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노마드 함혜리 Apr 22. 2024

건축탐구] 사성제 수행도량 '제따와나 선원'

제가 믿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농담처럼 '두루만신교'라고 합니다. 세상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편이고 모든 종교는 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마음을 잘 다스리며 착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성심으로 종교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흉볼 것은 당연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

저는 실제로 유럽에 가면 성당에 들르고, 한국에서는 주로 절에 갑니다.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삶의 지혜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종교라기보다는 생활 철학에 가깝다고 봅니다.

오늘은 불교 공부도 할 겸 초기 불교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성제 수행도량 제따와나 선원을 찾아가 봅니다. 저는 몇 해전에 이곳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습니다. 취재 목적이 아니고, 건축도 좋아 보였고 조용히 수행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갔었습니다. 그때 참 좋아서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소개하게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아마도 부처님의 가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따와나 선원은 지은 지 벌써 몇 해가 되었는데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설계는 부부건축가 임형남, 노은주 (가온건축)가 했습니다. 텔레비전 건축 프로그램 진행자로 낯이 익은 분들이죠. 책을 많이 내셨는데 , 건축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어디든 늘 두 분의 이름이 나란히 있습니다. 같이 살고, 같은 일을 하니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함께 글을 쓰고 함께 작업을 같이 하시는지..? 답은 본문 말미에 있습니다.

본문은 제가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건축기획 '건축 오디세이 38회 차로 소개된 것입니다. 사진은 노경 작가와 박영채 작가 사진이고 건축가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처음도, 과정도, 끝도 즐거운 것이 중도(中道)

사성제수행도량 제따와나 선원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을 듣고 귀의한 수닷타 장자는 붓다가 여름철에 안거 하며 설법할 수 있도록 사찰을 마련해 드렸다.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던 수닷타를 사람들이 급고독자(給孤独者)라고 불렀던데서 이곳을 기수급고독원정사(祇樹給孤独園精舎), 줄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제따와나 Jetavana’라고 하는데 ‘제따의 숲’이라는 뜻이다. 원래 기원정사가 자리한 곳이 제따왕자 소유의 동산이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생전에 가장 오랜 기간 머문 장소로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어서 우리나라에도 ‘기원정사’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럿 있다. 하지만 제따와나는 딱 한 곳에만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의 제따와나 선원(선원장 일묵스님)이다.

초기의 불교 정신으로 돌아가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공동체를 지향하는 제따와나 선원의 건축물은 인도의 기원정사를 연상하게 한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현대식 붉은 벽돌 건물들로 이루어진 도량의 전체 디자인은 부부건축가 임형남·노은주소장(가온건축)이 맡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제따와나 선원. 외형은 미니멀하고 현대적이지만 산 아래로 탑과 법당, 선방이 단차를 두고 배치되어 전통적인 도량의 배치를 하고 있다. (함혜리 사진)

제따와나 선원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에 위치한다. 강촌 IC에서 나와 홍천강을 끼고 2차선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한갓진 마을이 나오고 조금 더 지나면 왼쪽으로 붉은 벽돌의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막 경사지에 자리 잡은 건물들이 이루는 풍경은 방금 지나쳐온 마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인도나 파키스탄의 오래된 사원, 혹은 유적지 같은 느낌이 든다. 법당, 선방, 스님 처소, 공양간, 일주문 등 구성은 우리나라의 사찰과 흡사하지만 외형은 우리가 흔히 보아 온 전통사찰과는 달리 단순한 형태의 현대적이고 이국적이다. 이곳이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 수행도량이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임형남 소장은 “애초 석가모니가 기원정사에 앉아서 주석을 하고 사람들에게 설파하던 불교의 기본 정신을 되살리는 것, 그런 정신이 제따와나 선원을 설계함에 있어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며 “설계의 방향을 잡을 때, 과거의 방식과 불교적인 교리를 바탕에 깔되 현대적인 생활 습관에 적합하게 계획을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선원장 스님이 찾아와 수행자들이 머물 숙소인 ‘꾸띠(작은 오두막이라는 뜻)’를 짓고 싶다고 하면서 설계를 맡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대지는 한가한 마을을 관통하는 아스팔트 포장길에 면한 논이었다. 언덕에서 약한 경사로 펼쳐진 땅의 모습을 보면서 선방에서 며칠 씩 묵으며 수행하는 신도들이 묵을 꾸띠를 구상했다. 네모가 겹치며 그 안에 사람들이 거닐며 명상을 하는 길을 만들 계획이었다. 한참 설계를 하던 중 건너편 산 위에 지으려던 법당과 선방 등 주요 건물들도 현재의 부지에 짓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면서 도량 전체를 디자인하게 됐다.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한 기원정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색 벽돌의 제따와나 선원 전경. (사진 노경)


