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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15. 2023

[영화 리뷰]소레카라 ( 그 후)

감독 모리타 요시미츠 /출연 마츠다 유사쿠, 후지타니 미와코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면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생각을 풍부하게 만드는 영화’, ‘여운이 남는 영화’라고 한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각적인 매체인 영화의 경우 어떤 장면이 깊이 뇌리에 남아 자꾸 생각난다면 그것도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아트시네마의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 회고전에서 본 ‘소레카라 (それから, 그 후)’ 가 그런 영화였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 1. 11~ 1916. 1. 9) 원작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1985년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로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이다.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세키의 소설 '소레카라'는 1909년 6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도쿄 아사히신문과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연재됐고, 1910년 1월 순요도서점(春陽堂書店)에서 책으로 묶어냈다.

분명히 총천연색 영화였는데 왜 인지 느리고, 가라앉은 , 그리고 서정적인 흑백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모리타 요시미츠(森田 芳光, 1950년 1월 25일 ~ 2011년 12월 20일) 감독이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를 그만큼 잘 살린 결과일 것이다.

남자 주인공 마츠다 유사쿠(松田 優作, 1949. 9. 21~1989. 11. 6)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 배우 중 한 명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액션 영화와 다양한 TV 시리즈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지만 방광암으로 불행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 북한계 재일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그의 본명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지은 김우작(金優作)이다. 그의 마지막 출연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Ridley Scott의 <Black Rain>이었다. 악당 사토(Sato) 역할을 맡았는데 이 영화에 캐스팅되었을 때 이미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권고받았지만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방사선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이 끝났을 때는 온 몸에 암이 번져서 1989년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이 연출한 '가족게임'에서 파격을 일삼는 가정교사로 열연했고, 소레카라에서는 또 다른 캐릭터로 주인공 역할을 했다.

영화는 삼각관계가 기둥 줄거리다. 유복한 집안의 차남( 가족에 대한 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뜻)으로 고등유민(룸펜)의 삶을 보내는 다이스케(마츠다 유사쿠)에게 어느 날 대학 친구 히라오카가 찾아온다. 문학부였던 다이스케는 도쿄에 남아 모던보이의 삶을 누린  반면 히라오카는 경제학부를 나와 은행에 취업해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 부하 직원의 실수로 파면당하고 도쿄로 올라온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후지타니 미와코)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 후, 미치요는 잘 지내는지?”를 묻는 다이스케. 이 대목에서 영화의 제목 ‘그 후’가 딱 한 번 나온 것 같다. 얼마 전 아이를 잃고, 몸도 쇠약해졌다는 등 미치요의 순탄치 못한 사정을 듣는 다이스케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 후의 전개는 간단히 말하면 뻔한 멜로드라마이지만 영화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애잔한(때로는 격정적인) 음악으로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리고 있다. 아버지와 형이 주는 용돈으로 살아가는 처지임에도 이들 부부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던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다시금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히라오카는 신문사의 경제부 선임기자로 자리를 잡고 간간이 주색잡기에 빠지는 반면 미치요는 점점 더 외로워 보인다. 다이스케는 병약한 미치요가 홀로 외롭게 지내는 것을 보는 것이 괴로워지고, 결국 미치요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버지와 형이 제안한 혼담도 거부한 채 하라오카에게 미치요를 “달라!”고 외친다. 사람을 “달라”는 표현은 지금 시대의 정서에 맞지 않지만 하여튼 다이스케는 마음속의 진심(미치요에 대한 사랑)을 거부한 채 친구와 맺어준 ‘순진한 호기’를 후회한다. 시대적 배경이 20세기 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그 시절을 (남자로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허무주의에 빠진 주인공 다이스케는 정해진 결혼을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을 선택하는 다이스케의 고뇌가 영화 전편에 무겁게 깔린다. 요시미츠 감독이 얼마나 이걸 잘 표현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다. 극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요시미츠 감독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을 과감하게 배치해 극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 심리를 묘사한다. 영화에서(아마도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리라)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비와 백합이다. 다이스케는 오래전 어느 비 오던 날 우산 아래서 미치요가 들고 있던 백합꽃의 향기와 함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장면, 다이스케가 미치요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 비와 백합이 있다.

“비는 여전히 길고 촘촘하게 소리를 내며 내렸다. 두 사람은 비와 빗소리 때문에 세상에서 분리되었다.. 두 사람은 고립된 채로 백합 향기 속에 갇혔다.”

두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백합이 있다. 영화에서 백합꽃 향기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것은 아름답기에 더욱 불행과 후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요시미츠 감독은 영화에서 빛도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한다. 비와 백합이 어둡고 강함이라면 빛은 밝고 느긋함이다.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난 다이스케가 얼굴에 내리쪼이던 햇살 때문에 눈을 찡그리며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빛은 사라진다. 아침의 햇살처럼 무사태평할 것만 같던 그의 삶은 백합과 비의 등장으로 드라마틱해 진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삶의 방식을 각자 살아가는 공간과 의상으로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다이스케는 절충양식의 집에 살지만 사업가인 다이스케의 형이 사는 집은 무척 화려한 3층 주택에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다. 상류층 집안의 딸인 조카는 피아노를 배우고, 이 집에서는 실내악악단이 멘델스존을 연주하는 가운데 서양식 파티도 열린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습에 놓인 여인을 상징하는 미치요가 도쿄에 자리잡은 집은 협소한 목조로 된 전통가옥이다. 그런가 하면 의상도 전통적인 기모노에서 양복, 심지어 실크햇에 드레스까지 등장한다. 어떤 것을 입고, 먹고, 어떤 공강에서 사는지의  의식주가  그 사람을 얘기한다는 명제를 보여주려는 것이 감독이 의도였던 것 같다.   

제국대학 문과에서 수학하며 일찌감치 서양의 문학과 정신세계를 접하고 구식 세계에서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다이스케는 원초적인 감정, 즉 자연인으로서의 사랑의 가치를 발견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런 자연인의 삶을 선언한  남자와 다소곳이 앉아 그를 기다리는 여자, 복수에 떠는 다른 남자. 이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고 난 '그 후'에도 자꾸 장면들이 머리 속을 스쳤다. 왓차에서 보니 구독자들이 준 평점은 그리 후한 편은 아니었는데 내게는 분명 아름다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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