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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Feb 16. 2024

건축공간 탐구] 염부들의 땀이 배인 스믜집

신안군 증도 태평염전의 아티스트 레지던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전남 신안의 증도에 여행을 다녀왔다. 수많은 섬(1004개의 섬이라고 하지만 무인도까지 합치면 신안에는 이보다 더 많은 섬이 점점이 떠 있다.) 중에서 증도를 찾은 이유는 태평염전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지인의 지인이 대표로 계시고, 주변 안좌도에 김환기 생가도 있고,  마침 날씨도 화창한 늦은 봄이었으니 여러 가지 여행의 이유가 생겼다. 이후 시간이 흘러 2023년 한국건축가협회 상을 받은 작품을 보다가 눈에 탁 꽂히는 작품이 있어서 들여다보니 태평염전이 건축주였다. 이름도 특이한 '스믜집'이었다. 대표님께 안부도 여쭙고 축하도 드리고 취재일정을 잡았다. 내가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건축오디세이의 2024년 첫 회(시리즈로 치면 37회에 해당)로 연초에 증도를 찾았다. 마침 태평염전의 시무식을 위해 대표께서 직원과 함께 렌트가로 광주역에서 증도에 간다기에 건축가와 내가 남은 두 자리를 채웠다. 새해의 새 기분으로 여행 삼아 떠난 출장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겨울이지만 남쪽의 날씨는 벌써 봄이 온 듯 포근했고, 먹거리도 좋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진심 어린 '환대'였다. 이런 여행이라면 비록 다녀와서 글 쓰는 고통이 따를지라도 언제나 즐겁다.       



그곳에 염부(鹽夫)들이 살았다. 바닷물을 받아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 소금을 짓는 그들은 동창이 밝아오면 몸을 일으켜 일하러 나가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고단한 몸을 뉘었다.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뒤 염부들의 집은 이제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아티스트 레지던스에서 작가들은 소금밭 한가운데서 하얀 소금 대신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작품을 지어낸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에 있는 ‘스믜집’의 이야기다. 


천일염을 생산하는 태평염전(대표 김상일)은 1953년에 설립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다. 한국전쟁 중 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유엔지원으로 제방을 쌓고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태평염전의 기원이다. 여의도 2배 면적에 해당하는 140만 평의 부지에 염전만 90만 평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다. 염전 외에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소금 창고 건물을 개조한 소금박물관과 광활한 염생식물원을 갖춘 태평염전에서는 소금과 문화예술의 접목을 위해 2019년부터 아트프로젝트 ‘소금 같은, 예술(Art Like Salt)’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 예술가를 초청해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 자산을 배경으로 작업하고 소금박물관에서 결과물을 선보인다. ‘소금 같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젝트다. 국제 공모를 통해 해외 예술가를 선발해 매년 8월부터 2월까지 증도에 머무르며 작업할 시간과 장소를 제공한다. 스믜집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예술가를 위한 집으로 계획됐다. 1986년 염전 인부들을 위해 지어진 단층의 숙소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은 국제공모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온 조웅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TCA 대표건축가)가 맡았다. 

스믜집은 드넓게 펼쳐진 염생식물원과 소금박물관으로부터 약 2㎞ 떨어진 조용한 갈대숲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소금생산의 기초원료인 바닷물을 가둬두는 저수지와 바닷물을 농축시키는 증발지와 결정지(소금 결정이 만들어지는 곳), 소금창고 등을 지나서 길고 작은 개천을 건너면 스믜집에 다다른다. 개천변으로 사람키를 훌쩍 넘는 갈대숲이 보인다. 고요하고 평온하다. 

조 교수는 “38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 철거를 하다 만 상태로 장기간 폐가로 방치되어 있었다”면서 “지붕과 깨진 벽체만이 남은 건물이었지만, 벽지와 못 자국 등에서 과거 생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시각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디자인의 시작은 관찰이다. 태평염전의 하얀 소금밭, 붉은 염생식물, 유채꽃밭, 갈대숲, 거친 자갈길, 막 자란 자생식물 등 지역의 풍요로운 색채와 질감을 카메라에 담아 사무실 벽에 붙여놓고 수시로 들여다봤다. 자연과 주변 건물의 재료 등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염전에서 구조물을 만들고 관리하는 데 있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소금이 닿는 모든 표면은 방부제 등 화학약품의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금 결정이 맺히는 결정지의 표면은 화학적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소나무 원목 판재를 사용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소금제조를 하지 않는 겨울철에 판재를 전면 교체합니다.” 

조 교수는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스러지는 건축을 추구하는 구마 겐고의 ‘약한 건축’의 태도를 산업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듯했다”면서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무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건물 외벽은 자연 소재의 나무를 검게 태우는 방식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나무의 표면을 검게 태워 그을리는 방법은 일본 전통 건축에서는 ‘야키스기’로, 한국 전통 가구에서는 ‘낙송법’으로 불린다. 표면을 태우는 과정에서 얇은 코팅막이 형성되어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방부, 방충 효과를 낸다. 전나무, 소나무, 삼나무, 가문비나무 등 다양한 수종으로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중 현장에서 수급이 원활한 가문비나무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과 탄화목 자재를 가공하고 공급할 업체를 찾기가 어려웠다. 증도는 워낙 오지여서 전문 시공팀을 부를 수도 없었고, 비용도 문제였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다. 

