를 기둥으로 삼고 나머지를 유리로 처리한 건물은 투명성을 극대화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삼각형의 한 변인데 처음 간 사람은 입구를 찾기가 힘들다. 민소장은 “삼각형의 단순한 형태여서 입구를 일부러 세 군데로 분산해 이용객들의 내부 동선을 자유롭게 하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삼각형의 공간에 들어가면 가운데에 서비스 공간과 화장실이 있고 각 변에 테이블이 놓여 있다. 한쪽은 아주 정적인 모래정원과 연못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쪽은 속도감이 있는 고속도로를 향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천장에 일직선으로 뚫린 공간에서 나무벽을 타고 자연광이 바닥에 일자로 떨어지도록 만든 ‘빛의 복도’다. 비어있는 삼각형 안에 고요함과 속도, 그리고 빛이 공존하는 셈이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모래 정원과 연못을 바라보는 쪽이다. 그다음이 고속도로 풍경을 바라보는 쪽이다. 제일 마지막으로 자리를 찾는 곳이 ‘빛의 복도’인데 실상은 민 소장이 가장 공들여 디자인을 한 공간이다.

민 소장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의 밝기와 선의 굵기가 달라지게 만들었는데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런 것을 감지할 사람들은 없고, 짧은 시간 동안 머물면서 사진을 찍는데 집중하다 떠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빛의 복도 말고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내부 공간을 들여다보면 많은 디테일들이 숨어있다. 단순한 삼각형의 내부에 화장실의 모양은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약간 비뚤어진 사각형이다. 민 소장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하늘을 한번 꼭 보세요.'라고 했다. 파란 하늘이 담긴 삼각형 천창이 보인다. 삼각형 건물의 정체성을 화장실 천장에 그려 놓은 셈이다.

이전에 민 소장이 주택과 공장 설계를 하면서 인연을 맺는 건축주의 오빠는 벽돌공장 사장이다. 덕분에 이 건물에선 벽돌들의 다양한 변주를 볼 수 있다. 내부 벽면의 벽돌은 밝은 베이지색이다. 한 쪽면은 일반 시멘트 벽돌을 사용하고, 바닥에도 같은 벽돌을 깔았고 주방창고 뒤쪽의 벽면은 흡음 벽돌을 사용해 소리가 울리는 것을 최소화했다. 벽돌의 변화를 통해 단순한 내부의 벽면에 은은한 리듬감을 주었다.

이곳의 가구는 모두 백색톤이다. 건축주가 '무조건 백색'을 원했기도 했는데 민 소장의 취향이나 스타일과 맞았다. 독특한 원형 테이블을 민 소장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민소장이 공간을 풀어내는 방식이 매우 짜임새 있으면서 작가주의 성향이 엿보이는 것은 그의 교육이력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민 소장은 미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와 귀국한 뒤 디자인회사에서 7년 정도 일하다 30대 초반에 다시 유학을 떠나 건축을 공부했다. 처음부터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던 것은 가족 중에 건축가들이 많아서 다른 것(순수회화)을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부친은 한국 인테리어 산업의 개척자로 꼽히는 건축가 민영백(민설계 회장)이고, 정치인으로 더 알려진 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그의 이모다. 종국에 가서 건축을 선택하게 된 것은 ‘물보다 진한 피’ 때문이겠다.

”언젠가는 건축을 하게 되리라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는 그는 “이왕에 늦게 공부하러 가는 것인데 남들과는 좀 다르게, 하지만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하고 학교를 물색한 끝에 창의성을 우선하면서도 ‘메이커’의 정신을 배양하도록 독려하는 학풍이 마음에 들어 크랜브룩 예술대학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크랜브룩 예술 대학 건축과에서 공부했다. 크랜브룩 예술대학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 (1873~1950)이 설립했고 그의 아들 에로 사리넨을 비롯해 찰스 임스, 에드먼드 베이컨 같은 저명한 건축가, 디자이너와 도시계획 전문가 등을 배출한 곳이다.

카페 바하리야의 장소적 특징은 고속도로변이라는 것인데 이런 핸디캡이 더 이상 핸디캡이 아닌 것은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시 외곽의 대형 카페’가 공간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유명 카페는 SNS, 특히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장소로 인기를 끈다. 이왕에 나선 길이니 거리가 먼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장소가 독특할수록 매력점수를 높게 받는다. 이런 한국형 카페문화는 ‘카페 건축’이라는 건축 장르를 만들었고 근래에 정점을 찍고 있다.

밖으로 다시 나가 마당에 섰다. 고속도로 쪽으로 난 벽에는 풍압을 지지하면서 천막을 걸 수 있는 로드 바와 야외 기둥 같은 장식이 보인다. 대담하고 단순한 구조와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장식이자 구조라는 설명이다. 아무런 식재가 없는 사막풍의 조경은 대담하고 단순한 건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의 료안지 사찰의 모래정원도 떠오른다. 민 소장은 “일본의 사찰 조경을 본딴 것은 아니고 건축주의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인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이곳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카페이름인 바하리야는 돌이 흩뿌려진 이집트의 사막이라고 한다. 일본이든, 이집트든 관계없이 사람들은 고속도로 변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바하리야를 찾는다. 일상의 탈출을 위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위의  본문은 서울신문에 연재 중인 '건축 오디세이' 위해 작성한 것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진은  워크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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