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의 노벨상, 일본인으로 아홉번째 수상
일본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顯 78)이 건축계의 최고 영예인 프리츠커 건축상 2024년 수상자로 선정됐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 53회째 수상자로 선정된 야마모토 리켄은 히로시마 소방서, 책의 벽으로 이뤄진 도서관 등 지역사회와 공동체 육성을 돕는 사회적 건축을 실천해 왔다. 리켄의 수상으로 일본 건축계는 총 9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프리츠커상은 노벨상과 마찬가지로 생존한 인물, 그리고 인류와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성과를 낸 인물에게 주는 상이다. 우리나라에는 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올 수 없는 이유는 두 번째 항목에서 적합한 건축가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축과 건축가에 대한 인식이 아직 일천하여 건축과 건설을 구분하지 못하고, 부동산과 동일시하는 문화에서 건축가 자신의 철학이 만개할 수 있겠는가. 아파트를 위주로 하는 주거문화, 그 아파트가 평당 얼마인지부터 따지는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또한 이런 중요한 상은 국가의 문화적 위상과도 관련이 있으며 특히 건축계의 국제 네트워킹이 있고 그들이 밀어줘야 하는데 그런 레벨에 있는 한국 건축가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미술계는 이제 그런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보인다.)
그런 기반도 없이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고 사람을 선발해서 외국유학 기회를 주고, 돈으로 밀어붙인다고 문화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사회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 당분간 프리츠커상은 바라보지 말아야 할 일이다. (노벨상도 마찬가지.)
리켄이 누군지 들어본 적은 없는데 우리나라에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두 군데나 있다. 그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두 군데 모두 스캔들이었다. (뒤에 가서 자세히!) 그가 디자인한 타운하우스가 사생활 노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입주자들이 비호감을 표하고, 미분양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어져서 살아가건만.. 그러니 아무리 좋은 것(리켄의 건축이 절대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일지라도)도 받아들일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켄은 지금까지 많은 프리츠커 상 수상자들의 경우처럼 외형이 화려하거나 개념이 돋보이는 패셔너블한 건축을 하는 건축가가 아니다. 대신 리켄은 함께 모여 사는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역사회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해 온 사회적 건축가이다. 그는 가족이 해체되고 더 이상 국가가 국민의 복지와 미래를 책임져줄 수 없는 상황에 맞게 지금과 다른 주택과 공동체, 지역사회를 꿈꾸어야 하며 ‘1 가구=1 주택’이나 ‘내 집’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함께 나눠 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삶이 가능한 집합주택, 지역사회에서 상부상조하며 살 수 있는 공공주택 등 대안적인 작업들을 발표해 왔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
50년에 걸친 경력동안 중립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스타일로 일관성 있게 건축을 해 온 그의 건축은 강철, 콘크리트, 유리와 같이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고 입방체, 격자형의 심플한 형태가 주를 이뤄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건축은 사회적 상호 작용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계층화되고 구조화되는 방식에서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로와 공용 테라스로 연결된 공공 주택부터 부서 간 투명성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대학건물 등 공동체가 원활하게 소통하고 상호지원이 가능하도록 기여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이 말했듯이 야마모토의 건축물은 "일상생활의 배경이자 전경 역할을 하며 공적인 차원과 사적인 차원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준다."
2000년 지어진 히로시마의 소방서는 7층짜리 상자 형태로 모든 면이 유리 루버로 덮여 있어 내부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다. 소방관들이 훈련하는 큰 아트리움 주위로 각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로비로 들어가 다양한 작업 공간이 내려다보이는 4층 테라스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는 “소방서는 지역사회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야마모토의 견해를 반영하며, 소임을 맡은 소방관들 또한 존경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부각한다.
2008년 건축된 훗사시청 (Fussa City Hall)도 마찬가지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빨간 타일로 마감된 벽이 땅에 녹아 사람들이 곡선 벽에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완만한 경사면을 만들어낸다. 1999년에 건축된 사이타마현립대학교 캠퍼스는 부서 간 협력을 보여주는 투명한 다이어그램이다. 간호 및 보건 과학을 전문으로 하는 9개 건물은 통로 역할을 하는 테라스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리 공간이 설치되어 한 교실에서 다른 교실로, 한 건물에서 다음 건물로 전망을 제공하며 학제 간 학습을 장려하도록 설계되었다.