“선원장 스님은 부처님 설법의 핵심인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개념으로 집을 짓자고 했습니다. 집착을 통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공간이므로 사성제가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야 한다 것이었습니다. ”

제따와나 선원 앞에는 ‘사성제 수행도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불교의 핵심사상이자 가르침의 정수인 사성제란 고집멸도(苦集滅道), 즉 현실세계의 괴로움은 무엇이고, 그 원인은 무엇이며, 괴로움을 소멸하고 행복에 이르는 이치와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덟 단계의 길이 바로 팔정도이다. 부처님이 설파한 이 가르침을 하나의 단어로 압축하면 ‘중도(中道)’이다.

미니멀하게 디자인 된 일주문. 네개의 기둥이 사성제 수행도량을 상징한다. (사진 힘혜리)

일반적인 사찰의 구조를 하면서 불교적인 교리와 현대적인 생활습관을 모두 담는다는 것은 불교신도도 아닌 두 건축가에게 이만저만 난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계를 협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선원장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불교 교리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게 됐다.

“스님의 말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중도’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절대진리의 길, 그래서 ‘시작도 즐겁고, 과정도 즐겁고, 끝도 즐거운’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추위 혹은 더위와 싸우며 고통스럽게 정진하기보다는 좀 더 쾌적한 조건에서 생활하며 불교의 정신을 추구하도록 하고 싶다는 스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원래 그것인데 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가지 역사적, 지역적인 요소들이 통합되며 불교의 처음 정신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중도의 정신을 집의 안과 밖에 녹이는데 집중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사찰은 기도 위주의 구조입니다. 절에 와서 그냥 기도하고 가는 것이지 머무는 구조가 아닙니다. 제가 외국의 수행센터에서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수행에 적절한 동선과 건축 양식은 전통 사찰 건축보다는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현대식으로 건물구조를 만들면 좋겠다고 콘셉트를 잡았습니다. 외형 디자인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인도 기원정사의 분위기를 살리도록 두 분 소장님께 사진도 보내 드리고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해 나갔습니다. 회랑 형태는 인도의 날란다 대학을 참고하도록 했고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두 분 소장님이 구체화한 것이죠.”(선원장 일묵스님)  

노은주 소장은 “설계하는데만 1년 정도, 공사하는데 1년 2개월 정도 걸렸지만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불법을 공부하며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땅을 다듬고 집을 올리고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제따와나 선원은 기존의 대부분의 사찰처럼 한옥으로 짓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고 기원정사의 유적을 상징하는 붉은 벽돌로 장식했다. 마침 파키스탄에서 만든 벽돌 30만 장을 구할 수 있어서 건물의 외벽에 사용했다.

외형을 박스형태로 하는 대신 기존 가람 배치의 방식을 고려해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곧장 가지 않고 가면서 세 번 꺾어 들어가게 했고, 대지의 원래의 높낮이를 이용해 세 개의 단을 조성하여 순서대로 종무소와 꾸띠, 요사채, 법당과 선방 등 위계에 맞게 건물을 올려놓았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부분에 인도식 여래전탑이 설치되고, 늘어나는 수행 참여자들을 위한 추가 건물이 들어섰다.

