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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an 20. 2024

<힐튼이 말하다>를 내며

기억을 위한 서울힐튼 기록집 출간 후기 

서울 한복판에서 40년의 시간을 품고 있던 호텔, 서울 힐튼은 남산 곁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한 풍경을 이루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고, 1983년 서울 힐튼 호텔이 개관한 이후의 사회적 역할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울힐튼 기록집 기획팀이 만들고 램프북스가 펴낸  《힐튼이 말하다》는 이제는 사라진, 그리고 남은 공간마저도 곧 사라질 서울 힐튼에 대한 아카이빙 북이다. 건축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역할을 하다,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기록했다.

책은 서울힐튼의 건축사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 그리고 보존을 위한 대안과 노력들을 담았다. 그리고  맨땅에 한국건축의 중요한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담은 사진, 서울 힐튼과 함께 시대적으로 변화하는 주변 풍경들, 그리고 힐튼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사연들을 담은 사진, 그리고 영업 종료를 앞둔 시기의 사진들과 종료 이후 텅 빈 공간을 담은 사진까지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 아카이브가 담겼고  뒷 부분에는 서울 힐튼의 청사진부터 실시 설계도면을 충실하게 실어 기록집으로서 의미를 더했다.

힐튼호텔 공사현장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제공)



'힐튼이 말하다' 지면


이 책은 지난 2023년 4월12일 <컬처램프>가  창간 기획으로 개최한 특별좌담회 '건축가 김종성과의 만남 : 힐튼호텔 철거와 보존사이'에서 출발했다. 좌담회에서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현대건축의 자산인 서울 힐튼 철거가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에 대해 설계자인 건축가 김종성과 중견 건축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지한 토론을 나누었다. 서울 힐튼 보존과 관련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오랜 시간 서울 힐튼이 간직한 이야기들을 담고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고  서울 힐튼이 쌓아 온 시간과 건축적 가치를 기록했다.

책을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기획팀 각자는  저마다의 일을 갖고 있어서 회의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올리듯  자료를 그러모으고 글을 쓰면서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았다. 김종성 건축가께서 10월에  합류하면서  더욱 힘을 받았다. 

김종성 건축가와 기획 회의 장면.(사진 최수연)


'힐튼이 말하다'에 실린 서울힐튼 설계도면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크라우드펀딩(텀블벅)으로 기본적인 제작비를 마련했는데 발송 약속일보다 제작이 한달 늦게 마무리 되는 바람에  후원자들로부터 항의 문자도 솔찮이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좀더 완벽하고 의미있는 기록집을 만들기 위해선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추가 자료를 받아 뒷부분에 설계도면을 풍부하게 수록할 수 있었다.  

지난2021년 12월 1조 1000억원에 힐튼 호텔을 사들인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건물을 허물고 이 자리에 오피스, 호텔, 상가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주변의 건물들도 사들여 대규모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11월 22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에서 ’힐튼호텔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 정비계획 결정 변경안‘이 수정 가결됐다.

계획에 따르면 서울 힐튼의 일부 (로비 바닥과 기둥 정도)만 남을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정비계획을 통해 남산뿐 아니라 한양도성 및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그리고 힐튼호텔이 가진 건축사적 가치를 살리겠다고 하지만 건축가 김종성의 의견은 다르다. 제대로 보존하려면 전체 공간을 남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빛과 구축체계에 대한  그의 탐구, 그리고 완성도 높은 건축을 위해 그가 선택한 재료들로 심혈을 기울여 직조한  공간을 보존해야 제대로 그 가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힐튼 호텔의 상징적인 로비공간. 빛과 구축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 만들어진 높이 18m의 공간은 김종성 건축가가 반드시 보존하고 싶은 4가지 재료로 구성돼 있다. (사진 송인호)


서울힐튼을 보면서 건축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잉태되어 태어나서 빛나는 청춘시기를 보내고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람은 살다가 가면 그만이어서 이름을 남기려고 애를 쓴다. 서울힐튼은 사라지지만 기록집 《힐튼이 말하다》로 남게 될 것이다.  글이 자본의 거센 파도를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힐튼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시간과 열정을 들여 참여해 준 기획팀, 그리고 필자분들을 포함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기다려준 텀블벅 후원자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한다. 

건축가 김종성. 자신이 설계한 서울 힐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2년 5월, 사진 송인호)


< 책의 에필로그>

힐튼호텔은 2022년 12월 31일 영업을 종료했다. 문닫힌 힐튼호텔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2023년 9월 12일 이덕노 힐튼양복점 대표 인터뷰를 하면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이 대표 대동 하에 2층과 1층, 지하층, 그랜드볼룸, 카지노 등을 둘러보는 동안 멀리서 관리담당자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로비홀은 2층의 리셉션홀은 바닥의 카페트를 비닐로 싸고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습기가 차면서 이곳이 부식하기 시작해 비오는 날은 냄새가 많이 엄청나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있고 쇼케이스 들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있다. 계단을 내려가 입구홀로 갔다. 바닥에 깔린 대리석(로만 트레버틴)은 여전히 안정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내고 있다. 오래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을텐데 부드러운 베이지 색이 공간 전체를 안정된 느낌으로 받쳐준다. 김종성 건축가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까. 로마의 오래된 유적지에 가도 로만트레버틴으로 지어진 공간은세월이 흘렀음에도 단단한 존재감으로 현재성을 느끼게 해 준다.

크리스마스 때면 장안의 어린이들을 달뜨게 만들었던 힐튼 트레인이 계단을 따라 분수가 놓여있는 중앙에 설치되어 있다. 1995년부터 처음 달렸으니 골동품 느낌이 나고 지칠만도 하다. 지쳐서 멈춘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움직이지 않는 기차가 더욱 안쓰럽다. 예전에 한창 때에는 기업들이 각 객차와 주위의 건물 모형에 광고판을 달아 홍보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기차 하나에 이지스자산운용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종이에 글씨를 프린트해 붙인 것이 영 생뚱맞아 보였다.

'힐튼이 말하다' 중 2023년의 힐튼 모습을 담은 지면 (사진 이강석)

그랜드 볼룸은 그대로이지만 폐기처분할 가구들이 쌓여있다. 로비의 소파들은 다 치웠지만 건물 내부 자체는 말끔한 상태로 그대로여서 마음이 놓였다. 브론즈 기둥도 그대로이고, 녹색 대리석 벽면, 오크 벽면도 밝은 오크색을 빛내고 있었다. 세븐럭 카지노가 있던 공간은 내부 철거가 거의 마무리 되는 단계였지만 힐튼호텔 본 건물은 아직 완벽하게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이대로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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