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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03. 2023

인공지능이 쓴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 챗GPT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입니다. 당연히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고 판매도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예스 24의 올해 1~5월 베스트셀러 집계 결과를 보니 대중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상반기 동안 ‘챗GPT’ 키워드에 대해 월평균 24종의 도서가 출간됐고, 4월에만 55종이 출간됐습니다. 주로 분석과 전망, 활용방법 등을 다룬 것이 많은데 챗GPT 관련 실용서 ‘진짜 챗GPT 활용법’이 3월 중순 출간 이후 8주간 IT 모바일 분야 1위를 달성하며 호응을 얻었답니다. 

관심을 끈 책은 챗GPT가 직접 출간에 참여한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스노폭스 출간)이라는 책입니다. 기획자의 말마따나 AI가 쓴 원고와 실제 저자가 쓴 원고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전문성이 있는 저자보다 더 전문성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정보를 취합해 쓴 글로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지, 번역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등이 궁금했습니다.

지은이는 챗GPT이고 번역은 AI 파파고가 했으며 일러스트는 셔터스톡 AI가 맡았으니 로봇 팀이 만든 책입니다.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계발서인 책의 내용은 어딘가에서 읽은, 혹은 인터넷상에서 떠돌아다니는 내용들을 짜깁기해 놓은 것 같은 인상이 강했습니다. 딱딱하고 지루해서 내용이 가슴에 와닿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책을 보면서 특히 눈에 거슬렸던 점은 오자와 중복단어, 그리고 비문도 상당히 많았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요약하자면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은 의미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며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변화에 적응하고 지지를 구하고 여정을 포용해야 하는 역동적이고 진화한다.’(p88)

‘목적지보다는 과정 집중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개발하고 자발성과 구조의 균형을 맞추면 우리는 더 완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p157)

미쿡사람이 말하는 것을 옮겨 적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문단에서 ‘~입니다.’와 ~‘이다’가 동시에 나오는 것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번역기를 돌리면 이런 식으로 되는데 학생들의 과제물을 보다가 이런 것 나오면 당장에 감점입니다. 출판사는 인쇄를 제외하고 청 38시간, 2명의 작업자가 투입됐고 인쇄와 공정을 거쳐 독자에게 첫 판매가 이뤄지기까지 단 7일이 걸렸다는 점을 밝히고 있지만 이건 핑계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무리 급하게 책을 만들어도 비문, 오자, 겹쳐 나오는 단어 등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험도 중요하지만 책을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것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AI가 쓴 단행본은 처음이 아닙니다. 2008년 러시아에서 AI에 기반한 단행본 소설 ‘True Love’가 나왔고, 2016년 일본에서 AI 소설(단편)이 문학상 예심을 통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2017년 중국에서는 AI가 쓴 시집이 출간됐고 2018년 미국에서 AI소설 ‘1 the Road’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실제 소설가의 감독으로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파람북)가 출간돼 화제가 됐습니다. AI작가 비람풍이 썼고 ‘소설감독’은 중견작가 김태연 씨였습니다. 김 감독이 만든 뼈대에 따라 비람풍이 집필한 것인데 어쨌거나 AI가 원고지 18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썼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김 감독은 연세대 공대 출신으로 장편소설 ‘폐쇄병동’, ‘그림 같은 시절’, ‘반인간’, ‘풍류왕 김가기’,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외에 수학소설 ‘이것이다’, ‘이로써 영원히 계속되리’도 썼을 만큼 수학에 정통합니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아직 챗GPT가 대중적 관심을 받기 전이었고, 수학에 오리엔트 된 까닭에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나온다면 독자의 반응은 좀 더 뜨겁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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