프리츠커 심사위원장인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미래 도시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건축을 통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야마코토는 커뮤니티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며 일상에 품격을 더해주는 건축가”라고 평가했다.
개인과 집단의 경계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
1945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특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관계 측면에서 그의 공간적 사고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집에서 자랐다. 그가 성장한 집은 전통적인 일본의 상가건물을 모델로 어머니의 약국이 앞쪽에 있고, 뒤쪽에 생활공간이 있었다. 야마모토는 “한쪽의 문턱은 가족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쪽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앉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경력 전반에 걸쳐 공적과 사적 공간, 개인과 집단의 경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온 입장이었다.
야마모토는 1967년 니혼대학에서 학사학위를, 1971년 도쿄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그는 멘토인 하라 히로시와 함께 몇 달에 걸쳐 유럽과 남미를 여행했다. 이라크, 인도, 네팔을 탐험하면서 그가 가는 모든 곳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과 공공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의 문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기록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1973년 야모모토리켄설계공장 (Yamamoto & Field Shop)을 설립하고 개인주택 의뢰를 받아 업무를 시작했다. 여름에 하루 종일 보낼 수 있는 야외 거실처럼 느껴지는 넓은 테라스가 있는 빌라를 원하는 고객을 위해 야마모토는 집을 모두 개방형 테라스로 디자인했다. 1978년 가와사키에서 두 예술가를 위해 지은 이시이 하우스에서 이 주제를 이어갔다. 이 주택은 야외로 확장되어 공연을 주최할 수 있는 무대 역할을 하는 단일 파빌리온 형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단식 좌석이 있고 거실은 지하에 묻혀 있는 형태이다.
50년간의 경력을 통해 리켄은 수많은 개인주택, 공동주택 프로젝트, 학교, 대학 캠퍼스, 시민 청사, 박물관, 소방서 등을 설계했다. 그의 작품에는 건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장려할 수 있는 테라스, 공동 안뜰 및 야외 공간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1991년 구마모토에 건설된 야마모토의 첫 번째 사회주택 프로젝트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처럼 전통적인 마치야 주택이 이웃 간의 집단주의 감각을 조성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1986년에 지은 자신의 집은 이웃 상호작용의 상징과도 같다. 이 아파트는 1층에 상점이 있고 이웃이 함께 휴식을 취하거나 함께 정원을 가꾸는 일련의 옥상 정원과 테라스를 통합한 복합 용도의 건물이다.
한국에 있는 리켄의 공동 주택들
야모모토 리켄의 건축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다. 2012년 서울 강남구 자곡동 강남보금자리 주택지구 3단지(LH 3단지) 국제현상공모에서 당선한 야마모토 리켄은 통유리로 된 현관을 가진 임대아파트를 디자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호 지원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공동체 지역”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주택을 더욱 다기능적으로 만들려는 시도였지만 입주자들에게 그의 뜻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다른 주택은 10년 뒤 판교에 지어진 타운하우스 ‘월든힐스 2단지’이다.
월든힐스 2단지 역시 LH 3단지와 마찬가지로 사방의 벽을 통유리로 처리한 투명 현관 홀 때문에 거부감을 일으켰고 분양이 잘 안 되면서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LH 3단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 테라스와 공동 정원이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다.
“주택은 더 이상 가족이 살고 자녀를 키우는 곳이 아닐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고립되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주택을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공동체를 투명하게 연결해 주는 건축
그는 초등학교, 대학 캠퍼스, 미술관을 디자인할 때도 유사한 사회적 원칙을 적용했다. 요코스카 미술관(2006)에서는 바깥 풍경과 다른 갤러리로 돌아가는 전망이 둥근 컷아웃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문객들은 항상 박물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인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텐진 도서관(2012)은 10개의 교차층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독서 테라스는 책으로 둘러싸인 벽이 엇갈린 개방형 계단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야마모토 리켄은 2007년에서 2011년까지 요코하마국립대학 대학원 교수로 재직했고, 일본대학 대학원 특임교수를 지냈다. 그는 2012년 저서 ‘마음을 연결하는 집’(안그라픽스 출간 번역본 2014) 서문에서 “나는 디자인을 잘 못합니다. 나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내 주변이란 주위 환경, 기존 지역 공동체, 현대 사회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사회에, 이웃에, 공공과 개인에 )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컬처램프에도 실려 있습니다.
https://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