“시공업체를 부르지 않고 태평염전의 직원들과 지역 농민들이 직접 공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해결책이 됐어요. 별도의 설비 없이 노천에서 농업용 가스 토치를 이용해 목재를 하나하나 태우는 방식으로 설계의도를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원시적인 방법이었지만 비전문가들이 힘을 모아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데서 얻는 보람이 무척 컸습니다.” 

염부의 집 공사는 설계한 건축가나 건축주, 그리고 작업에 참여한 지역의 주민들(주로 농부들)에게 협동작업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물론 애로사항은 많았지만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해 설계를 변경해 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조 교수는 “공법이나 재료 선정에서는 외딴 지역의 특성상 자재 운송 비용이 높다는 점과 중장비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점, 그리고 비전문가인 지역 주민들이 직접 시공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며 “이러한 조건을 감안해 콘크리트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시멘트 블록, 스틸 파이프, 합판, 목재와 같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수급이 원활하면서 손으로 직접 들고 옮길 수 있는 재료만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염부의 숙소로 지어진 건물은 8평 남짓한 유닛이 여덟 칸 붙어 이루어진 가로로 긴 단층 건물이다. 각 유닛은 4인가족이 생활할 수 있도록 입구공간과 방 2개, 부엌이 있는 구조였다. 2개 동이 있는데 왼쪽 건물만 우선 작업했다. 

스의집이라는 이름은 삼각 지붕(ㅅ) 처마의 수평선(ㅡ), 사각 창틀(ㅁ), 바닥 데크의 수평선(ㅡ), 칸막이벽의 수직선(ㅣ)을 본떠서 지었다. 그러니 상형문자인 셈이다. 생김새는 이름 그대로이고 특히 수평라인의 인상이 무척 강하게 다가온다. 건물의 정면을 따라 각 유닛마다 90도 각도로 CMU(콘크리트 블록) 조적벽을 덧대 수평 라인이 강조된 건물의 입면에 수직의 리듬을 부여했다. 조적벽은 삼각형 지붕의 횡하중을 지탱하는 버트레스(buttress, 부축벽)이면서 동시에 각 유닛의 출입부에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칸막이벽 역할을 한다.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된 기존 지붕 위에 골강판을 덧대고 판의 얇은 두께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둔각의 매스가 만드는 둔중한 무게감이 지붕 판의 얇은 두께와 만나 가볍고 경쾌하다. 

각 유닛의 실내는 기존 건물의 공간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일부 벽을 터서 공간을 연결하거나 부분별로 필요한 요소를 덧댔다. 침실과 주방이 있는 거실 겸 작업공간, 기존의 부엌을 고쳐 만든 화장실 겸 샤워실이 전부다. 입구에서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작지만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답답하지 않다. 가로 1.6m, 세로 1.6m 크기 창문의 창틀을 안으로 1m가량 연장해 작업용 테이블로 만들었다. 이곳에 앉아 작업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하는 등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게 된다. 창밖으로 아침의 해가 뜨는 장면, 갈대와 저수지, 그리고 넓게 펼쳐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롤 블라인드는 조 교수가 직접 디자인하고, 재료를 사다가 만들었다. 도르래에 매달린 실을 잡아당겨 벽에 부착된 핀들을 따라가며 삼각형, 별자리 등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고정장치는 전통 놀이인 실뜨기에서 착안해 디자인했다.

아티스트들이 함께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라운지 공간은 두 칸의 유닛을 연결해 만들었다. 기존에 있던 방문을 뜯어낸 모양을 그대로 살려 거친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라운지 입구에서는 원 건물의 거친 미장마감과 새로 덧댄 스틸 파이프와 CMU 벽이 차례로 노출되어 건물이 거쳐 온 역사를 보여준다. 

연세대 건축공학과와 하버드 건축대학원에서 공부했고 뉴욕과 베를린에서 10여 년간 일하다 2017년 귀국한 조 교수에게 국내 첫 단일 프로젝트였던 스믜집은 지난해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첫 작품이라 각별한 애정이 간다는 조 교수는 “첫 도면이 아닌 그림과 말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수한 시행착오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자잘한 시공의 오차는 너그럽게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함께 작업하면서 여타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며 활짝 웃었다. 

 ( 이 글은 서울신문 건축오디세이를 위해 썼습니다. 본문 중의 모든 사진은 조웅희 건축가가 촬영한 것으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소금을 만드는 것은 하늘, 땅, 사람이 연결된 일이다. 하늘과 동업을 해야 하니 작업하는 날씨에 민감해서 봄부터 여름까지만 소금을 만들 수 있다. 해가 짧고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염전은 다음 해를 준비한다. 봄에는 드넓은 땅에 갈대와 염생식물이 자라 장관을 이룬다. 그냥 자연만 봐도 좋은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태평염전에서는 여기에 예술을 추가해 석조 소금창고를 갤러리로 만들어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염전과 문화예술이 있는 곳에 스믜집이 더해졌다. 이곳은 아티스트들을 위해 지어졌지만 겨울은 레지선시를 운영하지 않는 기간이라 하룻밤을 머물 수 있었다. 소금 결정이 하늘로 올라간듯 밤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커다란 창으로 저멀리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갔던 날은 아침에 구름과 수증기 때문에 일출을 보진 못했지만 하늘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일출의 아쉬움을 상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구름 뒤로 붉은 기운이 퍼지는 하늘과 갈대가 어우러져 너무나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올 한해의 축복을 한껏 받은 것 같다.   

왼쪽부터 건축가 조웅희 교수,  필자 함혜리, 태평염전 김상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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