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Oct 21. 2023

[다시 보는 책] 사흘만 볼 수 있다면

헬렌 켈러가 쓴  에세이와 자서전

오늘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어제 바람이 차가운데 옷을 얇게 입고 외출했던 까닭에 오늘은 무엇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일기예보를 눈여겨봤었다. 한여름 더위에 힘들어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렇게 무심하게 흐른다. 새벽녘에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 난데없이 이탈리아어를 배우겠다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당연히 될 줄 알았던 강사 섭외가 안 되는 꿈이었다. 계획도 없이 일을 벌이는 나의 버릇이 꿈에서도 도진 셈이었다. 연결해 주리라 믿었던 분께 전화를 하며 진땀을 흘리다가 깼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하는 마음으로 눈을 뜨니 햇살이 환하다.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고, 클래식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연주를 들으며 화초에 물을 준다. 평화로운 주말 아침이다. 이렇게 건강하게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고 싶은 아침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Tree days to see)'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귀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어려서 열병을 앓은 후유증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채  암흑의 세계에서 살게 된 헬렌 켈러(1980~1968)가 53세에 쓴 수필이다. 그녀는 시각, 청각 장애인으로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은 문필가이자 사회운동가,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 거론되곤 한다. 헬렌 켈러는 이 글에서 시력과 청력을 읽고 살아온 긴 세월을 돌이키며 3일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간절히 보고 싶은 것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적었다. 아침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꽉 찬 일정을 세심한 묘사와 아름답고 수려한 솜씨로 적어 내려갔다. 글도 좋지만 이 에세이의 진정한 가치는 '진심'이라고 본다. 진심으로 정성 들여 쓴 글은 시간을 초월해 글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많은 생각 거리를 안긴다, <리더스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어린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

헬렌 켈러는 "다시 암흑 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어떤 기적이 일어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이 시간을 셋으로 나누고 싶다"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이어간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삶을 가치 있게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헬렌 켈러에게 다가와 바깥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준  설리번 메이시 선생은 헬렌 켈러가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이다. '둘째 , 새벽같이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전율 어린 기적을 바라보겠습니다. 이날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세상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일에 바치고 싶습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낮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다는 계획도 세운다.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에는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보날까 합니다.'롱아일랜드 포레스트힐 근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출발해 뉴욕의 매력적인 풍경을 바라보고 번화한 곳에 서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마지막날 저녁에는 코미디 공연을 보며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희극적 요소를 감상하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헬렌 켈러는 시각과 청각이라는 선물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잘 사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내일 갑자기 볼 수 없게 될 사람처럼 눈을 사용하고, 내일 귀가 안 들리게 될 사람처럼 음악 소리와 새의 지저귐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를 들어보고, 내일이면 촉각이 마비될 사람처럼 만지고 싶은 것들을 만지고, 내일이면 후각도 미각도 잃을 사람처럼 꽃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음미해 보라고 한다.  

"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세요. 자연이 제공한 여러 가지 접촉방법을 통해 세상이 당신에게 주는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영광을 돌리세요. 그렇지만 단언컨대 모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이야말로 가장 즐거운 축복입니다."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출생했다.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의 장애를 딛고 목표했던 하버드 부속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에 평생 헌신했다. 

책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산해'에서 낸 것을 읽었다.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과 함께 헬렌 켈러가 20대에 직접 쓴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가 실려있다. 래드클리프 대학 2학년일 때 영작문 교수 찰스 타운센드 코플런드로부터 그녀 자신이 살고 있는 남다른 세상에 대해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쓰기 시작한 자서전이다. '레이디스 홈 저널'에 연재되었고 헬렌이 대학 3학년이던 1903년 더블페이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어린 시철의 추억과 앤 설리번 선생과의 만남,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 등 사라진 감각 대신 촉각과 후각, 상상력으로 세상을 살아간 그녀의 삶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해 주는 글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