법당 앞의 기둥은 장엄한 느낌을 살려준다. (사진 함혜리)

임 소장은 “원래의 목표는 한국적 전통 사찰건축을 현대화하는 것이었고 가장 건축적인 의상대사 ‘법성게(法性偈)’의 도상을 도면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배치해 나갔다”며 “우리의  불교건축에서 길은 직선을 뻗어나가기보다는 조금 휘고 많이 꺾어지고 혹은 빙 돌기도 하면서 지세와 종교적인 교의가 건축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아주 현명한 해법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선원이니만큼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선방과 법당이다. 법당은 세로로 길게 놓였고, 한층 계단을 올라가 있는 선방은 가로로 길게 배치했다. 선방의 작은 창으로 은은하게 빛이 들어와서 명상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 법당 앞의 묵직한 기둥이 공간의 장엄함을 살려주며 멋진 프레임 역할을 한다. 신도들이 묵는 ‘꾸띠(작은 오두막)’는 외부는 회랑의 분위기를 주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만들어 편안하게 지내며 명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제따와나선원의 수행공간. 작고 낮은 창문을 두어 명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 박영채)
선방(사진 함혜리)

꾸띠 오른쪽, 삼각형 모양의 자투리 땅에 만든 ‘열반당’은 임 소장과 노 소장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삼각형 모양의 땅에 엇갈리게 담들을 세워 공간의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지게 만들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나무도 살렸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는 얼마 전에 와불도 모셨다. 나무 아래에 다정하게 앉은 두 사람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며 흐뭇해했다.

열반당 나무아래에 다정하게 앉은 노은주소장과 임형남 소장

기온이 높은 파키스탄에서 구운 벽돌은 우리나라의 춥고 더운 기후에 잘 견디지 못해서 간간이 벽돌이 바스러져 내린 흔적들이 보인다. 걱정스럽기도 할 텐데 건축가는 물론 선원장 스님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임 소장은 “외벽에 붙인 벽돌이라 구조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폐허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을 들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다”면서 “폐사지의 경우 시간이 흘러 건축의 흔적만 남고 상상 속에서만 건축물이 존재하는데 그렇게 건축에 시간이 들어갔을 때 건축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여 잠시도 한 모양으로 머무르지 않으니 번뇌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안 했던가.


임형남 소장과 노은주 소장은 같은 홍익대학 출신입니다.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친구 작업실에 자주 놀라갔다가 그곳에서 후배 노은주 소장을 만났고, 적극적으로 사귀자고 했답니다. 이들 부부는 1999년 가온 건축을 운영하며 함께 작업하고 함께 책을 씁니다. 작품이든 책이든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피드백을 하고 토론하면서 완성을 해 나간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꿈꾸던 어느 날 친구의 친구에게서 소개받아 찾아오신 분이 일묵 스님이셨습니다. 한참을 얘기를 하고 듣고 하다가 스님이 하시는 말씀. "그럼 계약은 어떻게 하나요?"

일묵스님과 다담 중인 임소장과 노 소장( 사진 함혜리)

일묵스님은 불교계에서 꽤 유명합니다.. 초기 불교 공부를 아주 깊게 하시고 설법도 좋지만 이분의 학력과 출가 이야기가 독특해서입니다. 일묵스님은 서울대학교에서  수학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있다가 함께 불교를 공부하던 이공계 친구들 10여 명과 동반 출가를 하셨습니다. 그때 함께 출가한 다른 도반들도 지금 각자 사찰에서 소임을 다하고 계시답니다.

건축 얘기하다가 얘기가 옆길로 샜는데 임 소장님 말로는 일묵스님은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 중 '최고' 였다고 합니다. 원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왜 그런 것이 필요한지 교리를 설명해 주시고, 그러면서 전적으로 건축가에게 일임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계를 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스님을 만나는 시간은 불교공부이자 즐거운 다담 시간이었다고 추억합니다.

임형남 소장과 노은주 소장은 제따와나를 지으면서 이곳에 너무 마음에 들어 선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지을 량으로 자그마한 땅도 구입했답니다. 처음도, 과정도, 끝도 행복한 중도의 건축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팔정도’란 좀더 높은 단계의 행복에 이르는 길로 바르게 보고(정견), 바르게 생각하고(정사유), 바르게 말하고(정언), 바르게 행하고(정업),바르게 생계를 잇고(정명),바르게 노력하고(정정진),바르게 알아차리고(정념), 바르게  집중(정정)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통찰의 지혜를 얻고, 삶의 짐이 가벼워지면 , 내면의 자유가 찾아오고 그것이 곧 지극한 행복이라고 부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축탐구]2024 프리츠커상,야마모토 리켄의 건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