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저 / 문학사상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비롯해 장편소설과 에세이, 여행서, 번역서 등 많은 저서를 발표한 세계적인 작가다. 그가 하루 3~4시간의 글쓰기 외에도 달리기와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기를 축으로 문학과 인생에 대한 하루키의 회고록이다.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뒤 그는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 처음부터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 나름의 문장으로 써보자”고 결심하고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2006년 마무리했다고 머리말(2007년 8월)에서 적고 있다. 건조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감정을 건드리는 세련된 은유 때문에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데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향, 취향, 글쓰기와 달리기에 대해 아주 진솔하게 적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다른 에세이집 ‘먼 북소리’보다도 공감이 가고, 마음에 와닿는 대목이 많았다.
하루키는 1982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른세 살, 예수가 세상을 떠난 나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凋落이 시작될 즈음의 나이에 그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다(‘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낼 2007년 기준으로 23년째인데 그가 아직 달리기 습관을 유지한다면 올해까지 38년째 달리는 셈이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장·단거리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하면서.. 그에게 달리기는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꾸준히 달리는 것으로 그의 신체와 정신이 좋은 방향으로 강화되고 형성되어 왔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루키에 따르면 그 자신은 달리기와 글쓰기가 딱 맞는 성격이다. 즉 그는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몇 시간씩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1,2시간을 달리고 4,5시간을 묵묵히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을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해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 혼차 책을 읽거나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쪽을 좋아했다’고 한다. 내가 특히 공감하는 부분( 비슷하다고 여긴 부분)은 ‘일상생활에 있어서나 직업적인 영역에서 타인과 우열을 겨루고 승패를 다투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라는 대목이다. 나와 남의 가치관과 세계가 다르고,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해를 받거나 비난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솔직하게 이런 ‘고슴도치 같은’ 사고방식이 양날의 검과 같아서 내벽에 끊임없이 상처를 내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럴 때 그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엔 극한으로 몰아감으로써 ,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다”고 한다. 분하면 분한 정도만큼 긴 거리를 달린다.
그가 달리는 이유가 몸을 지치게 만들어서 쓰러지면 고통이 잊어지기 때문이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으나 그 이상의 경지에 달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극한으로 몰아 달리면서 그는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고 했다. 그것은 스스로의 육체를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까지. 비유하자면 그에게 달리기는 ‘도랑 치고 가재 잡고’에 해당하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기 자신에게 분풀이하고,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 왔다’니! 그래서 그는 뭐가 어찌 됐든, 그저 한결같이 달리고 있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글쓰기 루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달리기에 대한 그의 생각과 자세를 글로 접하면서 나의 글쓰기에 대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뭐가 어찌됐든, 그저 한결같이 쓰고 있다. 소박하고 아담하고 정겨운 침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