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문했던 지인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 어싱’이란 제목의 책을 봤다. 어싱? 한글로 적어놓으니 무슨 말인지 퍼뜩 안 와닿았는데 좀 더 자세히 보니 영어로 earthing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음상 '어씽'이 맞지만 한글로 적으면 '어싱'. 이상하긴하지만 표기법대로 하자니 ‘어싱'이 되었나 보다.
'어싱'이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인체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연결하는 것이다. 한자로 하면 접지, 우리말로 하면 맨발 걷기다.
요즘 ‘어싱’이 꽤 유행인 모양이다. 여기저기 맨발 걷기 길을 찾아다니며 걷는 '어싱족'도 있고 그런 흐름을 반영해 지자체에선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해 홍보를 하고 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도 어싱길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들었다.
유난히 길었던 이번 추석 연휴기간에 내가 바닷가에 가 있다고 하니 “ 해변 어싱이 제일 좋단다. 많이 걸어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바닷물도 따뜻해서 아침저녁으로 맨발로 해변을 걸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좋다고 하니까 더 좋게 느껴져서인지, 실제 효과가 있는 건지 밤에 잠도 푹 잤다. (바닷물이 전보다 확실히 따뜻해져서 11월 하순에도 해변에서 맨발걷기를 했다.)
자연치유 저술가 마틴 주커는 2010년 펴낸 책 ' 어싱: 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이게 지인의 서재에 있었던 그 책인 것 같다)에서 땅을 맨발로 밟을 때 몸속으로 흘러드는 자유전자가 염증과 만성질환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중화한다고 했다. 맨발로 땅을 밟고 걸음으로써 땅속의 음전하를 띄는 자유전자와 (인체의) 양전하와 결합해 중화시켜 주면서 염증요인을 몸 밖으로 배출되게 한다는 것이다. 몸속으로 들어온 자유전자가 적혈구 표면의 전하를 올리게 되면서 혈액의 점성이 낮아지고 혈류는 속도가 높아져 심혈관 질환 등에 특히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접지'하는 것 만으로 만성통증, 스트레스, 염증을 치료해 각종 질병이나 노화 등을 개선할 수 있다니 한마디로 '기적의 어싱'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어싱예찬 일색이다. 어싱은 심혈관계 환자에게 특히 좋고 가장 효능이 잘 나타나는 건 수면이다. 혈액순환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서 자율신경체계가 균형을 찾기 때문에 불면증이 개선되는 효과를 낸다. 척추의 코어근육처럼 발에도 안정감을 주는 작은 근육들을 사용하게 되면서 자세 교정에도 좋다고 한다.
(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맨발로 걸을 때는 돌이나 유리조각에 베이지 않도록 시선을 항상 1m 앞으로 두고 시야를 확보해 부상에 유의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아 두는 것도 좋고,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충분한 준비운동도 필수다. 또 사람마다 발 모양이 다양해 섣불리 맨발로 걷는 건 위험하다. 고령층은 발바닥 지방층이 얇아진 상태여서 자극을 가하면 족저신경이 눌리면서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당뇨병 환자의 경우 발의 감각이 둔해져 있는 상태라 쉽게 상처를 입고 세균이 침범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발 한쪽에 26개의 뼈와 33개의 관절, 100개가 넘는 인대와 근육, 무수히 많은 신경이 근육을 이루고 있다.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피곤할 때 발 마사지를 받아보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압하는 데나 한방에 가면 걸려있는 인체 그림에 발바닥의 혈이 몸의 장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맨발 걷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나쁠 것이 없다. 땅에 맨발을 딛고 지구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것이다. 우주의 기운을 직접 받으니 좋을 수밖에.
(데크 길이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어싱이라고 할 수 없을 듯 하다.)
집에서 바로 갈 수 있는 매봉산에 황톳길 맨발 걷기를 하도록 해 놓아서 가끔 걷기도 하는데 오늘은 좀 더 용기를 내어 산 길을 걸어봤다. 평소 걷는 코스대로 걷고 돌아오는 길에 등산화를 벗고 양발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야자수 줄기 가마니를 깔아 놓은 곳이 많아서 의외로 걸을 만했다. 아직 땅이 차지 않고 날씨도 좋아서 맨발로 걸으니 기분이 퍽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발바닥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걷느라 남의 눈치를 볼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걷기 모임을 하는 것 같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 오기에 옆으로 서서 길을 비켜서있는데 그 중 한분이 나를 보고는 부러운 듯 “맨발의 청춘이네.” 하신다.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노화를 개선한다는 '어싱 효과'가 벌써 나타난걸까? 기적까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기회가 닿는대로 지구와 접촉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