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6.9, OKNP 부산
이번에 '아트부산 2024'에 갔던 김에 전시를 좀 둘러봤습니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김영나 개인전《Easy Heavy》와 대한민국 대표 타이포그래퍼 안상수 선생의 개인전 '홀려라'(OKNP 부산)는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전시들이었습니다. 우선 안상수전을 포스팅하고, 후에 김영나 전을 포스팅하겠습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쓰인 도형은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우리 전통 민화의 문자처럼 보이지만 뜻도 없고, 읽을 수 있도 없다. 한글 등 글자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해 온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 '날개' 안상수(b.1952)가 그린(혹은 쓴) 작품들이다.
OKNP 부산 (부산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2, 그랜드 조선 부산 4F)은 날개 안상수 초대개인전 <홀려라>를 열고 있다. 작가로서 안상수의 이름은 여러 미술관에서 봐 왔지만 상업화랑에서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안상수는 훈민정음해례본에 담긴 제자 원리를 바탕으로 탈네모꼴의 ‘안상수체’(1985)를 멋지은(디자인한) 타이포그래퍼,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상수의 세계는 디자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글자를 이용한 그의 조형 실험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와 함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 든다.
그는 리움미술관의 전신인 로댕갤러리 <한.글.상.상>(2002)전을 비롯해 구텐베르크상 수상기념 라이프치히 HGB 초대전(2007), 서울시립미술관의 <날개.파티>(2017)전 등 대규모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도쿄 비엔날레>(도쿄, 2021)를 비롯하여 <Korean in Color>(샌디에이고미술관, 2023), <광저우 트리엔날레>(광동미술관, 2023) 등 해외 주요 기획전에도 참여하며 작가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그는 기성의 가치에 물들거나 정형화되지 않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며 실천해 나간다. 그가 자신에게 지어준 호 '날개' 대로다.
이번 안상수의 개인전 <홀려라>는 2017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문자도’ 시리즈로 구성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홀려라>는 한글 닿자와 민화를 조합하여 만든 그림, 즉 문자도이다. <홀려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이미지이지만, 각 글자를 해체하여 조합했기 때문에 실제로 마주하면 읽어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글자를 읽어내는데 익숙한 우리는 문자도를 애써 읽어내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수없이 오가게 한다. 문자도를 감상하는 묘미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추상화를 대하며 느끼는 감각들을 그는 글자를 활용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마주하게끔 하는 것이다.
'홀려라'에서 무게 중심 역할을 하는 자음 ‘ㅎ’의 존재는 ‘발성과 묵음 사이’도 오가게 한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인 조새미는 “이 연작에 드러나는 그림 형상은 공통으로 감각 지각적 요소의 특성을 내포한다. 다만 감각 지각을 종합체계로 하나로 통합하기보다, 각각의 요소가 원래의 특성을 보존하는 상황에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통로 개념으로 드러나 있다. 마치 둘 이상의 관이 중앙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양쪽에 있는 액체들이 서로 침투하면서 같은 높이와 밀도를 이루게 되는 과학 실험용 도구인 연통관”같은 것이라 말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작품 이름 그대로를 가져와 썼다.
전시장에서 만난 안상수 작가는 "나는 한글에 홀린 사람"이라며 "한글에 홀렸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첫 상업화랑 개인전을 하는 것에 대해 "뭔가 붕 떠있는 것 같다. 전시가 끝나야 가라앉을 것 같다 "며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OKNP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2024' (5.9~12) 에도 그의 작품을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한글의 조형성이 극대화된 문자도 <홀려라>는 안상수 미학의 정수를 꿰뚫는 연작이다. 더불어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선보이는 문자도 <홀려라>는 이전보다 더욱 과감한 형태 해체와 조합이 두드러진다. 흡사 만화경을 연상케 하는 <홀려라>는 그가 단순히 글자들을 조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실험을 통해서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 흑연을 활용한 독특한 마티에르 구성 등도 돋보인다. 작품들이 전시된 공간에 머물다 보면 도깨비에 홀리듯 어느 사인 이미지에 홀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시는 6월 9일까지.
안상수는 시각문화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이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논문으로 '한글타이포그래피의 가독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고 한양대 박사논문 '타이포그래피적 관점에서 본 이상 시 연구'를 발표했다. 1985년 안그라픽스를 설립해 1991년까지 대표를 역임했으며 1991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에 부임했다. 안상수체 외에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신세계체, 마루체 , 아리따체 등 다수의 서체를 개발했다. 2013년 대안미술대학 PaTI 날개를 세웠고 런던왕립미술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주요 개인전으로 2018 <안상수의.삶.글짜. 安尙秀’s.活-字>전, Xue Xue White Gallery, 타이페이 / 2017 <날개,파티>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3 <원아이>전, K11, 홍콩 Une Saison Graphique 13 <안상수>전, 르아브르대학 도서관, 르아브르 <One.eye.PaTI.Party>, 아트클럽1563, 서울 / 2012 <일목요연>전, OCT Art & Design Gallery, 심천/ 2008 <세종과 구텐베르크 사이>, Klingspor Museum, 오펜바흐/ 2007 <안상수>, Galerie Anatome, 파리 <안상수>, 라이프치히서적예술학교 미술관, 라이프치히 /구텐베르크 수상자 특별전 <안상수>, 라이프치히도서박람회장, 라이프치히/ 2002 <한글상상>전, 로댕갤러리, 서울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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