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4~)의 건축미학을 담은 솔올미술관(Sorol Art Museum)이다음 달 대한민국 강릉에 개관한다. 세계적 문화예술 명소를 목표하는 솔올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현대미술 전문 공공미술관으로 건축계와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월 14일부터 4월 14일까지 2개월간 진행되는 개관전은 공간주의 운동을 주도한 이탈리아 작가 루치오 폰타나 개인전이 준비 중이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강릉 솔올지구의 미술관 공사현장을 개관 1개월을 앞둔 1월 14일 직접 둘러봤다.
조용한 소나무 언덕에 자리 잡은 리처드 마이어의 ‘백색 공간’
‘솔올’이라는 이름은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으로,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솔올미술관은 강릉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관동중학교 뒤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 부지의 주변에는 강릉원주대학캠퍼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선수촌으로 사용됐던 유천선수촌아파트 등이 있고 가까이에는 2024년 11월 입주예정인 롯대캐슬시그니처 아파트가 한창 공사 중이다. ‘솔올미술관’을 목적지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면 관동중학교를 오른쪽에 두고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게 된다. 현재 주변의 소나무 숲은 거의 그대로이지만 미술관 전체의 조경공사가 진행 중이고 미술관 건물은 완공 단계에 있다. 아래쪽에서 바라본 건축물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흰색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리처드 마이어는 1934년 미국 뉴저지 태생의 현대 건축가로 뉴욕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건축학 학사를 마쳤고 1963년 뉴욕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여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1975년 결성된 New York Five( Peter Eisenman, Michael Graves, Charles Gwathmey, John Hejduk, Richard Meier)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며, 49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198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1988년에는 Royal Gold Medal을, 1997에는 미국건축가협회(AIA) Gold Medal을 수상했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정통 후계자로도 알려져 있으며, 백색의 건축가라고 불릴 정도로 흰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대표작으로는 부모님을 위해 설계한 개인주택 스미스 하우스(Smith House)와 미시간 호숫가 절벽에 지어진 더글러스 하우스(Douglas House),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1983), 프랑크푸르트 수공예·응용미술관(1985), Barcelona 현대미술관(1995), LA의 게티센터(Getty Center,1997), 로마의 Ara Pacis 박물관(2006), 교황청의 새천년 기념교회 Jubilee Church 등 여러 상징적인 건물을 설계했다. 강릉시 경포대에 2015년 지어진 씨마크 호텔(Seamarq Hotel)이 그의 작품이다. 미니멀한 화이트 건축을 추구하는 그는 미술관 건축에서 단연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 세계에 10곳의 미술관을 설계했다. 마이어는 특유의 조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디자인과 정적이고 기품 있는 공간 경험을 추구한다. 추상미술에 주목하는 솔올미술관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확장시킨 디자인은 또 하나의 걸작으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자연과 조화이룬 백색과 유리로 된 건축
아직 공사 중이라 실내에 들어갈 볼 수는 없었지만 외형과 함께 마이어스 파트너스와 솔올미술관 공식 웹사이트에서 소개한 내용을 기반으로 내부 공간을 가늠해 보기엔 충분했다.
마이어의 건축이 백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색의 ‘절대성’에 기인한다. 백색은 건축의 순수한 시각적 형태를 가장 잘 드러내 줄 뿐 아니라 모든 기하학적 형태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상승시켜 준다. 백색이 주는 정갈함과 명료함, 건축물의 간결한 선과 미니멀한 형태의 완벽한 조화가 바로 마이어가 추구하는 백색의 미학이다. 미국에서 MIT와 하버드건축대학원 졸업 후 마이어 사무실에서 실무를 경험한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마이어가 백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흰색이 곧 모든 색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리처드 마이어 30가지 색’이라는 책에서는 흰색의 건물이 시간과 태양광의 컨디션에 따라서 얼마나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가를 다룬다. 유 교수는 마이어 사무실에서의 작업을 회상하며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마다 페인트의 흰색을 결정하고 실제 시공에서 선정한 흰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고 했다.
마이어 건축의 또 다른 요소는 유리 파사드이다. 자연광을 매우 중요시하는 그는 유리라는 투명한 재료를 사용해 최대한 자연광이 유입되도록 한다. 큰 유리창을 사용함으로써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백색 건축물에 리듬감을 주고 건축물과 자연, 공간, 사람과의 연결성을 담보한다. 마이어 건축에서 마지막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빛은 그의 백색 건축물에 변화와 율동미를 주면서 건물을 완성해 준다.
솔올미술관은 그의 건축 철학이 제대로 반영되어 전체적으로는 백색의 매스이지만 전면 파사드와 후면이 벽 대신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광을 최대한 내부에 들여놓게 디자인됐다. 과도한 빛은 전시 작품을 손상하게 할 우려가 있지만 마이어 파트너스는 정밀하게 전시공간의 빛을 계산해 빛이 직접 작품에 닿지 않도록 불투명, 반투명 유리로 처리하는 등 구조적 해법을 마련했다.
월드 클래스의 전시 프로그램
솔올미술관은 전체 부지 3만 1262㎡, 건물면적 1758㎡ 규모로 한국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중앙 안뜰을 중심으로 세 개의 주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획전시를 수용하는 캔틸레버식 대형 파빌리온인 북쪽 건물과 소장품, 사무실 및 도서관을 수용하는 깔끔한 볼륨인 ‘큐브’, 그리고 정문과 로비, 카페, 박물관 상점이 있는 투명한 파빌리온이다. 1층에 갤러리 1(256.4㎡, 층고 4m)과 2층에 갤러리 2(627.31㎡, 층고 6.6m)와 갤러리 3(126.9㎡, 층고 6.6m)이 있다. 전시 공간은 빛을 적절하게 컨트롤하며 매우 높은 퀄리티의 전시를 가능하게 한다. 영구 컬렉션이 전시·보관되는 ‘큐브’의 경우 불투명-반투명 유리로 처리된 채광창이 있으며 천정고가 높은 공간이다. 각 갤러리는 자연광과 인공조명의 그러데이션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전시할 예술 작품에 따라 분위기를 설정할 수 있다.
솔올미술관은 지역의 문화 거점으로 출발해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주목받는 솔올미술관은 세계적인 거장의 정신을 보여주는 품격 있는 전시로 모두에게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추상미술 연구를 중심으로 전 세계 주요 미술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그 역사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조명한다.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추상미술을 재해석하고 나아가 한국의 미술을 재발견하여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시도가 미술관이 지향 하는 궁극적 목표 중 하나이다.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 미술 등 20세기 한국 현대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상설전시를 구성하고 세계적인 추상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을 기획적으로 집중 조명해 나간다는 계획 아래 개관전으로 공간주의 운동을 일으킨 이탈리아 작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루치오 폰타나를 집중 조명하는 미술관 개인전은 한국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루치오 폰타나 재단의 회장이자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실비아 아르데마니(Silvia Ardemagni)는 이탈리아 매체 아트리뷴 Artribune과 인터뷰를 통해 “솔올미술관에서 한국 최초로 루치오 폰타나 개인에게 헌정된 전시회로 미술관을 개관하는 점에 재단의 예술위원회는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루치오 폰타나를 새로운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며 예술가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 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단에서는 솔올미술관을 도와 루치오 폰타나의 예술적 커리어와 사상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도록 제작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미술관은 재단법인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KoRICA, Korean Research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이 위탁운영을 맡았고 포항시립미술관 학예팀장과 대구미술관 전시팀장을 맡았던 김석모 큐레이터가 2021년 관장으로 선임되어 개관을 준비 중이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대단은 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나아가 세계미술의 맥락과 연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21년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